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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가이드 Jan 13. 2023

사계 매력

안덕면 사계리 기행

인적이 뜸해진 산방산 앞에 앉아 노을이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꽤 한가로운 일이었다. 여름이었음에도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덧 푸른 어둠에 불빛만 반짝거리고 있다.


오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사계 마을을 걸어서 여행하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을 골목부터 사계 해안, 용머리해안, 산방산까지 하루에 둘러보기에에는 빠듯할 수 있는 코스이다.

진미횟집, 남경미락, 춘미향으로 대표되던 사계 마을의 상징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로컬 브랜드가 대신하고 있다. 골목골목 자리 잡은 가게는 여행자에게 소박한 재미를 준다. 서울에 골목마다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다면 제주는 마을마다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사계 마을은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라는 대표 관광지를 갖고 있으면서 관광지 같지 않은 동네다. 들떠 있지 않고, 화려하지 않다. 이곳의 가게들도 사계 마을의 분위기를 그대로 나타낸다. 걷다 보면 오래된 식당, 레스토랑, 카페, 디저트, 소품 가게가 차례로 불쑥 나타난다. 차로 지나가면 보지 못했을, 도보 여행의 묘미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확 트인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 한 가운데 형제섬, 좌, 우로는 산방산과 송악산이 보인다. 해안가에는 신비한 화산 지형이 나타나는데 이 모습이 많은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다. 사계 해안은 지질학적으로도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사계 해안의 일부에서는 오랜 시간 차이를 두고 생겨난 각기 다른 화산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약 5만 년 전에 만들어졌던 광해적악현무암이라 불리는 검은 현무암층 위에 약 5천 년 전 퇴적된 노란 하모리층이 쌓였다. 이와 같은 상하 두 지층이 현격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존재하는 현상을 부정합 구조라 하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며 발생했던 화산 활동의 흔적이다. 이곳의 신비로운 모습에 여행자는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사계 해안에서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지질트레일 코스가 나온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사계마을엔 이를 포함한 지질트레일 코스가 있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입구로 향하게 된다. 가는 동안 제주다운 마을 풍경과 구석구석 숨어있는 로컬 브랜드를 구경하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이다. 이 두 화산체를 두고 그 당시 이 부근에서 일어난 화산 활동을 감히 상상해 본다. 먼저 용머리해안을 둘러보기로 하고 용머리해안 입구로 내려갔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탐방할 수 있었는데 용머리해안은 1년 중 절반 이상은 바람과 파도에 의해 통제된다고 한다. 용머리해안은 한쪽으로는 바다, 한쪽으로는 절벽을 두고 해안 길을 둘러보는 코스이다. 쉼 없이 걸으면 30분 정도 코스이지만 신비한 모습에 자꾸 멈춰 서게 된다. 자연 그대로의 해안 길이다 보니 장엄한 풍경에 넋을 잃고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용머리해안은 세 개의 화구에서 분출한 용암류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체(응회환)이다. 지하의 마그마가 분출할 때 바닷물과 만나 폭발한 수성 화산으로, 분출된 화산쇄설물이 다양한 지질 구조를 만들어냈다. 눈앞에 보이는 대자연의 모습에 감탄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출구가 보인다. 출구를 빠져나가 앞에 있는 산방산으로 향했다.

멀리서도 존재감이 분명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거대한 모습이다. 산방산은 용머리해안이 만들어진 후 다시 분출한 용암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점성이 매우 높은 용암이 천천히 흘러 나와 멀리 흐르지 못하고 굳어버려 종 모양의 산방산을 만들게 됐다. 산방산은 산 중턱에 굴이 있고, 그곳에 불상을 모셔 산방굴사라는 이름의 사찰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산 가운데 큰 구멍이 뚫려 있으니 예로부터 신성한 곳이었을 것이다. 산방산 등산은 이곳 산방굴사까지만 가능하다. 잘 만들어진 계단을 밟고 오르기에 등산이라고 하기에 너무 얌전한 오르막길이다. 그리고 그리 재미있는 길도 아니다. 정상까지 이어진 탐방로는 현재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데 곧 길이 열린다고 하니 기다려봐야겠다.


산방굴사에서 내려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하더니 바람도 시원해졌다. 여행객은 이곳을 하나둘 떠났고 북적이던 산방산은 조용해졌다. 산방산 아래 의자에 앉아 용머리해안, 형제섬, 마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점점 노란 물이 드는 사계가 더 포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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