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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Jul 17. 2021

이모부를 하늘나라로 보내며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2020년 9월 17일

이모부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집에 갔는데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모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이미 암이 너무 많이 진행돼 작은 병원에서는 손을  수도 없고, 앞으로 반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드라마에서나 봤던 시한부 선고를 우리 이모부가 받았다고? 믿기지 않았다. 간암에 걸렸다고 모두  죽는  아닐  아냐. 시한부라니 말도  되지. ‘간암 말기 검색하는 손이 덜덜 떨렸다.


[간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초기 증상이 없어서 발견하기 힘들고… 병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진행이 많이 된 상태일 가능성이 큽니다. 간암의 5년 생존율*은 약 37%, 말기라면 10% 미만…]

  *적극적인 치료 하에 환자가 5년간 생존해 있을 확률. 보통 암 환자는 완치 개념이 없고 치료 후 5년 이상 생존한 경우 일단 치유된 것으로 간주함.


그러니까 간암에 걸리면 3명 중에 2명은 죽고 1명만 사는데, 이것도 말기라면 10명 중 9명이 죽는다는 거지…? 아, 조금은 실감이 났다. 우리 이모부가 머지않아 하늘나라로 가시겠구나, 하고. 이모 말에 의하면 평소에 독한 술을 많이 드셨다고 한다. 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술을 드시던 중 술이 너무 몸에 안 받아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병원에 간 거라고 했다. 누굴 탓하겠나 싶다가도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우리 이모부는 누구보다 착한 사람이고, 그토록 착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이 너무 나빴을 뿐이니까. 술 없이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이모부는 삶이 고통스러웠다는 뜻이니까. 살기 위해 술을 드셔야만 했던 이모부 앞에 덜컥 죽음을 들이민 세상이, 운명이 너무 미웠다. 나쁜 놈들은 멀쩡하게 살아가는데 왜 자꾸 착한 사람들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화가 났다.



2021년 7월 4일

이모부와의 마지막 통화


잘 견뎌줬던 이모부가 이제 말을 못 하신다고 했다. 그래도 듣고 반응한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영상 통화라도 하라고. 솔직히 말하면 이모부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로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아무 말이나 하다가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없어서 전화를 해야만 했다. 이모부는 말씀을 못하시니 나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꼬맹이었던 유정이가 다 커서 이제 직장생활을 한다고, 최근에 시작한 자취는 너무 새롭고 재밌다고, 앞으로도 똑똑하고 야무지게 잘 살 테니까 혹시라도 걱정은 말라고, 어렸을 때 나와 동생을 잘 놀아주셔서 너무 감사했다는 말은 꼭 해야지 다짐했다. 좋은 곳에 가실 거라는 말은 하는 게 좋을까 안 하는 게 좋을까, 사랑한다는 말이 적당할까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이모한테서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이모부를 비춰주었다. 이모부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이모부가 아닌 것 같아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환자들 중에 이모부를 찾으라고 하면 못 찾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수척해서 마음이 아팠다. 이모도 안 우는데 내가 울면 절대 안 된다고 그렇게 엄마가 신신당부했는데,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이모부, 저 유정이에요. 너무 늦게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생각해놨던 이야기를 분명하게 다 전하고 싶어서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이모부는 정말로 듣고 계셨다. 내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어….’라고 소리를 내셨다. 그 소리가 마치 ‘듣고 있단다. 네 마음을 다 안단다. 울지 말아라.’라는 것 같아서 더 슬펐다. 그렇게 20여분의 통화를 마치고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2021년 7월 12일

이모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침에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불과 지난주 이모부랑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내 목소리에 반응하던 이모부가 정말로 돌아가셨다. 이모 생각이 났다. 하나뿐인 동반자가 죽는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했다. 혼자 세상에 남겨지는 건 어떤 걸까 생각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에 남겨두고 먼저 죽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생을 혼자 사는 것 중 하나의 삶을 살게 된다. 둘 중 어떤 게 더 나을까,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나는 덤덤하게 휴가를 올렸다.



2021년 7월 13일

이모부의 장례식


차로 다섯 시간을 달려 창원에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영정 사진 속 이모부의 모습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 이모부가 이렇게 생기셨던가? 좀 더 투박하게 생기셨는데 너무 사진이 느끼하게 나왔네… 이런 생각을 했다. 이모와 이모부에게는 자녀가 없어서 조문객도 많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더 없었다. 부조금 정산을 내가 했는데, 한 사람의 인생이 액수로 평가받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휑한 장례식장을 둘러보며 이모부가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유난히 이모부와 친했던 아빠가 이모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새벽 내내 술을 드셨다. 우리 아빠도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고, 이모부는 그보다 더 착한 사람이라 둘이 죽이 잘 맞았다. 아빠의 표정이 마치 오랜 친구를 보내는 것처럼 쓸쓸했다. 나는 그런 아빠와 이모부 모두를 지키는 마음으로 그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이모부의 형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꾸 돌아보게 됐다. 마치 이모부가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모부는 사투리를 쓰셨는데 ‘경기도’를 ‘갱기도’라고 발음해서 어린 시절의 내가 웃으면서 놀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모부는 깔깔 거리며 좋아하는 나를 위해 더 맛깔나게 ‘갱기도’를 발음해주셨다. 그게 이모부가 나와 내 동생을 놀아주던 방식이었다.


이모부의 목소리가, 그 사투리가, 그 표정이 선명하다. 이모부는 돌아가셨지만 이렇게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 계신다.



2021년 7월 14일

이모부를 보내드리며


아침 일찍 발인을 했다. 장례식장에 있는 동안 눈물이 하나도 나지 않아서 내 슬픔은 위선인가 싶었는데 흰 천으로 덮인 관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저기에 죽은 이모부의 시신이 들어있고, 저걸 이제 태운다는 거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본 적이 있어서 처음도 아닌데 그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엄마가 우는 게 마음 아파 나도 울었던 거라면, 이번에는 그냥 내가 슬퍼서 울었다. 이모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다. 이제 진짜 헤어질 시간이구나.


화장이 다 끝나는 데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사람의 시신을 다 태우는 데 1시간 반이 걸린다. 죽으면 아픔을 느끼지 못할 테지만 이모부가 너무 뜨거워하시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울었다. 이모는 울지 않았다. 이모가 울지 않아서 더 슬펐다. 화장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이모를 꼭 안았다. 씩씩하게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혼자 빈 집으로 돌아갈 우리 이모. 이모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


이모부, 별로 싹싹하지 못한 조카라 다 커서는 연락도 자주 못 드렸네요.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야 전화를 드리고, 돌아가시고 나서야 편지를 쓰는 못난 조카를 부디 용서하세요. 지금 어디쯤 가고 계세요? 하늘나라에 도착하셨나요? 아니면 자꾸 뒤돌아보느라 아직 가고 계신가요? 왠지 이모부라면, 두고 온 이모가 걱정되어 느린 걸음으로 가고 계실 것 같아요. 하늘나라에 가서도 부디 이모를 지켜주세요.


이모부, 처음 이모부를 만났을 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여린 이모 옆에 이렇게 착한 사람이 나타나다니, 정말 다행이라고요. 근데 가끔 이모부 얘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나기도 했어요. 너무 착한 나머지 이모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왜 그렇게 착해 빠져서 당하기만 하는지 화가 났어요. 하지만 그래서 제가 이모부를 좋아한 거예요. 이모부는 하얀색 도화지 같았거든요. 남을 해하는 어떤 행동도 해본 적 없는 사람 같았어요. 세상에 이모부 같은 어른들만 있었다면, 사람들은 따로 천국을 찾지 않았을 거예요.


이모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정말 돌리고 싶어요. 암이 이모부의 몸을 너무 많이 차지해버리기 전으로 돌아가서, 건강검진을 꼭 받으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더 이전으로 돌려서 술을 제발 조금만 드시라고 신신당부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게는 시간을 돌릴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속절없이 이모부를 보냈어요. 이모부, 저는 정말 허무해요. 죽는다는 건 어떤 건가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못 보는 것. 저는 상상이 안 돼요. 이모부도 죽음이 두려우셨겠죠? 얼마나 무서우셨을까요.


이모부, 저 앞으로도 열심히 살게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저 살기 바빠서 이모부를 잊고 지낼지 몰라요. 그래도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혹시 제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가끔씩 꿈에 나타나서 다그쳐주세요. 아, 이모는 걱정 마세요. 엄마랑 큰 이모랑 제가 자주 연락해서 외롭지 않게 해 드릴게요.


이모부, 부디 사는 동안의 즐거운 추억만 가지고 떠나시길 바라요. 고통 없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세요. 제 이모부로 지내주셔서 감사했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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