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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희 May 24. 2023

자녀와의 관계는 신뢰 쌓기에서부터 시작된다 1

어느 날 갑자기, 내게도 이런 일이


한밤중에 눈을 떠보니

둘째 임신 8개월이 넘어가는 어느 날 일찍 자던 날과 달리 밤 12시경에 잠이 들었다. 

빌라 2층에 살던 집은 가로등이 바로 앞에 있어서 화장실에 갈 때 불을 켜지 않아도 됐었다. 아침까지 폭 자는 평소와 다르게 1시 반쯤 일어나 웬일인지 방에 전등을 켜고 잠자던 남편을 무심히 봤다. 파란 입술에 거품을 물고 눈은 뒤집힌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여보,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예요?” 너무나 놀라 누워있는 남편의 어깨를 잡고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이때 내 손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던지 잠시 후 “휴” 하면서 의식이 돌아온 남편의 첫마디는 “나 가만 둬.”였다.

일단 안도의 숨을 쉬고, 옆방에 자고 있던 막내 여동생에게 큰아이를 부탁하고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분주히 돌아가는 응급실은 의사와 간호사가 앉아서 업무 보는 의자 말고는 없었다.

부른 배를 하고 한쪽에 서서 이것저것 검사받는 남편을 계속 기다리는데,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젊은 의사 한 분이 자신의 의자를 내어 주었다.


남편은 며칠 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차는 자동차 보험도 안 들었고, 아내도 없이 홀어머니에게 애 둘을 맡기고 근근이 살아가는 운전자였다. '이런 형편에 왜 술을 먹고 운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사고로 남편의 몸은 안 좋은 상태였고, 감기로 편도까지 많이 부어있었다. 결혼 전 날씬하던 남편은 내가 해준 음식을 너무나 맛있게 잘도 먹더니만 몇 년 만에 살이 많이 찌고, 당연히 목젖도 굵어져 있었을 것이다. 진단 결과는 '수면 중 무호흡증'이었다. 똑같은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임신 중인 나는 남편 수술받는 날을 기다리는 일주일 내내 낮에는 집안일을 하며 큰아이와 놀아주고, 밤에는 잠자고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뜬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나의 출산 에피소드

엄마라면 애 낳는 에피소드는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큰아이는 예정일에 맞게 그야말로 순풍 낳았다.

애 낳는 것도 친정엄마를 닮는다고, 나도 그랬다.

산 간호를 해주시러 오신 시어머님께서 "넌 한 다스도 낳겠다야."라며 웃으셨다.


그런데 둘째는 달랐다.

임신한 몸으로 수술한 남편을 간호까지 하느라 힘들었던지 예정일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남편 퇴원을 하루 앞두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분만 시간이 더 짧다는 둘째 출산이라 외출증을 손에 든 남편과 함께 서둘러 다니던 산부인과로 이동했다.

“애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집에 다녀오세요.” 말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버린 의사의 말과는 달리 진통은 더 빨라졌다. 5분, 3분 양수가 터지고, 2시 02분에 식사하고 돌아오지 않은 의사 대신 간호사가 아기를 받았다.


의사는 태어난 아기가 2.15kg으로 저체중에, 목에 탯줄을 감고, 아기가 변을 많이 먹은 것 같다며 큰 병원에 가서 진찰받아 보라고 했다. 아기는 남편품에 안겨 큰 병원으로 옮겨져서 자세한 진찰을 받고 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고 체중만 늘리면 됐었다.


출산한 산부인과에 있던 나는 다음날 아기가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 3월 말이라 난방하지 않는다는 싸늘한 병실에서 쪼그만 어린이침대에 아기와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보니 온몸이 퉁퉁 부어 풍선이 되어 있었다. 아기를 보러 온 시동생이 “형수님 얼굴 못 알아볼 뻔했어요.” 이렇게 말할 정도로 부어버렸다. 아기를 낳은 산모가 뜨끈한 곳에서 산후조리를 해야 할 판에 좁은 침대와 차가운 병실에서 잠을 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산후 3일째, 태어난 아기만 혼자 병원에 두고 나는 퇴원했다.


하루 한 번 아기를 만날 수 있는 면회가 허락되어 있었다.

초유를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 젖을 짜서 담은 젖병을 들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면회 시간 10분 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한 뼘만큼 열린 커튼 너머로 내 아기가 울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제 아기가 울어요. 한번 가봐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바빠서인지 들어주지 않았다. 계속 울고 있는 아기가 안쓰러워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했으나 이번에도 아기 곁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다.


면회 시간이 되어 내내 울고 있던 아기를 받아 안은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 작고 여린 아기가 울어도 와주지 않는 곳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왔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남편이 “우리 아기 퇴원시키세.”라고 했다. 엄마·아빠가 지켜보는데도 이렇다면 없을 때는 어찌할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퇴원시키자는 남편의 말을 들으니 산간 해주시러 집에 와 계시던 시어머니께서 큰 병원으로 옮기는 아기를 보시고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라는 옛말이 있다. 특별한 병 없고 움직임이 좋으면 집에서 키워도 잘 클 거다.”라고 하신 말씀도 생각이 났다.


검사 결과도 아무 이상이 없다. 단지 몸무게가 작아 체중만을 늘리기 위해 울어도 살펴 주지 않는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한다면... 2.5kg까지 언제 기다려. 퇴원시키기로 결정했다.


퇴원 승인을 해줄 수 없다는 의사를 뒤로하고 입원한 지 4일 만에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온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의 공포가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을 만큼 1분 1초도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안고, 그것도 앉아서 자야만 했다. 그렇게 아기를 안고 온 밤을 앉아서 잠자기란 너무 힘들어 내 몸이라도 살짝 눕히려 들면 잠이든 아기가 어찌 느끼는지 바로 울어버렸다. 내 산후조리는 엄두도 못 내고 무섭고 힘들었을 아기를 안아주고 또 안아주었다.


그렇게 두 달이 넘어가니 아기는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누워 노는 시간이 늘고, 놀다가 혼자 잠들기도 했다. 잠든 아기를 두고 잠깐 슈퍼라도 다녀올 요령으로 나갔다가 시간이 지체돼도 깨어나 울지 않는 순둥이가 되어갔다.


‘100일의 기적’을 말하지만 순둥이는 기적이 아니었다. 엄마들의 엄청난 노력 아니겠는가. 아기가 원할 때 밤낮으로 안아주고 엄마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라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산후조리를 먼저 생각하고, 우는 아기를 힘들어만 했다면 아기는 아마도 계속 칭얼대며 까다로운 아이가 됐거나, 엄마로부터 자신의 마음 달래주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아기의 울음은 언어다. 안전지대였던 엄마 뱃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세상에 뚝 떨어진 아기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혈을 다 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는 울음으로, 몸짓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이런 아기가 신호를 보내면 보호자는 하던 일을 바로 멈추고 곧장 달려가 요구사항을 해결해 줘야 한다. 배고파하면 젖을 주고, 기저귀가 젖었으면 갈아주고, 잠투정하면 가슴을 맞대어 꼭 안고 재워 줘야 한다. 

울어도, 아니 불러도 자신에게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세상에 대한, 엄마에 대한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이럴 때 아기는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곳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배타심이 먼저 생겨버린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아기에게 신뢰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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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va,  자녀와의 관계는 신뢰를 쌓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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