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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Oct 24. 2020

엄마, 나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24136번째포효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24136번째포효


엄마, 있잖아. 나 사실 엄마가 생각하는 철든 딸이 아니야.

나 실은 그냥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야.

고등학생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도

그렇게 안 하면 가난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 같아서,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 공부밖에 없어서 그렇게 이 악물고 한 거야.

엄마의 자랑거리였던 내 성적표는,

꼭 가고 싶은 대학과,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발버둥이었어, 엄마.


엄마, 미안해. 나 사실 엄마가 생각하는 착한 딸이 아니야.

내가 수능이 끝난 시점부터 단 하루의 주말도 없이 계속 아르바이트를 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기특한 생각에서 한 게 아니야.

그냥 나도 평일에는 부유하게 살고 싶어서 그랬어.

엄마는 부자가 아니잖아.

나 용돈 주려면 다른 것들을 줄여야 하잖아.

엄마는 이미 누리고 있는 게 없는데.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삶을

좀 살아보고 싶어서 그랬어.

부자처럼 살고 싶어서.

근데 나 한 번도 그렇게 못 살아봤어, 아직도.

주말을 주말답게 보낸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말이야.

엄마, 나는 주말을 몽땅 반납해도, 아직도 가난해.


엄마, 미안해. 나 사실 가난이 너무 싫어.

가난 덕분에 공부해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것도 싫고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인정하는 것도 창피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푼돈을 모으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고

매달 40만 원씩 꼬박꼬박 받는 용돈이 적다고 투정 부리는 친구의 말도 싫어. 아니, 부러워.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봐.


엄마, 기억 나? 내가 어릴 때 물어봤잖아.

우리 가난하냐고.

엄마, 아빠가 맨날 돈 때문에 싸우는 거 보고

고작 열 살이었던 내가, 다 알면서 물어봤잖아.

우리는 집도 있고, 텔레비전도 있고, 식탁도 있고, 먹을 것도 있는데

우리 정말 가난한 거야? 라고 물어봤던 것 같아.

사실은 아니라는 말이 듣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3일은 생각하고 물어본 거야.

엄청나게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한 건 아니다, 그렇게 말해주길 바랐던 것 같아.

근데, 다 빚이야. 우리 꺼 아니야. 라고 엄마가 대답했던 것 같아.

열 살짜리 내가,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나는 걸 보니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돈 앞에 눈치만 늘고, 돈 앞에 작아지고, 모든 것을 다 돈으로 환산하기 시작한 게.


엄마, 나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돈 없어서 한두 푼에 쪼잔해지는 내 모습이 싫었어.

왜 난 기꺼이 베풀지 못할까. 왜 이렇게 내어주는 것에 야박할까.

돈 앞에서 머리를 굴릴 때마다, 와, 나 진짜 속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욕했어.

그때마다 나는 다시 가난을 원망했어.

내 그릇이 작은 게 다 가난 때문인 것 같았어.

사실 지금도 참 많은 것들을 가난 탓으로 돌려.

근데, 맞잖아.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참 많잖아.

돈이 많으면, 나 주말에 늦잠 잘 수 있잖아.

사장님 눈치, 손님 눈치 안 봐도 되잖아.

메뉴판을 받으면 메뉴보다 가격을 먼저 보지 않아도 되잖아.

가끔은 친구들한테 한 턱 내고 생색도 내보고 싶고,

나를 위한 선물도 사고 싶고,

한평생 나를 위해 희생한 우리 엄마, 좋은 데에도 데려가고 싶은데.


그래도 엄마, 나 가난은 싫지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아.

우리가 부자였다면, 그건 엄마가 부자인 거잖아.

어차피 그건 엄마한테 무임승차하는 거니까 엄청나게 좋은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네.

그리고, 엄마는 가난해도 내 엄마잖아.

나만큼이나 엄마도 휴일 없이 열심히 살고 있잖아.

내가 어떻게 가난을 투정할 수 있겠어.

힘들지만 나를 보면 힘이 난다는, 그런 엄마 앞에서.


엄마, 나 나중에 진짜로 부자가 되면 말이야.

아, 나 말고, 우리말이야.

내가 나중에 성공해서 우리가 부자가 되면,

그때는 꼭 엄마 품에 안겨 펑펑 울면서 투정 부리고 싶어.

이렇게 부자가 되기까지 너무 힘들었다고.

하필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고.

부잣집에 태어난 친구를 보며, 저 집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고.

내 청춘이 다 지나도록 한 번의 주말도 없이 사는 게 서러웠다고.

그렇게 울면서 투정 부리고 싶어.


근데 엄마. 아직은 아니지?

나는 아직 좀 더 가난해야 되잖아.

아직은 좀 더 열심히 살아야 되잖아.

때가 안 된 거잖아.


근데 좀 무섭다.

정말 열심히 살면, 부자 될 수 있는 거 맞지?

나 무서워. 우리가 부자가 되었을 땐,

엄마가 너무 늙어버렸을까 봐.

나는 주말을 반납했을 뿐이지만,

우리 엄마, 한평생 쉬지도 못하고 떠날까 두려워.

엄마가 더 늙기 전에 부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엄마, 내가 아주 오래오래 생각해봤는데.

여기 적은 엄마한테 하려던 말들.

죽을 때까지 절대 엄마한테 말 안 할래.

그냥, 철든 딸, 착한 딸, 기특한 딸로 남을래.

난 주말 없어도 돼, 엄마.

괜찮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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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의 어느 날,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익명으로 글을 제보했었다. (나는 동국대생이었지만, 그 시절엔 고려대숲 문학이 인기였다.) 새벽 감성으로 써 내려간 글이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내가 제보한 글에 몇 천 개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 후로도 며칠간 내 글이 사람들에게 공유됐다. 잠잠해질 때까지 2만 4천여 개의 좋아요를 받고 3천 번 이상 공유된 듯 하다.


내 글을 읽으며 눈물을 쏟았다는 댓글을 읽으면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글을 쓰며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좋은 글들 사이로, 또 사람들의 기억 저 너머로 내 글은 서서히 잊혔겠지만, 이때의 감정은 내 안에 아주 오래 남았다. 그리고 벌써 5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내가 썼던 글과 사람들의 댓글을 다시 읽으면서 신발끈을 고쳐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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