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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6. 2018

보라색 반짝이 매니큐어를 바른 아들

2015년 12월 29일

난 내 아들이 게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좀 해 봤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핑크색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뭐 따지자면 정말 좋아하는 건 기차다. 그런데 초등학교 가더니 갑자기 핑크색이 싫다고 했었다. 학교에서 놀림을 당한 모양이었다. 손톱에 매니큐어 바르는 것도 너무 좋아해서 몇 번 발라줬는데 학교 가더니 그런 건 여자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싫어하더라. 게이이든 아니든, 그건 타고 나는 거라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진짜 정말 당신이라면 십대부터 왕따에, 맞아 죽을 가능성 있는 동성애를 '택'하겠소???) 뭐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내 아들 못살게 구는 사람들 붙잡아 족치는 건 내가 아주 많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방학이라 집에 있는데 내가 오랜만에 크리스마스라고 네일 했더니 지도 발라보고 싶은 눈치를 팍팍 냈다. 그래서 신랑도 거들면서 빤짝이 보라색을 손톱에 바르고 너도 발라줄까 했더니 냉큼 응! 대답했다가 망설인다. 학교에서 다른 애들이 많이 놀렸단다. 역시 그렇지. 깊이 빡치지만 우선 참고. 다음에는 놀리는 애들 누군지 이름 적어오라고 했다. 내가 크리스마스 색깔 지우고 다른 거 바르는 걸 보더니 지금 발랐다가 학교 가기 전에 지울 수도 있느냐고 묻는다. 그렇다니까 그럼 보라색 빤짝이 발라달랜다 ㅋㅋㅋ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당연히 이성애자로 자라는 쪽이, 아들이 인생 살 때 더 편할 거라 믿어서 그러기를 바라겠다. 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면, 태어난 본성을 누르고 주위에 맞춰가며 눈치보는 일이 최대한 없었으면 한다. 그냥 지나가는 호기심이라 해도 아니 손톱 좀 바르고 싶으면 바르면 되는 거고 핑크색 신발 신고 싶음 신으면 되는 거지. 어릴 때 인형 대신 블럭 가지고 놀았다고 커서 레즈비언 되는 거 아니니까 (되도 상관 없고).

이걸 그냥 학교 가서 뒤집어버려 하다가 아들 힘들어질까봐 협상했다. 바르고 싶은 거 맘껏 바르고 학교 가기 전날에 지우기로. 뭐 이렇게 현실과 협상하고 맞춰가는 거죠.

혹시라도 이거 읽고, '말이 씨가 된다고, 아들이 게이면 좋겠소? 왜 자꾸 부추기오' 아니면 '아들이 게이니 어쩌니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올려도 되냐' 할 사람은 제발 부탁하건대 내 페이지 다시 들어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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