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빠른 전환

by 우주가이드

퇴사를 준비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사업은 제주를 제대로 경험하는 여행을 만드는 것이었다. 최근 제주도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2018년 무렵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 다닐 때 제주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원이었을 만큼 제주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제주에 관한 부정적인 시선은 상당히 거슬렸다. 분명 제주를 더 재밌게 여행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누구도 여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 내가 하고 싶어졌다.


제주를 재밌게 여행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거기서 수익 모델을 찾으려고 생각했었다. 본격적으로 SNS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정보 제공을 위한 툴이 많아지는 시기였다. 지금은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 당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시기였는데,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재밌게 탈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J와 현 상황에 관해 분석을 시작했다. 영업 과정에서 들었던 현장 이야기를 나누고, 전적으로 믿었던, 핸디 솔루션의 기획했던 친구의 시장 분석을 하나씩 검증했다. 그런데 검증하면 할수록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 어긋났다. 굳이 내가 설득하지 않아도 됐다. 결정은 아주 빠르고, 순조롭게 내려졌다. 핸디 솔루션을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의 첫 번째 BM을 포기하자 나는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핸디 솔루션으로 연결된 동업 관계를 끝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퇴사 전 구상했던 아이템을 혼자서 할지, 이미 구성된 팀과 함께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떠올려 보면 아직은 홀로서기가 어색했던 거 같다. 오랜 조직 생활에 젖어 혼자서 사업을 해 나갈 체력이 부족했고, 두려웠다. 결국 퇴사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그 아이템을 꺼냈다. J는 아이템에 의문을 품지 않았고, 우리의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완전히 바꿔야 했다. IT 회사에서 콘텐츠 회사, 여행사로 업을 변경해야 했고, 개발자는 함께하지 않기로 하면서 인력 조정도 해야 했다. 빠르게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사 이름을 바꾸는 일이었다. 새로운 회사명은 여행을 이야기하면서 제주를 담고 싶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감성적인 이름으로 만들어보고, 직관적인 이름, 세련된 이름으로도 만들어봤지만 ‘이거야!’하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이름을 정하기 위해 나와 J,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P와 K, 네 명의 구성원은 며칠을 고민했다. 이름을 고민하면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다른 회사와 프로젝트를 찾는 일도 계속됐는데, 하필 해외에서 활동하는 회사를 자주 드려다보았다. 해외의 비즈니스를 계속 보다 보니 ‘TOUR’, ‘TRIP’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여행을 이야기하려면 TOUR, TRIP을 써야지. 우리의 작명이 조금은 진전하게 됐다. 세련된 이름을 좋아하는 J도 이 부분에서는 동의했다. 문제는 TOUR, TRIP은 너무 많은 회사가 사용하고 있었고, 뭘 붙여도 다른 이름과 유사하게 들렸다. 이름에서 여행은 해결됐으니 이제 제주를 담는 일만 남았다. 제주를 표현하는 단어들은 이미 사용 중이었고, 우리가 원하는 세련되면서, 유니크한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숫자를 붙여봤는데 느낌이 괜찮았다. 제주를 상징하는 숫자를 찾기 시작했다. 한라산 높이, 제주도 승격 연도, 제주도 둘레, 제주도 면적, 제주를 상징하는 모든 숫자를 나열하고, 4글자의 영어 단어와 맞춰 4자리 숫자를 선택하게 된다.


제주도 면적은 1,849제곱킬로미터이다. 우리는 제주도 모든 면적에 우리와 여행자의 발자국을 남기는 여행을 만들기로 하고, TRIP1849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이름이 결정되니 그다음은 아주 빠르게 진행됐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 계정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우리의 여행을, 제주도를 알리기 시작한다.


스타트업이 방향 전환이 빠른 건 그만큼 유연하다는 증거이다.

작가의 이전글3-2. 비즈니스 모델 구체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