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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나쁜 아빠 되기 힘들다는 글이 남성혐오적이라는 댓글에

2016년 10월 24일

나쁜 아빠가 되기 힘들다는 글이 남성혐오적 글이라는 댓글을 봐서. 

    

그 글에서 나오는 여성혐오는 거의 다 여자가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시간을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데에 보낸다. 여자아이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주변인으로부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비난받는지,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지를 아주아주 자세하게 코칭을 받는다. 이런 말을 하면 남자들은 "우리도 남자는 이래야 된다 뭐 그런 말 많이 듣거든!!"하고 발끈하는데, 이건 여자들 오지랖의 깊이와 넓이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엄청난 오지랖은 거의 백 퍼센트 여자들에게서 온다. 성적인 평가질과 상품화, 음흉한 성추행은 남자가 할지 몰라도, 삶의 전반적으로 찍어 누르는 셀 수 없이 다양한 평가질과 너 그렇게 하면 사랑 못 받는다, 시집 못 간다, 남편이 싫어한다 등의 악담은 여자 몫이 훨씬 크다. 

    

여자분들에게 묻는다. 어떤 여자는 진짜 나쁜 여자다, 나쁜 엄마다라는 욕을 당신에게 최근 미주알고주알 한 사람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어떤 여자는 정말 시집을 잘 갔다, 어떤 여자의 남편은 이렇다 저렇다라는 평가는 어떤가. 어떤 남자가 좋은 아빠다 자상한 아빠다 할 때, 그 화자는 누구인가. 나의 수많은 경험은 보통 여자였다. 어느 집 남편은 집안일 하나도 돕지 않지만 그래도 따박따박 월급 받아오는 게 어디냐. 어느 집 남자는 주식해서 다 말아먹었다더라. 그래도 자식새끼 끔찍한지 공사판에 나갔다더라. 어느 집 애들은 꼴이 영 꾀죄죄하더라. 그 집 엄마는 직장도 안 나가면서 뭐 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집 엄마는 지 직장 나간다고 주변 엄마들한테 민폐 끼치더라. 그 집 남편이 참 불쌍하다, 부인이 일한답시고 나다녀서 밥 한 끼도 못 얻어먹더라. 어느 집 엄마는 전업인데도 집이 왜 그 꼬라지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남자가 많은가 여자가 많은가.   

  

이게 왜 그럴까. 여자가 여자를 혐오해서 그런 걸까. 난 얼마 전에 올린 "인정하기보다는 착각으로 버틴다"글과 연계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인류 역사상 여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보통 결혼이었다.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평생이 좌우된다. 그런데 모든 여자가 좋은 남자를 만나 좋은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이혼하고 더 나은 남자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이었다. 그러므로 어차피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면, 최대한 합리화하고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그래도 우리 남편은 돈은 벌어와서 가족 먹여 살린다. 우리 남편은 바람은 피워도 첩 자식을 데리고 들어오진 않는다. 우리 남편은 주사가 좀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애들 끔찍하게 생각한다. 우리 남편은 폭언은 하지만 그래도 밥투정은 덜하다. 그렇게 합리화한다. 그리고 실제로, 노동해서 돈을 벌어오고 그 돈으로 가족을 꾸준히 먹여 살리는 남편이 있는 여자는 그럭저럭 운이 좋은 편이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나쁜 아빠가 되기 힘들다"는 그 시절의 흔적이다. 남성혐오성 글이 아니라, 얼마나 여자들이 오랜 역사 동안 기대를 낮추고, 최소한의 특혜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짠한 증거다. 때리지만 않아도 어디냐. 애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상하게 하는 게 어디냐. 나 혼자 저 세상 밖에 나가면 살아남을 수 없는데 그래도 나 거두고 우리 새끼 거두는 게 어디냐 뭐 그런.     

그리고 여자들의 비혼 선언이 부귀영화를 바라는 허영 김치녀들의 이기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 많은데 - 장담하건대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더 많은 시간 동안 실패한 결혼을, 고생하는 여자들을, 후회하는 친구들을 보고 듣고 같이 고민한 결정일 거다. 남친을 사귀면서도 이 남자가 화나면 나를 때릴 것인지, 나를 두고 바람을 필 것인지, 이 남자를 믿고 나는 경력 단절을 해도 되는 건지를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고 비슷한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어떻게 사는지도 알아보는 게 보통이다.     

모든 결혼이 불행하지는 않다. 나 자신도 내 머리털 나고 제일 잘 한계 내 남편과의 결혼이라고 생각할 정도고, 주위에도 행복한 부부들 많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불행한 부부도 많다. 나야 어린 시절에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했다가 운 좋게 잘 풀린 경우지만, 만약 지금 내가 싱글이라면, 그리고 한국에서 결혼 상대를 찾아야 한다면 비혼 선언이 멀게만 들리진 않는다. 아직도 여자의 인생에 가장 큰 선택은 결혼이고, 아직도 그 결혼이라는 선택은 러시안룰렛에 가깝다. 이미 선택한 이들은 합리화하고 다른 이들에게 기대를 낮추라고 한다.     


결론.

남성혐오가 아니다. 결혼과 남자를 최대한 좋은 쪽으로 보려는 여성들의 생존 본능이 여혐으로 발현된, 사실 가슴 많이 아리게 하는 케이스다.     



나쁜 아빠가 되기는 힘들다 원글: 

https://www.facebook.com/londonyangpa/posts/1817544328531046

https://brunch.co.kr/@yangpayangpa/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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