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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맨 May 31. 2023

경계경보 문자를 받고, 직원들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의사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기

삐이- 삐이-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사이렌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깼다. 오전 6시 42분이었다.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하라는 마지막 문장이 눈에 밟혔다. 방에는 30개월 차 딸과 아내가 잠들어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가 잠에서 깨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털사이트와 유튜브, SNS에 접속해 뉴스를 확인했다. 북에서 미사일(또는 발사체)을 발사했다고 한다.


  휴전 중인 국가에서 태어났기에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일이었다. 하지만 꿈이 문제다. 최근에 워킹데드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쳤고, 사이렌 소리에 깨기 직전에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불안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스러운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남기고 샤워를 했다. 혹시 대피를 하게 되면 꽤 오랫동안 온수 샤워를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마침 갓 백일을 지난 아이를 키우는 친구네 집은 단수가 되었다고 한다. 친구는 분유부터 챙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SNS에는 이미 우리나라보다 조금 일찍 발송된 일본의 재난문자와 비교하며 정부의 재난대응체계에 관해 비판하는 사람들의 글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경계경보 문자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다 한 문장에 눈길이 갔다.


그래서 출근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뉴스에서는 북이 미사일(또는 발사체)을 발사했고, (마치 연례행사처럼) 예정했던 일정에 미사일을 발사했을 뿐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걱정했다. 요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 같은 전쟁은 거짓말처럼 실제로 계속해서 일어났고, 현재도 일부 국가에서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온라인으로 받았던 민방위교육 내용을 회고했다. 이수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서 흘려 들었고, 일부 구간은 음소거를 하고 들었다. 후회했다. 정부의 대응을 탓하기 이전에 내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비해서 나쁠 건 없잖아


  사내 메신저를 켰다.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출근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무실에서 가장 먼 곳에 사는 직원부터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고, 결국 모든 직원들이 읽었다. 답변은 없었지만, 안도했다. 메세지를 읽었다는 것 자체로 이미 대답을 한 것이니까. 뉴스에서는 대피령이 내려진 연평도 주민과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재난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경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출근길에 재난이 발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수라장이 되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는 상황. 적어도 위기의 순간에는 가족과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06:41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


  다행이었다. 그리고 헛웃음이 났다. 6시 41분에 발송했다는 문자가 내게 도착한 것은 7시가 넘어서였다. 대량으로 문자 발송을 하다 보면, 문자가 조금씩 늦게 전달이 된다고 한다. 6시 42분에 경계경보 문자를 받고, 6시 57분에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을 직원들에게 했다. 15분의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 사실 회사 차원에서는 늦은 대응이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경계경보가 오발령이라니까, 다시 출근 준비를 해서 회사로 나오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경계경보는 오발령이지만, 미사일(또는 발사체)을 발사한 것은 사실이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자고 해야 할까?


(오발송이라고는 하는데) 일단 오늘은 출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직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새벽에 갑작스러운 알람에 깨보니 경계경보 문자가 왔고, 잠시 출근하는 건가 마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가정했다. 대표에게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이 왔기에 (어차피 전쟁은 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안심하고 잠들었다. 그런데 오보라는 알람이 또 울려서 잠에서 깼다면?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뭘까? '아, 출근하기 싫다.' 그래서 출근하지 말라는 결정을 철회할 수 없었다.


  명분은 있었다. 오전에 1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떠들어야 되는 온라인 행사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무실에 홀로 앉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공교롭게 행사의 주제가 '도시의 정책적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다. 사례로 오늘 아침의 일을 이야기했다. 다행이었다. 모두가 안전하게 오늘의 일을 해프닝처럼 웃으며 넘길 수 있어서. 한 번 내린 의사결정을 가급적 철회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도 지킬 수 있어서.


  분유를 챙기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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