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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도쿄에서 찾은 낭만

무시해도 좋은 낭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by 밝을 명 가르칠 훈 Feb 11. 2025

1. 한국과 일본, 정해진 길을 벗어나 외국인이 된다는 것


우리는 한국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 살아간다. 좋은 대학에 가고, 빠르게 취업하고, 결혼하고, 대출로 집을 사고, 평생을 갚아나간다. 마치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어느 시점에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다. 너무 늦어도, 너무 빨라도 안 된다.


일본은 어떨까? 오히려 더 철저할지도 모른다. 대학교 3학년이 되면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 하고, 입사 후에는 언제 승진하고, 몇 살에 집을 사고, 평생 얼마를 벌 수 있을지까지 예측할 수 있다. 모두가 사회가 정해놓은 큰 틀 안에서 살아간다.


그런 일본에서, 나는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본 사회 안에서 내가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것이 가장 불안했다. 일본어를 해도, 오래 살아도, 나는 여전히 '외국인'이라는 경계를 지닌 채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평생 이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면, 외국인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지 않을까?


외국인이기에 일본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일본인조차 지나치는 풍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으며, 이 사회를 조금 더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낭만을 찾을 수 있는 이유도 그것일지 모른다.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이곳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2. 어디에나 있는 것들이 특별해지는 순간


낭만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순간 속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지만, 도쿄의 스타벅스는 나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에노 공원 안의 스타벅스에서는 초록빛 가득한 공간에서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사이닝 스토어에서는 손짓과 눈빛만으로 주문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공간을 경험한다. 오다이바의 스타벅스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도쿄의 야경이 반짝이는 풍경을 만난다. 그리고 동네의 평범한 스타벅스에서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커피를 마시는 반복 속의 안정감을 느낀다.


이곳에서는 한국어를 들을 수 없다. 익숙한 뉴스 방송도, 광고 소리도 없다. 대신 오후 5시가 되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정체 모를 노래가 있다. 누가 틀었는지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멜로디가 흐르면 나는 문득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전철 안, 버스 정류장, 횡단보도, 공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들리는 일본어, 전철이 도착한다는 방송, 바람 부는 소리, 모든 것이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낭만은 내가 '외국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3. 도쿄에서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나는 이 책에서 도쿄에서 발견한 낭만을 기록하려 한다. 누구나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 속에서, 내가 포착한 감각들을 담아내고 싶다. 아침에 햇빛이 방을 가득 채우는 순간, 길을 잃어야만 만날 수 있는 골목길, 비 오는 날 카페 창가에서 멍하니 바라본 흐린 거리, 밤 11시 도쿄의 골목에서 들려오는 음악까지.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도쿄에서 뭐 해?"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진다.


"그냥, 햇빛을 보고 있었어."

"그냥, 골목길을 걸었어."

"그냥,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 있었어."


어떤 이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쓸모없는 시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순간들이야말로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빛나는 순간들이 모여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낭만이 된다는 것을.


당신에게도 분명 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마주치는 작은 행복들,

평범한 날들 사이에서 발견하는 특별한 순간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지만 마음 한켠에 오래도록 남는 기억들.


나는 이 책을 통해 도쿄에서 찾은 나만의 낭만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당신의 일상 속에 숨어있는 낭만을 발견하는 작은 단서가 되었으면 한다.


때로는 길을 잃어야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듯이,

가끔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우리 삶에서 가장 귀한 낭만이 될 수 있으니까.


자, 이제 당신과 함께 나의 도쿄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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