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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오늘 Aug 19. 2023

무화과 세 상자

개미들은 밑동의 틈새를 통해 마구 들락날락하며 꿀을 먹어댔다.





  동거인 S와 다퉜다. 한참을 너 도대체 왜 그러는데!, 그러는 너는 왜 그러는데!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뜨거워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하고 외치며 냉장고에서 무화과 한 알을 꺼냈다. 집 앞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서 8개에 7,990원에 구매한 무화과, 그물망에 하나하나 감싸진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든 무화과. 나는 무화과 한 알을 수돗물에 대충 씻고는 320원어치를 베어 물었다. 내 두 눈은 부어 뜨거웠고 달고 차가운 무화과는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다툼으로 인해 고단했던 마음도 녹아내렸다. 내가 무화과 한 알을 맛있게 먹는 동안 S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좀 얼이 빠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부드러워진 말투로 사과했고 우린 곧 화해했다.

  난 무화과만 보면 내 키가 엄마의 허리께였을 무렵, 전라남도 끝자락, 강진에 있는 친할머니 댁에 놀러 갔던 때가 떠오른다.

  아빠를 따라 황토벽 울타리를 따라 걸으면 초록 색 대문이 나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앞마당이 나오는데, 왼편엔 대추나무가 있었다. 대추나무의 줄기마다 대추가 빼곡히 열려 줄기가 축 늘어져 있곤 했다. 오른 편에는 고개를 하늘로 바짝 쳐들어야 겨우 끝자락이 보일 만큼 큰 감나무가 우뚝 서있었다. 대추나무와 감나무 사이를 지나면 할머니의 초가집이 나왔다. 할머니 댁은 그 밑으로 불을 떼 온돌이 있는 바닥을 뜨겁게 달구는 오래된 집이었다. 창문도 창호지가 발려있었다. 침을 발라 몇 군데 구멍을 뚫기도 했었다. 이 집은 참 사랑스러웠지만, 딱 하나.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재래식 화장실이다. 나는 아무리 똥이 마려워도 똥둣간에 빠져 허우적대게 될까봐 두려워 꾹 참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할 때쯤, 엄마가 마당 한편에 신문지를 한 장 올려두었다. 나는 그 위에 똥을 쌌다. 초록 똥이었다. 가족 모두가 나와 내 똥을 구경했다. 할머니 댁 마당에서 키우는 갖가지 녹색 채소를 먹었던 탓이었다. 달팽이는 당근을 먹으면 주황색 똥, 청상추를 먹으면 초록색 똥을 싼다고 하는데, 그럼 무화과를 엄청 먹어대면 무슨 색 똥이 나올까 궁금했다. 그게 궁금했던 이유는, 그때의 나는 걸핏하면 뒷마당의 무화과나무 앞을 얼쩡거렸기 때문이다. 무화과나무는 앞 마당의 밤나무나 대추나무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었다. 땅바닥에는 너무 숙성되어 떨어진 무화과들이 질펀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밟히고 으깨어져 무화과의 단내가 진동을 했다. 그 밑으로 들어가 나무를 쳐다보면 쩍 벌어진 무화과 밑동이 보였다. 개미들은 밑동의 틈새를 통해 마구 들락날락하며 꿀을 먹어댔다. 나도 고심하다 제일 밑동이 벌어진 놈부터 먹어댔다. 마룻바닥에 누워있다가 뒷문으로 나가 무화과 한 알 먹고, 마당을 한 바퀴 돌다가 무화과 한 알 먹고, 텃밭을 구경하다 한 알, 먹지도 않을 대추를 따며 놀다가 한 알 따먹었다.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아무리 먹어대도 무화과는 동이 나지 않았다. 마치 마법을 부리는 듯했다. 우리 가족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무화과를 먹을 때마다 할머니 댁 뒷마당의 무화과 얘기를 꺼낸다. 그 무화과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나는 가족들과 행복해지고 싶을 때, 무화과 한 상자를 사서 부모님 댁에 놀러 간다. 그럼 어김없이 행복해진다. 무화과 한 상자로 이렇게 충만해질 수 있다니 정말 가성비가 좋은 가족들이다.

  얼마 전, S가 전남 함평에 출장을 갔다 돌아왔다. 무화과 세 상자를 양손에 들고 왔다. 함평의 특산물이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먹어도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냉장고에 둘 자리가 없어 식탁 위에 두었다. 부엌에 달큰한 무화과 향이 가득했다. 무화과를 씻어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씹어 삼키며 우린 다시 또 싸우더라도 금방 화해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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