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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7. 2018

내가 겪어본 아픔은 훨씬 더 공감하기가 쉽다

2015년 10월 20일

내가 겪어본 아픔은 훨씬 더 공감하기가 쉽다. 인간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겪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다.


남아공에서 자라서 난 치안에 민감하다. 두 주 전 남편이 미국에 출장을 갔던 중 누군가가 밤 열한시에 현관문을 쾅쾅 두들겼다. 게이트로 잠겨 있는 우리 건물 안으로 들어와야 노크가 가능한 문이었다. 누구세요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가 다시 또 현관문을 쾅쾅쾅 두들겼다. 심박이 몇 초 만에 140으로 뛰더라.

내가 남아공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좀 덜 예민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지금도 뒤에 누가 가까이 붙으면 곧바로 걸음을 빨리하거나 거리 반대쪽으로 건너간다. 그 날 저녁도 그랬다. 남편 없이 여자 둘, 애들만 있는 걸 알고 저러나 겁먹었다. 결론은 별일 없었는데, 그 다음날 저녁에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안 울린 경보 알람이 울렸다. 이쯤 되면 공포영화다. 당장 남편에게 연락했다. 친한 '남자' 친구에게도 미리 연락해뒀고 경찰서 전화번호도 찾아놨다. 생각해 보면 성인 남자가 있다고 해서 작정하고 들어오는 강도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는데 (남자가 있으면 그 남자를 제압하려 과하게 폭력을 쓸 수가 있다) 그럴 땐 힘없는 여자로 내 애들 보호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먹먹하더라.


남아공은 강간의 천국이라고 한다. 정말 강간 사건이 많다. 예쁜 여자만 강간당한다고? 웃기지 말라고 해라. 특히나 남아공 흑인 여자들은 안 당한 사람 세는 게 빠를 정도다. 성추행 정도는 쳐주지도 않는다. 어딜 나갈 때마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 살피면서 걱정하는 권총 강도, 살인, 강간 등등. 이건 남편도 남아공에서 같이 겪어 봤기 때문에 좀 더 이해한다. 총 들고 덤비면 덩치 건장하든 어떻든 아무 소용없거든.

인터넷상으로 욕하고 협박하는 것, 실제 위험 별로 없다는 거 머리로는 안다. 영국에서 설마 총 들고 설칠 것 아닌 이상에야 남편과 거의 행동반경이 일치하고, 직장은 남초라서 점심 먹으러만 나가도 건장한 남자 최소 반 다스에 둘러싸여 다니는데 여기서 해코지당할 가능성 없는 거 나도 안다. 그래도 몸으로 배운 공포는 쉽게 잊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또 다른 공포를 어렸을 때 배웠다. 집단 다구리. 눈치 별로 없는 전학생으로 매해 옮겨 다니면서 꽤나 텃세 따돌림 당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엔 남자애들 무리에게 맞았다. 다행히 공부는 늘 잘해서 (...) 담임선생님 실드로 그 다음엔 그럴 일 없었지만, 그 때부터 무리 공포증...은 아니고, '삐끗하면 다구리'라는 개념은 확실하게 인식했다. 걔네들이 날 때린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재수 없어서. 보기 싫어서. 사실 인터넷도 비슷하다. 트위터를 피하게 되는 이유도 그렇다. 피상적인 이유로 모르는 사람 패기가 너무 쉽잖아? 이거 완전히 번호표 뽑아서 다구리 당하기 기다리는 것 같음.

오프로 직접 만난 사람도 이제 꽤나 되서 닉넴으로 블로그하는 게 눈 가리고 아웅인 거 안다. 실생활과 상관없다는 이유로 한국어 블로그를 했지만 어쩌다 보니까 오히려 실제 친구들이 가득한 페이스북에서 병크 터트리는 것보다 한국 블로그에서 집단 다구리 및 피해 입을 가능성이 훨 올라갔다. 아 뭐 십 년 했으니 그럴 만하긴 한데.

처음 블로그 시작했을 때엔 참 자유롭다가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몽둥이 든 사람들이 저 멀리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보이더라. 아직 목표로 찍힌 건 아닌데, 이거 진짜 손 펴면 번호표 보일 것 같다. 그렇지만 그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겪어본 위험이 아니라 그런지 공감은커녕 나보고 권력자가 왜 두려워하느냐고 묻는다. 야! 블로그 조회수가 권력이냐?? 쉽게 조리돌림 당할 수 있게 반조리 된 알량한 '네임드'가 권력이냐??

...저기, 권력 맞아요? 그럼 이거 돈 바꿔주나요? 치킨이라도 배달시키면 한 조각 더 준다거나...?

개그에요 개그.


어쨌든.

결론은.

저 만나보신 분들/본명 아시는 분들. 혹시라도 제가 뭔 말 잘못 해서 다구리 시작되더라도 제 실명 까지는 말아주세요. 밤에 현관문이라도 쿵쿵 두들기면 새가슴 애엄마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땡큐 베리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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