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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가이드 Dec 22. 2022

중산간 바이브

구좌읍 송당리 기행문

처음 송당 마을에 차를 세운 건 근처에 있는 용눈이 오름에 가기 전 마트에 들려 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제주 돌담으로 둘린 마트 외벽이 눈에 들어왔고, 참 제주다운 아웃 테리어의 마트라고 생각했다. 감성 있는 가게네. 추운 겨울이라 마트 밖에는 어묵을 팔고 있었고, 어디선가 장작 타는 냄새가 났다.

동쪽으로 답사를 갈 때면 이 가게에 자주 들렀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했고, 물을 사고 나오면 여전히 어디선가에서 장작 타는 냄새가 났다. 이번엔 길가에 붉게 핀 동백꽃을 발견했다. 사진에 담아보려 가까이에 갔는데 술의 식물원? 재밌는 이름을 한 간판이 걸린 가게가 있다. 술의 식물원이라니. 안 들어가 볼 수가 없는 이름이다. 역시나 식물이 반겨줬고, 메뉴판엔 다양한 술을 팔고 있었다. 다행히 커피 메뉴가 있어 운전하고 온 나도 걱정 없이 주문할 수 있었다. 누군가 살았던 옛날 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좁은 마루를 두고 마주한 방, 어릴 때 곧잘 숨어 있던 붙박이 이불장, 기하학무늬의 창이 어릴 적 놀던 할머니 집을 생각나게 했다. 아! 이 마을에서 자꾸 맡았던 장작 타는 냄새! 아궁이에서 타는 장작 냄새. 아궁이에 앉아 불장난하던 기억도 소환된다. 이 마을이 편안함을 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송당 마을, 송당리는 제주도 동쪽, 구좌읍 중산간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제주도는 섬의 중심 한라산을 기준으로 해안가로 갈수록 점점 해발이 낮아진다. 산간과 해안가로 명칭을 구분하고, 그 중간쯤에 자리한 마을을 중산간 마을이라 부른다. 송당 마을은 활발한 화산 활동이 있었는지, 그 증거로 많은 오름을 갖고 있다.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 편에서 인용됐을 것으로 합리적 의심이 가는 ‘소원을 비는 마을’이란 키워드로 자주 이 마을이 소개되는데, 제주 무속신앙의 성소 격인 송당본향당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송당모루(송당지)라는 당이 있어 리명을 송당리로 호칭했다고 한다.

술의 식물원을 다녀오고 동네가 더 궁금해졌다. 겉으로 보기엔 제주의 어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다. 집마다 돌담으로 둘려 있고, 도로는 좁았다. 그런데 메인 거리를 천천히 걷다 보니 차를 타고 지나갈 땐 보이지 않았던 곳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유명할 대로 유명한 풍림다방, 아무나 반길 것 같지는 않은 독립서점, 우럭튀김이 맛있는 식당, 고급 비즈 악세사리 숍, 핸드메이드 소품 가게, 금방 품절되는 유명한 빵집, 제주의 자연을 활용한 포토 스튜디오, 그리고 여러 오름, 이 모든 게 걸어서 오 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냥 제주다운 마을로만 생각하고, 지나쳤던 이곳에 생각지도 못한 로컬 브랜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꽤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 있으면 쉽게 눈치챘을 법도 한데 비로소 걸어야 눈에 들어온 이유가 있다. 송당에 문을 연 가게들은 이곳의 분위기를 전혀 헤치지 않고 마을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동네 주민이 살고 있는 집인지, 새로 생긴 가게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아마 이곳에서 시작하려는 가게는 송당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을 것이고, 그 분위기를 계속 잇고 싶어 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 마을에 있는 어느 가게도 튀지 않고 송당 그 자체가 되었고, 송당은 튀는 마을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 이 마을을 여행한다면 제주도 중산간의 바이브를 그대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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