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9일
아 놔.
우선 면접은 망했습니다.
나도 좀 있어 보이는 블로거 이런 거 하고 싶어요. 나 잘났음 잘났음 일게 잘났음 그런 글 저도 쓰고 싶다고요. 글치만 현실이 협조를 안하는데 어쩌라고요.
어쨌든.
아침에 면접 나가기 전에 면접의 신 남편한테
"팁 같은 거 없어?"
했더니
"묻는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하면 돼."
....이 놈이 처맞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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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장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샌드위치를 사서 까먹고 있으니 경비 아저씨가 째려봅니다. 너 배지 있냐고 물어봅니다. 면접 보러 왔다니까 리셉션 쪽을 가리킵니다. 거기로 갔습니다.
이름 대고 면접 보러 왔다고 하니까 곧 내려올 거랍니다. 물어보지 말까 잠깐 고민했으나 내 허기가 대단하였으므로 물어봤습니다.
"저기요, 내려오시는데 2분 더 넘게 걸릴까요? 보시다시피 샌드위치 먹던 중이어서..."
리셉션 아가씨가 아무 표정 변화 없이
"저기 오른쪽 가셔서 기다리세요"
했습니다. 좀 창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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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간 면접은 아주 잘 봤습니다. 제가 말하는 건 또 엄청 잘 합니다. 얼굴이 동글동글 만만하게 생겨서 위화감 절대 없고, 농담도 곧잘 하고, 딱히 잘 하겠다 안달하지도 않고 건방도 없고 하여튼 적당적당히를 아주 약 빤 듯이 잘 합니다. exceptionally well 잘 했다고 칭찬도 받았습니다. 고연봉의 삐까번쩍한 금융 커리어가 눈앞에 보일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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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면접관들이 들어왔습니다. 아아. 여기서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면접관들도 클래스가 여러 가지 있는데, 디테일 물어보는 사람 들어오면 저는 망하는 겁니다. 전 기억력 때문에 디테일은 약하거든요. 그래서 구글 검색 실력은 강력합니다.
파이선 인터프리터에 관해서 물어봅니다. 나 그런 데 관심 없어. 파이선 언어의 한계에 관해서 물어봅니다. 나 그런데 관심 없다니깐. 멀티 스레딩과 컨텐션에 관해서 물어봅니다. 아 진짜 나 그런데 관심 없다니깐.
망했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두 번째 알고리듬 문제도 뭐 대략 다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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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남편 놈이 미워졌습니다.
걔는 왜 면접을 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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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는 왜 파이선 공부한지 나보다 훨 덜 됐는데 나보다 아는 건 더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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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데 걔라고 부르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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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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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러니까 저는 남친을 사귈 때도, 남편 만났을 때도, 기타 들고 로맨틱한 노래 불러준다고 하면 "야야 그거 코드 틀렸어 히히" "야 이리 줘봐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냐" 하는 여자였죠. 남편이 첫 러브러브 자작시를 지어 왔을 때 우하하하 웃어버렸죠. 남편이 면접을 잘 본다고 하면 저는 질투에 불타죠. 그래요 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여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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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건물을 나오는 길에 저는 갑작스레 마소 대주주들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그렇죠. 제가 매일 하는 말이 있어요. Jesus loves you but Microsoft pays you. 이렇게 면접 다니고 박살 나는데도 며칠 전에 월급은 꽂혔죠. 레드먼드 방향을 향해 주주님들 감사합니다 멘탈 백팔 배 하고, 잠시나마 어디 다른 데 가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했던 내 자신 멘탈 싸대기 날리고, 찬물 두 잔 마시고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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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점심으로는 맥도널드 쿼터 파운더, 치즈 바이트, 애플파이까지 먹었습니다. 이런 못난 나를 거둬주는 마소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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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왜 온라인에 면접 망한 얘기는 잘 안 올라올까요? 예전에 블로그에 올렸을 때도 "어떻게 망한 얘기를 쓰세요?" 물어들 보시던데, 그러게요. 저는 왜 쓸까요? 왜 쓸데없이 솔직할까요?
그리고 남편님, 너는 나중에 나한테 죽었다 ㅠ.ㅠ "묻는 질문에 맞는 대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