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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Jul 30. 2021

마음의 온도를 맞추고 싶어

서로 비슷한 온도로 사랑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을의 연애

지독하게 앓았던 첫사랑. 그 연애로부터 얻은 교훈은 딱 한 가지다. 내가 더 사랑한다는 건, 지옥이라는 것. 걘 아무렇지도 않은데 혼자 전전긍긍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했지만 속은 문드러졌다. 그가 언제든 말 한마디만 남기고 떠나갈까 봐 무서웠다.


가장 끔찍했던 건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데에도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했다는 거다. 그가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면서도 너무 오버스럽지 않아야 질리지 않을 테니까. 나는 늘 예민하게 그를 살피느라 진이 빠졌는데 그는 나 말고도 중요한 게 많았다. 밤마다 눈물을 삼키며 다짐했다. 다시는 을의 연애를 하지 않으리라.



내 마음 ≤ 네 마음

마음의 크기에 차이가 날 때 가장 큰 단점은 사랑을 맘껏 표현할 수 없다는 거다. 을의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로서는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해선 안 됐다. 내 마음이 더 크다는 걸 들키면 순식간에 관계에 갑을이 생겨버리고, 그 사실이 분명 내 아킬레스건이 될 테니까.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쓸 에너지를 모아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에 썼다. 그의 미운 점, 약점, 별로인 점을 떠올리고 괜히 심술을 부렸다. '빨리 네가 더 사랑한다고 말해!' 속으로 외치면서.


반면 상대방이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으면 안심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버려질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도 자꾸 마음을 재는 내가 싫었다. 사랑하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에 마음을 계산식에 넣고 덧셈 뺄셈을 하고 있자니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하지만 온도에 차이가 느껴질 때마다 누가 마음에 빨간불이라도 켠 것처럼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난 얼른 온도를 맞추기 위해 덜 사랑하는 척했다.



마음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그렇다고 지금 당장 상대방의 온도가 더 높다고 해서 계속 안심할 수도 없다. 상대방의 온도가 점점 식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더 끔찍했으니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건 괜찮았지만 버려지는 건 죽어도 싫었다. 사랑의 온도가 처음 시작했던 때와 같다면, 늘 한결같다면 좋을 텐데. 왜 사랑은 늘 실온에 꺼내놓은 물처럼 미지근해지고 마는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비슷한 온도로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마음의 온도계에 숫자를 딱 써넣으면, 딱 그만큼의 온도로 계속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더 뜨거워서 상처 받지 않고, 내가 더 차가워서 상대방에게 상처 줄 일 없게. 딱 그 정도의 온도로.




양유정

그림 소우주 (instagram@sowoojo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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