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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4. 2018

여자의 심리적인 학대

2016년 9월 28일

이 글은, 내가 뭘 말하려는지는 아는데 상당히 미묘해서 어떻게 써야 할지 좀 오래 고민했다. 

    

어떤 관계든 간에 두 사람의 '감정 교류 요구'가 똑같은 경우는 별로 없다. 친구 사이에도 한 친구가 조금 더 자주 전화한다든지, 조금 더 챙긴다든지, 조금 더 얘기하고 싶어 할 수 있고, 부모 자식 간도 마찬가지다. 한쪽이 조금 더 아쉬워하고, 조금 더 섭섭해하고 뭐 그런 거?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보니까 감정적인 교류에서 어느 정도 즐거움을 얻지만, 원하지 않는 감정 교류는 감정 노동이다. 특히나 한 쪽에서 조심해야 하는 관계면 더욱더 그렇다. 아무리 시어머니가 잘 해줘도 조금 부담스럽고, 삼박 사일 같이 있자면 감정적으로 피곤해진다. 좋은 친구라도 불평불만이 많은 친구라면, 남친과 헤어지고 나서 매일매일 전화해 신세 한탄하면 피곤할 수 있다.     

이 불균형이 계속되면 관계에도 문제가 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그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여자들이 여기에 민감하다. 내가 맨날 전화해야 하는 친구면 나도 전화를 좀 줄이고, 나에게 할 말 다 하는 시어머니면 방문 횟수를 좀 줄이고 등등.     


불균형을 맞추는 다른 방법은 "상대방이 맞춰줘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보통은 의식적으로 그런다기보다는 상황이 그렇게 된다. 친구가 남친과 헤어졌다던가, 시부모님이 아프시다든가, 동료가 짤릴 거 같다든가 하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감정교류의 불균형을 용납, 수용한다. 그래도 이게 계속되면 지친다. 처음에는 동정 내지 배려로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의 레벨을 따라가 주지만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조금씩 맞춰주기의 수위를 낮추게 된다.     

이때 정상인과 학대하는 사람이 갈린다. 정상적인 사람은 감정 교류의 불균형을 늘 인지하고 있고, 심한 부담은 주지 않으려 하며,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오랜 기간 자신이 배려를 받았으면 감사해 하고 나중에 갚으려 한다. 철이 덜 든 사람, 인간관계 잘 모르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등등은 오히려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는 "아! 내가 힘들다고 하면 상대방이 나한테 더 해주는구나!"를 배운다 ―_-  

   

그래서 감정의 학대 자는 계속 자신이 배려받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듣기 싫은 소리를 원천 봉쇄하는 의미도 있다. 예를 들어 왜 살을 빼지 않느냐/취업을 안 하냐/결혼 안 하냐는 소리 듣기 싫으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함을 느끼는지, 어떤 경험이 있었는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든지를 말한다. 문제는 이게 거짓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난 이런 핑계 대면서 상대방을 죄책감 들게 만들고 날 배려하게 해야지" 이런 경우 별로 없다. 실제로 우울해하고 비참해하고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삶의 의식구조는 패턴이고 연습이다. 그런 식으로 반응하면 상대방은 미안해하고 나를 더 배려해주고 난 살 안 빼도 되고 취업자리 안 알아봐도 된다 (...). 사람은 결국 자기에게 편한 것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내 감정에 취해서 죽는 소리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힘든 것 같아도 객관적으로 보면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보다 쉽다. 그러므로 더 편한 쪽을 택한다.     


내 주위는 다 공돌공돌이다 보니 - 감정교류 요구가 낮으면서 무덤덤하지만 상대방의 요구는 최대한 들어주려고 하는 주변 남자들이 이런 여자를 만나면 피를 본다. 이 남자들은 커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 상태는 자신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예민한 거 같다고 느껴왔다.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상대방은 아주 깊이 느끼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배려해준다. 그런데 이런 여자는 최대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명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더해 "나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이 정도는..." 까지 있다. 이거 진짜 사람 잡는다. 이런 여자는 주위 사람들에도 많이 요구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파트너/남친/남편에게는 거의 초인적인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아아. 참 이 글쓰기 힘든 것이, 감정적인 학대를 해봤다/받아봤다 정도는 아니지만 나보다 감정 요구가 큰 사람이랑도 사귀어 보고, 지금은 내가 더 요구가 큰 사람이 된 입장이라 불균형은 양쪽 버전 다 겪어봤다. "사랑하는 사람인데 대화하면서 소통하는 게 뭐가 힘들어??"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댁 입장에서도 "사랑하는 남편의 가족이고, 부딪히면서 서로 친해지는 거고, 힘들게 일 시키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싫어??" 할 수 있겠다. 당신은 직장에서 힘들었던 일, 친구들과 있었던 소소한 일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진짜 재미없는 스포츠 중계를 집중해서 보고 내용까지 기억해야 하는 정도로 죽을 맛일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날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 이게 바로 감정적 학대요. 하기 싫다는데, 그걸 "날 사랑하는데 그 정도도 못 하냐"로 밀어붙이면 환장함.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가까움을 느끼는 방법이, 한 사람은 매일 두세 시간 이야기를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은 일주일에 한두 번 성관계를 맺으면 된다고 하자. 하지만 사회적으로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얘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관계를 무기로 쓰는 사람 많다. 말 한마디 안 하고 한 달 동안 산다면 윈도 부부, 어떻게 그렇게 사냐 난리 나겠지만 한 달 동안 관계 안 맺는 건 그럴 수도 있음이다. 관계에 '응해주는 것' 만으로도 무지 편의 봐주는 생색내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 자신의 얘기 건성으로 들으면서 스마트 폰 보고 게임하고 티비 보고 딴 짓하고 그러면서도 "난 너를 위해서 두 시간이나 니 얘기 들어줬어!" 하면 빡치지 않겠소? 내가 소통해야 하는 욕구는 당연히 상대방이 들어줘야 하는 거고, 상대방이 원하는 소통은 무시하는 것, 이것 역시 감정적 학대. 안 그래도 여자들보다 감정적 소통의 요구가 낮고, 주변 남자들보다도 더 낮을 수 있는 공돌이 입장에서는 환장한다. 일 년에 부모님한테 한두 번 연락할까 말까 하는데 여친님은 하루에도 문자 답 한 번 안하면 전화 폭탄 날아온다. 내 생각 안 하는 거야? 나 사랑하지 않아? 난 사랑받는다는 느낌 받고 싶어!     


단순한 남자들이 의외로 또 아주 자기감정에만 심히 충실하고 감성적으로 섬세함으로 자기 합리화 잘 하는 여자에게 곧잘 끌려서 -_- 죽도록 머슴 노릇하는 것은 물론이고 감정 널뛰기에 장단 못 맞추고 우왕좌왕하는 거 많이 본다. 원래 여자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사랑하는 여자 행복하게 해주는 건 힘들다고 배워서 더 그렇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 노동을 엄청나게 해주고, 그래도 서럽다니까 더 노력하고, 잘못 한다면 반성하고, 삐졌으면 왜 화났나 고민하고, 그렇게 몇 년을 휘둘리다가 어느 날 득도한다. 이건 끝이 없구나. 이 여자,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는구나. 연인 간이라는 것이 오히려 날 샌드백으로 만드는구나. 평생 이렇게 피빨리며 살겠구나.     

남자가 조금 늦게 일한다 싶으면 서럽다고 한다. 정말 내 생각 한 번도 안 했냐고, 직장이 나보다 중요하냐고 한다. 직접적으로 안 물을 수도 있다. 단지 '좀 섭섭함'을 내보이고, 그다음은 뾰로통하고, 그다음은 '아무리 바빠도 내 생각 한 번도 안 했어?' 라고 말하고, 그다음은 "바빴더라도 니 생각 했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안 돼?" 하고, 그 말을 해주면 "그럼 내 생각했으면서 전화는 안 한 거야? 거짓말이지?" 한다(말이라도 해 달라면서 -_-). 친해 보이는 여자가 있으면 그것도 비슷하다. "조금 섭섭해"로 우선 시작한다. 그다음은 "그냥... 좀 뺏기는 것 같아", 그리고 주위에서 편을 들어주면 "남녀 간에 우정은 없는 거야. 네가 처신 잘못하는 거야". 주위에서 편을 안 들어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든지 간에 네가 사귀는 사람은 난데, 내가 싫어하는 건 안 하면 안 돼?" 이때 말 한마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주제로 두세 시간씩 '소통하면서 푸는'것을 원한다는 것이 캐치. 남자 입장에선 환장한다. 그래서 그다음엔 그냥 말 꺼내는 걸 피한다. 그럼 또 추궁한다. 왜 나한테 말 안 해? 왜 숨기려고 해? 사랑하는 사이에 숨기고 그래도 되는 거야? 이렇게 또 두세 시간 말싸움하면 두 손 두 발 다 든다. 말발로는 어차피 밀리기 때문에 신경질만 나고, 소통이나 대화로 친밀감 증진이 크게 안 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건 그냥 고문이다. 그래서 그다음 부터는 아예 싸움 생길만한 일을 피한다. 여자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해서 풀었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자기 합리화로 인한 감정적 학대' 중에 '네가 걱정되어서' 혹은 '우리 미래를 생각하고'가 있다. 제일 대표적인 예는 돈줄을 죄는 것이다. 돈을 모아야 하니까 수출입을 잘 관리하자는 좋은 의도로 시작해서, 남편에게 돈 쓰는 것을 천원 단위까지 수첩에 적어 넣게 시키고 키드 빼앗고 용돈 엄청 적게 주면서 친구들 못 만나게 하고 아무 데도 옷가게 하는 부인 꽤 봤다. 진짜 좋은 의도로 시작했을 수 있고,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시작해서 마지막엔 남편을 완전 병신 레벨로 고립시킨다. 그리고 돈 안 들고 놀 수 있다는 합리화도 처가에 일주일에 서너 번씩 -_-; 간다. '친구들 만나지 말고 그냥 우리 식구들이랑만 만나'라고 말했으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테지만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는 비극.     

자기 감정에 충실함으로의 학대는 - 내가 섭섭한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제일 대표적이고, 나 우울해가 그다음으로 잦다. 우울증 자체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 화났어', 혹은 '나 우울해'를 무기로 무조건적인 감정의 항복을 원하는 것이 문제다. 남편 돈으로는 무리인 집을 원하면서 '우리 아이를 허접한 곳에서 키우려니까 너무 우울해', '꼭 샤넬 백을 원하는 건 아니었는데 네가 무조건 싫다니까 섭섭해' 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유야 어쨌든 내 감정이 이러니까 네가 어떻게 해 달라는 것. 혹은 너야 뭐라든지 난 지금 속상하니까 네 얘긴 다 꼬아 들을 거고 넌 무조건 잘못했다 빌고 사랑한다 말하고 내가 아무리 무시해도 계속 빌다가 내가 용서해주면 기뻐해라... 이런 거. 남자는 이 상황에서 뭘 해도 손해다.     

가정 폭력에 익숙해진 여자는 남자의 목소리만 높아져도 움찔한다. 실제 맞는 것은 일 년에 몇 번이라도, 평소에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한다. 감정적 학대에 익숙해진 남자는 여자의 감정고조와 분노, 몇 시간 며칠 몇 주 몇 달 (-_-) 에 걸친 토라짐, 따지기, 말싸움, 뭐 그 외 반복되는 피로한 감정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최대한 맞춰준다. 시댁이 싫다면 안 가고(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싸우고/신경전 벌이고, 푸느라고 또 했던 얘기 또 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지 약속하고, 섭섭했다는 것까지 다 들어주고, 푸는 의미에서 나가서 외식하고 등등 꼬박 삼박 사일 난리 치는 것보다 그게 더 나으니까), 주위 사람 보지 말라면 안 보고 (주말 내내 말도 안 하고 애도 안 보고 그리고는 울고 얘기하면서 풀고 총 열 시간의 심한 감정 노동보다는 그냥 친구 하루 안 보는 게 나으니까), 여하튼 할 수 있는 대로 다 맞춰준다.     

그러다가 어느 날, ㅅㅂ 나 왜 이 지랄 하고 살고 있지?? 하고 툭 부러진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으면 그때야 갑작스럽게 이혼! 이러는데, 짧게는 3~5년, 길게는 20년까지 걸린다.     


덧1.

저 사실 주위 사람들은 거의 남자들이고, 실제로 안 좋은 듣는 얘기는 여자 때문에 고생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인터넷 게시판 등에 보면 남자 때문에 고생하는 여자들이 더 많죠. 뭐 다 자기 입장을 주로 얘기하는 게 사람 본능인데 남자들은 문제가 있어도 게시판에 올리고 이런 건 좀 덜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덧2. 

위에 예를 든 여자들은 제가 아는 남자들 부인/여친이 대부분이라 한국 여자는 없습니다. 아마 제가 아는 한국 남자들이 많았다면 한국 여자 예도 있을 텐데, 제가 접하는 한국의 예는 거의 다가 인터넷이고, 직접 만나는 사람들은 여자들이니 아무래도 여자 쪽의 이야기를 듣는 게 많아서;;     


덧3. 

감정적 학대는 남자나 여자나 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남자가 훨씬 많듯이, 감정적인 학대는 여자가 하는 쪽이 더 많은 거 같네요. 남자의 감정적인 학대 중 제일 무시무시한 것이 '어설픈 예술가 타입'인데 치명적입니다.     




3년 전에 쓴 글입니다. 사실은 이다음 글 올리려고 했는데 이 글이 없으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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