* 이 글의 제목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제목을 인용하였습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은 강원도 봉평입니다. 소설 속 메밀꽃이 피는 계절은 여름의 끝, 가을이 시작할 즈음입니다. 메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은 강원도, 메밀꽃의 계절로 가을을 떠올리지만 우리나라 메밀 최대 생산지는 제주도이고, 제주에서는 가을뿐 아니라 봄에도 메밀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주는 2010년 이후 국내 최대 메밀 생산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3년 기준 생산량 1,703t, 국내 전체 생산량의 57%를 차지합니다. 가을 곡식으로 알고 있는 메밀이지만 제주에서는 봄과 가을, 두 차례 메밀을 재배하는 이모작이 활발해 5월에도 하얀 메밀꽃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제주에서 메밀꽃 필 무렵은 소설과 다른 계절이기도 합니다.
메밀의 원산지는 시베리아 남쪽 바이칼호에서 만주의 아무르강 강가로 이어지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밀이 우리나라에 전래한 시기와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지만 12-13세기 이전에 전해졌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메밀에 관한 우리나라의 최초 기록은 고려 고종 연간에 편찬된 향약구급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의방서에 약재 중 하나로 교맥(메밀)이 기록되어 있어 고려 시대에도 이미 메밀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고려 충렬왕 시기 원 간섭기에 몽골인에 의해 메밀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와 관련한 일화도 있습니다. 몽골인들은 찬 성질이 강한 메밀을 제주 사람들이 먹고 기가 허해져 몸이 약해지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제주인은 메밀의 찬 성질을 완화해 주는 무와 함께 먹으며 균형 잡힌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실제로 제주 향토 음식 빙떡은 메밀과 무를 활용한 음식입니다.
척박한 제주에서도 메밀은 잘 자라났습니다. 특히 자연재해로 기근이 잦았던 제주에서는 구황작물로 활용했던 소중한 곡식이었습니다. 가뭄과 태풍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생명력이 강하고 생장 기간이 짧은 메밀이 중요하게 쓰였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에 메밀은 제주의 특산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세종실록 지리지 제151권 27장에는 제주목의 특산물 중 하나로 메밀이 기록되었고, 이원진의 탐라지(1653년)에도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토산물로 메밀이 기록되었습니다.
제주의 신화 중 메밀과 관련한 신화도 전해집니다. 제주의 신화는 심방(무당)의 본풀이(신의 내력담. 즉 신의 출생으로부터 신으로 좌정하기까지의 생애 이야기로, 신화이자 굿의 원리를 차례차례 풀어가는 굿의 대본)를 통해 구전됐는데, 본풀이 중 ‘세경본풀이’에서 메밀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경본풀이에 등장하는 자청비는 하늘 옥황에게 오곡씨를 받고 지상에 내려와 농경의 신이 되었습니다. 땅에 오곡의 씨를 뿌리다 보니 하나를 잊은 것이 있어 다시 하늘에 가서 씨를 받아 왔습니다. 뒤늦게 받아온 씨가 바로 메밀이었습니다. 메밀이 다른 곡식보다 늦게 파종하는 이유를 이 본풀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주에서 메밀은 단순히 구황작물이라기보다 제주인의 삶이 녹아 있는 곡식이었고, 소중한 식재료였습니다. 그 지역의 가장 소중한 식재료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의례 음식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정성을 다하는 의례에서 당연히 가장 소중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제주에서는 제사상에 빙떡을 올렸고, 굿을 할 때는 돌래떡, 고리동반을 올렸습니다. 빙떡은 메밀가루를 반죽으로 만들어 솥뚜껑에 얇게 지져 빙을 만들고 쉬(떡 안에 들어가는 소로 무채, 콩나무채, 삶은 팥가루 등을 사용)를 담아 말은 떡입니다. 돌돌 말려 멍석떡이라고도 불렀는데 빙떡의 핵심은 반죽입니다. 너무 묽어 점성이 없으면 빙이 찢어지기 일쑤였고, 너무 되면 빙을 얇게 지질 수 없어 떡을 말기가 어려웠습니다. 돌래떡은 지금은 쌀로 만들기도 하는데 쌀이 귀할 때는 메밀로 만들었던 떡이었습니다. 원판형의 떡으로 보통 접시 크기만큼 만들었고, 무속 의례에 신들을 대접하기 위한 진설 음식 중에 가장 흔한 떡이 돌래떡이었습니다. 이 떡은 정성을 상징해 굿을 하거나 당에 갈 때 꼭 준비하는 떡이었습니다. 돌래떡은 제물로도 사용하지만 구경꾼의 접대용 음식으로 쓰였습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라는 속담에서 딱 어울리는 떡이 돌래떡입니다. 돌래떡은 메밀 외에도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맵쌀로 만든 흰돌래, 좁쌀로 만든 조돌래, 보리로 만든 보리돌래, 메밀로 만든 메밀돌래 등 다양한 돌래떡이 있었습니다. 고리동반은 제주의 본풀이 중 ‘이공본풀이’에 나오는 ‘원강암이’의 무덤과 환생을 상징하는 무속 제물로 심방이 굿을 할 때 큰 제상에 올리는 상징적인 떡입니다. 고리동반은 심방에게 주는 전상품이라는 뜻으로 ‘심방떡’이라고도 부릅니다. 메밀가루로 각기 모양이 다른 ‘벙거떡’과 ‘방울떡’, ‘정정괴’를 만들고 그것을 너울지로 덮어 싼 다음 푸른 댓잎과 동백나무 가지를 꽂아 장식합니다. 삼도래라는 이름으로도 부르는 이 떡은 메밀가루를 끓는 물에 익반죽하여 벙거떡은 돌하르방 벙거지모자 모양, 방울떡은 공 모양, 정정괴는 타원형으로 만들어 끓는 물에 삶아 냅니다. 쟁반에 원추형 그릇을 얹은 다음 그 위에 벙거떡을 얹고 그 위에 방울떡 6개를 가장자리(벙거지 모자 창)에 돌아가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둘러놓습니다. 대나뭇잎을 방울떡 여섯 개에 각각 꽂고, 잎을 서로 꼬이게 댕기머리 엮듯 연결하여 여섯 개의 대나뭇잎을 한 개의 원으로 만듭니다. 달과 별모양을 가진 너울지를 위에다 덮어 싸고 그 위 중앙에 방울떡 한 개를 놓고 푸른 대나뭇잎과 동백 가지를 꽂으면 고리동반이 완성됩니다. 심방은 굿이 끝나면 고리동반 중 벙거떡은 자기 집에 있는 당주에 가져가(반을 가져가고, 반은 본주에게 주기도 함) 올리고 방울떡은 본주에게 돌아갑니다. 굿의 제차 중에 ‘고리동반풂’이라는 차례가 있는데, 고리동반의 너울지를 걷고 심방이 방울떡, 천문, 상잔을 체에 놓고 이리저리 흔들다가 본주의 치마 위로 던져 놓습니다. 이는 점을 치는 행위로 떡 하나라도 바깥으로 튀어 나가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여기서 방울떡은 아기를 나타내기도 하며 본주는 이 방울떡을 먹으며 고리동반풂이 마무리됩니다.
메밀 음식과 관련한 또 다른 의례도 있습니다. 가을에 메밀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여름에 파종하는데 이때 날씨가 더워 밭 갈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과거 제주에서는 더위를 피하려고 대부분의 농부가 전날 밤, 밭에 가서 하룻밤을 잤다가 다음 날 새벽 뜨거운 해가 뜨기 전에 밭을 갈고 메밀을 파종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때 밭갈이하는 날 농부들에게 아침은 반드시 메밀가루(밀가루가 확산한 후에는 밀가루 사용)로 조[아래아 표기]배기(수제비)를 만들어 드렸다고 합니다. 대접한 조[아래아 표기]배기 만큼 메밀이 크게 잘 달린다는 속설을 믿고 했던 풍습이었습니다.
의례 음식 외에도 제주에서 메밀은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된 식재료였습니다. 메밀을 가루로 만들어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했는데 조리법이 간단해 제주 음식문화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메밀 음식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메밀가루는 국수나 만두, 떡, 조[아래아 표기]배기(수제비)를 만들거나, 범벅이나 죽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모[아래아 표기]멀[아래아 표기]조[아래아 표기]배기’로 불린 메밀 수제비는 미역을 넣어 산후조리용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메밀은 갈고 나면 껍질이 많이 섞인 가루가 나오는데, 제주에서는 이를 ‘느쟁이’라고 불렀습니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에는 느쟁이도 소중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메밀은 제주 음식문화 전반에 남아 있습니다.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에 몸국과 제주 육개장(고사리 육개장)이 있습니다. 돼지고기 육수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국인 몸국과, 고사리를 넣고 끓인 제주 육개장의 킥은 바로 메밀입니다. 몸국과 육개장은 과거 혼례나 장례 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큰일을 치르면서 많은 손님을 대접하는데, 사나흘 이상 먹을 육수를 진하게 내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돼지고기 육수는 진국을 만들어내면 실제로 분량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좀 더 많은 사람이 귀한 고깃국물의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메밀을 국물에 풀어 넣었습니다. 넉넉지 않던 시절 귀한 돼지고기를 온 마을 사람이 함께 나눠 먹기 위해 생각해 낸 조리법입니다. 몸국, 제주 육개장뿐 아니라 돼지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음식에는 틀림없이 메밀을 풀어 넣습니다.
제주의 봄 메밀은 가을 생태형(재래종) 메밀과는 다른 양절형 메밀을 사용합니다. 3월 하순부터 4월 하순까지 파종하여, 6월 중순부터 7월 상순까지 수확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빨리 파종하면 봄철 늦서리나 저온에 피해를 보고, 늦게 파종하면 수확 시기가 장마 기간과 겹쳐 수발아가 생겨 수확량이 감소하고 손실률도 높아졌습니다. 이런 문제점으로 최근에는 생육기간 70일 내외의 조생종 메밀을 사용하여 늦서리 위험이 낮은 4월 중순에 파종해 장마 전에 수확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메밀은 루틴, 티아민, 미네랄, 비타민, 아미노산 등이 풍부하고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곡식입니다. 최근 건강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루틴은 인체에 유용한 영양소로 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혈액순환을 도와 고혈압 등 성인병에 효능을 보인다고 합니다. 과거 왕실에서는 해열제로 메밀을 사용했습니다. 메밀껍질은 베개를 만들어 머리를 차갑게 하고 깊은 잠을 자게 하여 두통을 없애는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빨래의 때를 뺄 때 비누대용으로 메밀짚을 태운 양잿물을 사용하기도 하는 등 음식 외에도 다양하게 활용되었습니다.
5월 제주에서는 ‘소금을 뿌린 것 같은 메밀꽃’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와흘리 메밀밭(제주시 남조로 2455), 오라동 메밀밭(제주시 오라이동 산76), 한라산 아래 첫 마을(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675)과 제주 곳곳에서 메밀꽃이 넓게 펼쳐지는 장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5월 제주는 첫 번째 메밀꽃 필 무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