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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4. 2018

사랑하는 남자와의 감정의 불균형

2016년 9월 28일

2013년에 쓴 글입니다. 아래 글과 연결됩니다.


여자의 심리적인 학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좀 더 좋아하는 것 같은 남자와 십 년 넘게 결혼해서 살고 있다. 결혼 전의 유일한 남친은 좀 과하게 날 좋아해주는 사람이었다. 내 자신이 감정적인 요구가 낮은 편이라서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나는 무심한 편, 상대방이 좀 더 교류를 원하는 편이 대부분이었다. 고등학교 때에 친구에게 한 번 그런 말을 했다가 그 친구에게 아주 큰 상처를 입혔다. 내가 너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필요로 한다고. 하지만 진짜 그랬다. 그리고 그게 왜 감정적으로 잔인한 말인지 몰랐다. 남친도 그랬다. 내가 원하지 않는 감정의 투자를 해주고 떠받들어 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했지만 난 심드렁했다. 부담스러웠다.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아 짜증 났다.     

그러다가 신랑 만나서 반전이 되어 이때까지 살고 있는데, 평생 반대 방향에서 있다가 이렇게 당하게 되니 참 느끼는 게 많다. 그래서 아랫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내가 신랑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잘 이해한다. 상대방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을 좋아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기 때문에 그 사람이 원한다면 어느 정도 노력을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여자 입장에서는...     


1. 노력 따위 필요 없어!!! 난 니가 정말 원해서!! 니가 날 사랑해서!!! 그래서 나랑 있고 싶어서 안달하고 싶어 하는 걸 원하는 거야!!! 너 지금 넌 싫지만 내가 원하니까 억지로 맞춰준다는 거냐!!!! 그럼 내가 비참하잖아!!! 필요 없어! 치워!!     

2. 아니 그렇다고 진짜 꺼지라는 거 아니고... 야 이 나쁜 놈아 내가 이렇게 지금 비참한데 좀 모른 척하면서 더 잘 해주면 안 되냐     

3. 글구 내가 삐져있을 땐 니가 좀 신경 쓰는 척이라도 해야 내가 마음이 풀리잖냐;; 내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 치는 건 아는데 그래도 니가 날 사랑한다면 내가 안 뻘쭘하게 좀 풀어주면 얼마나 좋아     


머 이렇게 간다. 물론 난 좀 감정 기복이 덜하고 포기가 빠르며 남한테 뭐 원하는 거 알레르기적으로 싫어하는 인간이라 실제로 위의 이유로 싸우거나 한 적은 없다. 단지, 내가 그렇게 부담스럽게 여겼던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시각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신랑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사회 교류 욕구가 심히 적다. 나도 낮은데 이 인간은 수도승 급이다. 가만 두면 친구들 만나고 그런 일 전혀 없이 집에서 컴터만 붙잡고 앉아있을 거다. 사람을 대할 땐 잘 하는데, 일부러 자기가 만날 거리를 찾진 않는다. 그런 신랑이 나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 신랑한테는 크나큰 투자이며 희생... 일수도 있다는 거 너무 잘 안다. 나도 많은 거 안 바라는데, 그래도 하루에 30분~한 시간 정도는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의 최소한의 요구이다. 현재까지는 괜찮다. 아침에 같이 출근하고, 저녁에 같이 퇴근할 때도 많고, 저녁에 최소한 삼십 분 얘기하고, 주말에는 거의 시간을 같이 보낸다. 난 두세 시간을 같이 얘기했으면 좋겠지만 신랑에겐 나와 얘기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난다고 해서 더 사랑이 늘어나는 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신랑의 인생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다 합친 것보다 나와 보내는 시간이 몇십 배로 많은 것도 안다. 나와 보내는 시간이 백퍼 애정이 깊어지는 경험이 아니며, 가끔 솔직히 컴터 책 읽고 싶지만 내가 조잘거리니까 옆에서 앉아서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안다.     

나 빚지는 거 무지 싫어하는 사람인데 신랑한테는 늘 빚지는 느낌이라서 갚아주려고 나름 노력한다. 내가 원하는 최소한의 필요를 계산하고, 신랑에게 좀 과하게 요구한다 싶으면 혼자 있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편이다. 그 외 신랑 없이 혼자 만나는 여자 친구들과 점심 저녁 먹으러 가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블로그에도 길게 쓰고 등등. 그래도 여자라서, 감정의 요구가 더 큰 을의 입장으로서, 난 담담할 때 신랑이 와서 나와 얘기하고 싶어 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자고 보챘으면, 그리고 그것이 나를 향한 사랑 때문에!! 주체할 수 없이 같이 있고 싶어 함이었으면 하는 로망이 있다. 결혼 십 년 지난 애 엄마지만 여전히 그렇다(물론 전 남친 같은 케이스로 돌변한다면 짜증나겠지만).

일주일에 두 번 신랑은 그림 그리러 간다. 일 끝나고 세 시간이다. 내가 끊어줬다. 가는 거 미안해하지만 무조건 보낸다. 밤에 늦게 뭔가 하고 싶어 하면 두고 그냥 잔다. 특히 주말에는 밤늦게 뭘 하든 두고, 아침에는 아이 살짝 데리고 나와서 최소한 열한 시까지 자게 둔다. 이러면 내가 되게 착한 거 같지만, 안 그럴 때는 신랑이 애 다 보고 밥 다 해먹이고 나랑 놀아주고 ...;; 혼자 있어야 충전이 되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시간을 주면 훨씬 더 봉사 정신 충만한 남편으로 돌아온다 (...) 그래도 잔인하게 말하자면 신랑이 나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 하는 것보다, 내가 더 그렇다는 거 뼈저리게 안다. 여자로서 자존심 상한다. 하지만 글케 생겨먹은 걸 어쩌겠냐 포기하고 산다.     


감정의 불균형이, 그리고 어느 정도 서로의 희생을 원하는 것이 곧바로 감정의 학대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렇지만 불균형이 크다면 한쪽의 희생이 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계산적인 요구가 아니라, 나는 정말 가슴 한켠 시리도록 느끼는 외로움, 서러움, 점점 무너지는 자존심, 나에게 이런 느낌 들게 하는 남자와 이러고 살아야 하는 회의감 등의 느낌이 진실이기 때문에 더 힘들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데카르트가 말했는데 실제로 인간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으로 자신의 실재를 확인하고, 그 느낌은 현실이기 때문에 더 힘들다. 주위 사람이 뭐라 하든 나는 아프고 외로운데 어쩌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쩌라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나를 좀 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내가 갑의 위치가 되던지, 나의 감정의 요구를 줄이던지 (아이를 낳아서 아이에게 신경을 쓰는 쪽으로 해결하는 여자가 꽤 많다), 다른 식으로 요구를 푸는 방법을 찾던지 (친구를 만나고, 나도 바쁘게 살고 등등), 아니면...     

학대자 방식으로, 니가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냐고 죄책감 만땅 들게 하는 요구로 들들 볶으면 된다 ㅡㅡv 의외로 오래 참고 버티는 남자들 많더라;;     


덧:

여자들은 자신의 감정의 요구가 더 큰 것을 서럽게 느끼지만 남자들은 또 글케 생각 안 하더라. 여자는 원래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맞춰주는 건 당연하게 하는 남자들 (특히 내 주위에)이 대부분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감정의 학대자 여자들과 매치가 잘 맞는다.     




역시 2013년에 쓴 글입니다. 아래 글과 연결됩니다.


https://www.facebook.com/seattleyangpa/posts/1872091246409687

https://brunch.co.kr/@yangpayangpa/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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