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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7. 2018

열공모드와 게으름 모드

2015년 10월 17일

한참 공부하고 싶고, 사람들이 방해하는 거 싫고, 계획하고 운동하고 열심히 살기 모드로 좀 나가다가 딴 짓 게으름 모드로 빠지곤 한다. 지금까지는 그냥 내가 게을러서, 자기 관리 못해서...라고 생각하고 자학모드 돌입하기만 했는데 이번 주에 찬찬히 돌아보니까, 열공 모드를 1이라고 하고 게으름 모드를 2라고 할 때 


성격 모드 1:

게임처럼 뭔가 끝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귀찮다. 다이어트가 쉽게 된다. 운동도 계획해서 하고 이거저거 일을 많이 벌린다. 이 때 일기도 쓰고 노트도 꾸미고 정리도 하고 등등. 밥 먹는 것도 귀찮고 하는 것도 귀찮아서 대강대강 때운다. 문제풀기 모드, 만들기 모드이기도 하다. 주의력 통제는 언제나처럼 힘들지만 일을 엄청 벌여놓고 주루루루룩 돌아가며 처리한다. 에너지 넘친다. 


성격 모드 2

게을러지는데, 사실 게을러진다기 보다는 주의력 통제가 심각하게 힘들어져서 딴생각이 엄청나게 많다. 게시판에서 붙어 고민 읽거나 사람들 만나기도 한다. 우울해질 수도 있으나 호기심 폭발하여 엉뚱한 분야를 강박적으로 파기도 한다. 식탐이 늘어난다. 요리를 시작한다. 느낌에 민감하다. 뭔가를 기억하고 챙기는 능력이 치매 수준으로 급하강한다. 소설 시나리오 쓰거나 이래저래 희한한 생각이 많다. 글을 많이 쓰게 된다. 


살아오면서 지상최대 과제가 2 모드를 어떻게 해서든 통제하고 죽여서 최대한 1이 되는 거였다. 이번에는 8월 초부터 Habitica 덕분에 모드 1을 약 두 달 정도 쭉 끌었는데 두 주 전부터 모드 2로 빠져서 (모드 1 기준으로 볼 때) 말할 수 없이 게으르게 퍼져있다. 식탐 늘고 운동은 안 하고 직장에선 딴짓하느라 바쁘다. 코스 듣는 것도 올 스톱. 보통은 이 때 자학모드로 돌입해서 자신을 후드려패다가 다시 자연스럽게 모드 1로 들어가는데 말이지. 차라리 모드 2를 활용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 생체 리듬이 있는 건지, 음식이나 수면 혹은 그 외 다른 이유로 모드 전환이 이루어지는 건가도 역시. 

한 번도 모드 2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본 적 없어서 오늘은 긍정적인 면 찾아내기에 도전해봤다. 모드 2는 우뇌적이다. 이미지에 강하고 느낌에 민감하다. 인생을 즐기려 한다. 내일 뭘 해야 하는지, 오늘 뭘 끝내야 하는지는 놓아버리고 지금 당장 호기심 끄는 것을 쫓아간다.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깊이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도 이 때 생긴다. 좀 덜 따지고, 애들하고 이유 없이 뒹굴거리기도 더 즐긴다. 단백질 파우더 셰이크 먹기 보다는 시간 들여서 요리해서 다른 이들과 나눠 먹는 걸 좋아한다.

그래, 평생 열공 모드 1로 살 순 없지. 한심하게 여기고 죽여 버리려 했던 내 모습이 모드 2지만, 그것도 분명 이제까지 안고 온 나인데 좀 더 좋아해줘야겠다. 뭐 하기 싫으면 좀 놓고, 멍때려도 너무 한심해 하지 않고, 모드 1 동안 열라 뺐으니 요리 실력 늘리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천천히 살라는 뜻인가 보다하고 주위 사람도 좀 챙기고. 노력은 해볼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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