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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한국 여행기

2016년 11월 13일 

잡담.     


- 한국 가는 중이다. 왜 가는 "중"이냐면, 히스로 가기 싫어서 무려 중간에 7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암스테르담 경유 비행기를 200파운드나 더 주고 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암스테르담에서 죽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히스로 대신 시티 에어포트, 우리 집에서 12분밖에 안 걸리는 공항에서 출발했다. 나 요즘에 히스로 알레르기가 생긴 것 같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다리가 묵직해지고 이명현상이 나타나...는 것 까지는 엄살입니다. 하지만 싫어요. 개트윅도 싫어요. 시티 에어포트는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했는데도 체크인 1분, 보안 체크 5분 하고 곧바로 들어가서 시간이 무척 널널했다. 물론 면세점은 별로 없었다. 힝.     


- 저번 비행 때 성추행하는 개새끼 옆에 앉은 터라(당했다고 쓰려니까 또 열 받아서 어휘 바꿈) 이번에도 신경이 쓰였다. 이봐이봐. 왜 재 수없이 그놈 옆에 앉은 나만 계속 노이로제 시달려야 하냐고. 어쨌든. 키 185의 건장한 흑인 청년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내가 당한 성희롱 성추행은 지금까지는 백 퍼센트 백인 남자였다. 강도는 흑인이었으므로 밤길에 걸을 때 흑인 남자가 보이면 무섭지만, 성추행 이런 건 하나도 안 무섭다. 이건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본능적인 ... 아 진짜. 왜 내가 노이로제 걸려야 하냐고 ㅅㅂ ㅅㅂ.     


- 비행기 뜬 게 민망하게 한 시간도 안 되어서 곧바로 비행기가 하강했다. 그런데 내 평생 이렇게 긴 택시 거리는 또 처음이다. 비행기가 터치다운 하고 진짜 한 20분은 활주로를 택시해간 거 같다.     


- 내려서 레스토랑을 쭉 둘러봤다. 그리고 맥도널드 갔다. 그래, 나 저렴한 여자다. 어느 나라 가던지 맥도널드 메뉴 꼭 확인한다. 확인만 한 거 아니고 먹기도 했다. 치즈 쿼터파운더 냠냠.     


- 짐을 정확하게 십 분 만에 쌌으므로 뭔가 잊어버렸을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아무래도 적중할 거 같... 음. 로션 잊어버렸군. 더 생각하지 말아야지.     


- 한국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아무도 안 보고 올 계획이었다. 사실은 일정 빡빡한 것도 있지만 난 최대한 편한 옷차림으로 장거리 비행하고 나면 완전 거지 중에도 상거지므로 사람들 피하고 싶은 것도 있다. 안 그래도 많이 없어 보이는 상그지 행색인데 인천 공항에 터치다운 하는 순간 그 비루함이 한 스무 배로 심화되더라. 안 다듬은 머리하며 피부 꼬라지하며 보푸라기 엄청난 옷 상태 하며, 얻어 신은 운동화 하며. 아니 근데 그래서 한국 온 거잖아요. 나 머리하고 피부과 가러 왔다구. 시간 있음 옷도 사고. 목욕탕 가기 전에 목욕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쵸? 그러니 당연 한국 가기 전에 머리 하고 갈 수도 없는 거고.     


- 한국 가면서 남편과 비장한 약속을 했다. "한국 가서 잘생긴 남자 만나면 나 어떡하지?" (소핑왕 루이 버전) 했더니 남편이 잠깐 생각하더니 탑5 조약에 넣자고 했다. 우리는 각각 탑5에 드는 연예인과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면 바람피워도 이해해주자는 골자의 거래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서인국이 공항에서 나를 맞아서 "나 어떡하지?"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사귀겠노라고 말했다. 남편은 무릎 꿇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조금 생각하더니 강아지처럼 배 보이면서 아양도 떨어야 한다고 했다. 난 무릎도 충분하다고 밀어붙여서 합의 봤다. 인국아 인천 공항에서 무릎 꿇고 기다리면 남편도 봐준대. 들었지?     


- 혹시나 해서 인피니트는? 했더니 걔네 몇 명이냐고 물어봐서 일곱이라고 했더니 반칙이라고 안 된단다. 쩝. 그래. 내 희망은 오로지 서인국이다.     


- 아, 오프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샜네. 충동적으로 아 몰라 거지꼴이라도 간단하게 오프하자 해서 2년 동안 모은 호텔 포인트를 십 분 만에 방 하나 지르는 데 썼다. 시차 때문에 잠도 안 오겠다 우리 신나게 놀아보세 (멤버 신청 끝났어요 부탁해도 늦었음). 

    

- 난 사실 시위 나가고 싶었는데 시위가 토요일이었음 ㅠ0ㅠ 전 촛불 시위는 신문으로만 보고 단 한 번도 안 나가봤단 말입니다!! 미워요. 치킨이나 잔뜩 먹어야지.     


- 저는 이렇게 사사로운 목적으로 한국에 2박 3일 다녀오고, 대신 12월에 남편은 일주일 혼자 휴가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따로따로 각자 노는 우리 가족. 아아 바람직해라.     


- 보딩이 아직도 한 시간 남았네요. 아이구 지겨워라. 이만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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