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봐야 마흔이지
30대에 ‘마흔’만을 기다렸다. 마흔이면 내 삶이 완성될 줄 알았다. 그래서 30대를 지치지도 않고, 영원히 멈추지 않을 에너자이저처럼 살았다. 힘든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사는 게 훈장처럼 여겨졌다. 직장인으로, 아내로, 엄마로, 딸과 며느리로, 언니와 누나까지도 주어진 내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마흔이면 빨간색 벤츠도 있어야 하고. 집 대출도 없어야 하고. 나의 살림살이도 펴져야 하고. 해외여행도 주기로 다니고. 무엇보다 내가 진정한 어른이어야 했다. 그런데 마흔이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모든 걸 다 해내는 멋진 워킹맘일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하루는 사무실에서 밤 11시가 다 되도록 퇴근을 못 하고 있는데, 직장 상사가 물었다.
“자기는 꿈이 뭐야?”
“평범하게 사는 거요.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퇴근하고, 가족과 저녁 식사 함께하고. 여행 가고 싶을 때 여행도 다니는. 남들 하는 것처럼 살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평일 대낮에 사람들이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해요.”라고 답했다.
당시 남편은 음식점을 하고 있었는데, 365일을 아침 10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을 했다. 주말이면 아이들은 언제나 내 차지였고, 여행은커녕 저녁 식사도 함께할 수 없었다. 나 또한 평일에 칼퇴근이란 건 있을 수도 없었다. 어쩌면 퇴사 후 내가 캐나다행을 쉽게 결정했던 것도, 여기 있으나 캐나다에 있으나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살다 마흔이 되었다. 30대 보다 더 못한 나였다. 나를 무엇보다 힘들게 한 건 지혜 있는 어른이 아니었다. 40이면 불혹(不惑),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했다. 그런데 30대에 자신 있게 선택한 일들이 40대에 부메랑이 되어 나를 힘들게 했다.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전부였던 회사에서도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뒀다. 퇴사는 내 인생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 무작정 놀 수는 없으니 잠시 중단했던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치기로 했다. 왕복 4시간 거리를 다니며 밤을 새워 공부했다. 박사 과정을 막상 수료하고 나니 또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커리어를 찾을 것이냐, 아이들을 키울 것이냐.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마흔둘에 아이들과 캐나다로 떠났다. 다시 제주로 와서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40대 중반을 넘겼다.
오늘, 이 글을 쓰며 문득 ‘나는 힘이 들 때마다 도망을 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 힘들면 나를 갈아 넣으면서 일에 빠져 힘듦을 잊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니 다시 공부하고. 마흔이 되었는데도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 캐나다로 떠나고. 예전과 똑같이 살아야 하는 현실이 싫어 제주로 온 것까지. 맞서지 않고 고통을 피하고자 나도 모르게 한 선택들이 아니었을까.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인터뷰에서 도망가면 좋지만 결국 내가 한발을 나아가려면 고통스러워도 내가 감내해야 하고,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끝내주게 멋져 버릴 거 같던 40대는 나를 흔들고 또 흔들어 놓았다. 제주에서 보낸 40대의 나는 무리를 이루며 날아가던 새들 사이에서 혼자 길 잃은 철새였다. 무리를 찾기 위해 힘든 날갯짓을 하다 지쳐버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간이었다. 한 번도 날갯짓을 멈춘 적이 없는데. 매번 잘살고자 한 일이고 선택이었는데, 나로 인해 다 어그러진 거 같아 어느 날 쭈그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내 평생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다. 요즘도 잘하고 있는 건지, 내가 보낸 오늘 하루가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삶이였는지 여전히 헷갈린다. 아직도 나는 많은 선택지의 기로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건 이제 무엇이든 좀 맞설 용기가 생겼다. 그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시간이 약임을 배웠다. 죽을 거 같은 고통이 아물면서 흉터를 남기지만, 그래도 살아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 앞으로의 시간들이 언제든 불안하고 또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흔들리던 6년의 세월 동안 나는 꽤 깊어졌고 묵직해졌다.
앞으로 무수히 또 흔들리겠지. 이제 환상 같은 건 없다. 겁이 나지만 ‘자, 맞서보자!’라는 심지가 올라온다.
두 아이와 함께한 6년의 제주살이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흔들리는 40대를 오롯이 제주에서 보냈습니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워 그간의 시간들을 제 식으로 잘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또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테니까요.
제가 정리하는 글들이 곧 6년이란 시간에 대한 제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끝이날지 알 수 없지만. 담담하고도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