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pa Jun 04. 2018

때려치울까 라는 생각이 들 때면

2016년 11월 21일

밀린 피드를 보다가 이래저래 몇 번 접한 바람계곡 페이지가 닫혔다는 소식이 보였다.     

마침 나도 "아씨 때려치울까" 생각 정말 많이 한다는 예전 글을 다듬던 중이었다. 아래에 발췌.     



 

글쓰기를 너무 좋아하지만 주목받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방문자들이 그리 많지 않은 블로그 사이트에 둥지를 틀고 십 년 동안 글을 썼다. 여혐 문제가 불거지면서 몇 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간단하게 말하면 꼴펨이라 욕먹었다;;) 있었고, 난 나한테 욕하려면 최소한 본명 걸고 해라는 생각으로 정든 블로그를 닫고 페이스북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지인들만 방문했고, 방문자가 백 명이 넘지 않았다. 조용하고 아기자기해서 좋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IT 관련 글이 몇 개 확 퍼지면서 구독자가 늘기 시작했다. 새로운 구독자는 거의 남자였다. 페이스북으로 옮긴 지 6개월이 되어 구독자가 4천 명을 넘어가자 겁이 덜컥 났다.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 말도 많아지고 이런저런 귀찮은 일도 생기는 걸 너무 잘 알아서였다. 곧 악플러도 모일 테고, 혹시 안 좋은 일이 또 생긴다면 내 신상도 털리면서 귀찮은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보다 너무 판이 커졌다 싶어서 확 엎어버리고 도망갈까 충동이 들었다. 

    

남자 비율이 절대적인 공간에서 성차별, 여성혐오에 관한 글을 꾸준히 올리는 것은 솔직히 쉽지 않다. 구독자 수가 줄어들까봐가 아니라, 지난 십 년 넘게 블로그를 하면서, 성차별에 관한 의견을 약간이라도 피력할 때 어떤 피드백이 오는지, 어떤 쌍욕과 협박이 날아오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걍 다시 접고 지인들과 친목질하는 페이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다짐한다.     

마음 다잡고 한 번 갈 데까지 가보자. 나처럼 해외에서 일하고 살면서 뒷일 걱정 안 해도 되는 사람이 이렇게 몸 사리면 딴 사람은 어쩌냐. 페친이 김치녀 페이지 좋아요한 사람이 대부분인 한국 공대녀는 어쩌고, 찌질한 개저씨 상사나 선배들이 줄줄이 페북에 포진해 있는 남자들은 어쩌냐. 좋아요 누르기도 무섭고 뉴스 공유 하나에도 지적질이 많은데, 그런 거 하나 없는 내가 그러면 안 되지.     


이미 나 이전의 페미니스트들이 목숨 걸고 싸워준 나라에서 살다 보니 많은 혜택 누리고 있잖아. 극도로 남초인 직장 다니면서도 성희롱 성차별 발언 들어본 적 없잖아. 후세대를 위해 싸워준 분들 덕분에 남의 날아와서 여성 외노자로 편하게 사는 주제에 이득만 쏙 빼먹고, 내가 큰 손해 보지 않으면서 도울 수 있는 부분까지도 욕 좀 먹을까 봐 무서워서 안 하면 양심 불량이지. Pay it forward. 노력하지 않고도 받은 게 있는데, 나도 다른 이들을 위해서 별거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이렇게 다짐했는데도, 이제는 (내 뻘글, 일상글, 서인국 빠순이글 등등을 불구하고) 구독 만 삼천 명이 넘는 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갈 때 마다 묵직한 두려움이 있다. 바람계곡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꼈나보다.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참 부지런하게 글 올린다 싶었는데.     

옮겨가시는 곳에서는 더 나은 경험되시기를 바라며.     


I'll hold the fort. Hopefully others will come along.


 제 페이지는 지키고 있겠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더 오겠죠. 저는 때려치...읍...읍...읍...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남자와의 감정의 불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