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6일
당신은 눈이 안 보이더라도 매일 곱게 화장을 할까?
난 눈이 아주 나쁜 편이라서 이 생각을 자주 했다. 안경을 벗는 순간 다른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 신경 쓰이는 정도가 확 낮아진다. 집에만 있을 때 안 꾸미는 것보다도, 안경을 벗고 반 봉사가 될 때 훨씬 더 자유스럽다. 내가 안 보인다고 해서 상대방이 날 못 보는 건 아닌데 그렇다.
아이 낳고 나서 비슷하다. 지금도 노화가 싫고 예쁘게 차려입고 싶을 때가 있으나, 안경을 빼 버린 것처럼 그냥 신경 안 쓰이는 순간이 점점 늘어난다. 이걸 '퍼진다'로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외모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이를 낳기 전에, 아아주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애 낳으면 난 발목 잡힌다는 두려움이 커서 2세 계획을 망설였다. 애 없을 땐 혹시라도 남편이 개또라이 짓 (...) 을 하면 깔끔하게 이혼하면 되지만, 애 생기면 어렵지 않을까?? 애는 배송 취소할 수도 없고, 평생 데리고 살아야 되잖아?? 남편의 개또라이짓으로 인하여 정이 뚝 떨어졌는데 남편의 DNA가 반이나 들어있는 애 보고 미워지면 어떡하지??
게다가 아무리 여권신장된 해외라고 해도, 여자의 가난 확률에 제일 치명적인 변수는 뭐니 뭐니 해도 아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빈곤층으로 내려갈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임신 동안의 건강 문제, 아이 낳으면서 금전적인 문제, 건강 문제, 파트너와 불화로 헤어질 확률, 직장에서 짤릴 확률, 산후 우울증이나 그 외 산후 문제로 짤리지는 않더라도 파트타임으로 가거나 진급에서 제외되거나 나중에 구조조정 되기 쉽거나 등등. (임신 중에 가정폭력 시작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고, 아이 낳고 짤릴 가능성/경단될 가능성도 아시다시피 아주 높으며, 아이 낳고 1~2년 사이에 파트너와 헤어질 가능성도 무지 높음)
둘 낳은 지금 생각해봐도 아이를 낳는다는 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한다. 그런데 낳았다. 임신할 때도, 진통하면서도, 아이 낳고 나서도 이게 이성적으로 좋은 선택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다른 큰 문제가 전혀 없는데도 그랬다.
큰 애는 이제 무려 학교에 다니는 지금은?
지금도 확신은 없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이를 둘 낳음으로서 난 금전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었고, 계속 입고 있고, 시간을 뺏기고, 그 시간을 투자했더라면 커리어로나 아니면 자기계발로나 뭘 했겠지.
그런데 정말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신경이 덜 쓰인다. 나 혼자 안경을 벗어도 나를 보는 주위의 눈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내가 아이를 낳는 동안 오히려 세계 경제는 더 악화 되었으니 나는 더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데, 그것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 둘이 비이성적으로 감사하고 예쁘다. 그리고 비이성적으로 걱정을 달한다. 이게 바로 종족 번식의 비밀. 내 시간 내 돈 이렇게 잡아먹는 존재가 둘이나 있는데, 전혀 원망하지 않고 뭐든 더 해 바치고 싶은 것이 생물 회로도 해킹으로 인한 자기 파괴 루틴 시작. 유전자 넘어갔으니 본체 이제 필요 없다 이거지 (...)
뭐 그렇다는 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