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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Oct 25. 2020

저는 1968년생, 05학번 엄마입니다

제1회 댕낼 백일장 에세이 부문 입상작(05학번 김선화)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났으니까, 10남매 중에 넷째 딸이니까, 동생들 뒷바라지해야 되니까…. 내가 친구들과 다른 삶을 사는 데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붙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 나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고 싶어서 아르바이트가 끝난 저녁 시간에 야간 수업을 들었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까 싶었는데  처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때에도 나는 친오빠네 가게 일을 도우며 용돈을 벌었다.
 
그마저도 시골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생들에게 보내야 했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났으니까, 10남매 중에 넷째 딸이니까, 동생들 뒷바라지해야 되니까…. 내가 친구들과 다른 삶을 사는 데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붙었다.
 
한창 꾸미고 싶은 나이에 화장품 하나도 제대로 사보지 못하고 그렇게  20대가 지나갔다. 결혼해서  하나, 아들 하나 낳고 정신없이 키우다 보니 어느새 마흔이 코앞이 됐다. 엄마로 사는 시간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계속 ‘ 삶은 어디에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 학원비에 보태려고 우유 배달도 해봤고 이런저런 일들을 조금씩 해봤지만 딱히 ‘ 직업이라고 말할  있는 일은 없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니 자신감도 없었다.
 
그러던  방송통신대학교를 알게 됐다.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도 원하는 학과에 진학할  있다고 했다. 나에겐 ‘    있는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등록금도 비쌀 테고 4년이라는  시간이 들기 때문에 고민이 됐다. 지원 마감 시간이 다가오는데 남편에게 말도  꺼내고 있을 때였다. 딸이 학교에서 ‘부모님이 원하는 자녀의 장래 희망 적는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나에게 “엄마는 꿈이 뭐였어?”라고 물었다. “글쎄,  기억이  나는데.”라고 대답하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초등학생  장래 희망란에 ‘선생님이라고 적었던 것이 생각났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설령 ‘썩은 동아줄이더라도 잡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청소년교육과에 입학했다. 막상 대학교에 입학은 했는데 이미 굳어버린 머리로 두꺼운 책을 읽는  쉽지는 않았다. 아들, 딸이 학원 숙제를  , 옆에 앉은뱅이책상을 펼치고 앉아서 형광펜으로 열심히 밑줄 쳐가며 공부했다. 책값이 아까워서 중고 책을 찾아서 구매하고  공부한 책은 다른 사람에게 싸게 팔았다. 학점은 변변치 않았지만 공부할  있는 시간이 너무 감사했다. 4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흘렀고, 마흔  살에 나도 ‘대졸 됐다. 청소년교육과를 졸업하니 어린이집에서 보육 교사로 일할  있게 됐다.  월급을 받고, 저축을 하고, 아들  용돈을 넉넉하게   있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어릴  꿈이었던 ‘선생님으로 불리며   있다는  가슴이 벅찼다.
 
요새도 종종 딸이 얘기한다. “엄마가 그때 대학  용기를 냈다는  지금도 너무 자랑스러워.”라고. 나도 2005년의 나를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한다. 2019, 이제 쉰이 넘은 나이가 됐지만 앞으로도 나는 뭐든지    있을 것만 같다.




작년 말, 대학내일 20주년을 맞아 개최한 댕낼 백일장에 제출한 엄마의 에세이. 물론 내가 많이 다듬긴 했지만 온전한 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쟁쟁한 글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입상했다. 자랑스러운 당신의 삶, 이렇게나마 기록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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