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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서울, 새벽 네 시의 기묘한 이야기

2016년 11월 15일

  

..는 낚시다. 지금 새벽 다섯 시다. 세시 반에 깼다. 


뒤척뒤척하다가 폰 보면서 놀다가 다시 자려고 헤드폰 끼고 음악 듣다가 결국 포기하고 나갔다. 호텔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어서 들어가서 엄청 열심히 구경했다. 한국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을 빼지?? 삼각 김밥, 매콤불닭, 제육볶음, 김밥, 짜왕, 컵라면, 참치죽, 육개장 사발면, 신라면 컵라면, 불닭 볶음 컵라면 구입했다. 짜왕 사발면을 시식했다. 맛있었다. 삼각김밥까지 먹었다. 맛있었다.     


시간을 좀 돌려보자. 세 시 반 정도에 깨기 전, 난 밤 열두시 반에 너무 피곤해서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뻗어 잤다. 그러니까 난 한 세 시간 잔 거다. 더 전으로 돌아가자면, 난 런던을 떠난 토요일 오전부터 지금 현재 화요일 새벽까지 62시간 동안 약 일곱 시간을 잤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잠이 모자라고 피곤하면 밥을 많이 먹는다. 그리고 난 한국 편의점을 보면 해까닥 돈다. 특히나 컵라면. 볼 때마다 먹는다. 지난 62시간 동안 난 컵라면만 약 일곱 개를 먹었다. 편의점이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컵라면 먹고 싶어 5분 못 기다리고 죽을까봐 쟁여둔 게 지금 현재 내 옆에 세 개 더 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난 기내식도 두 개 먹고, 맥도널드 밀 세트도 먹고, 출발 전에 샌드위치 먹었고, 내려서는 곧바로 제일 처음 보이는 빵집 뚜레주르에 들어가 김치 고로께, 카레빵, 소세지빵을 바나나 우유랑 먹었다. 서울 도착해서는 저녁 여섯시 반부터 그 다음날 새벽 여섯시까지 오프에 오신 분들과 진짜 쉴 새 없이 먹었다. 삼송빵집(내 머리털 나고 이렇게 맛있는 고로께 처음 먹어봤다), 컵라면, 케이크(한국 케이크 진짜 맛있다), 초밥, 치킨, 타코야끼, 과자, 백만 년 만에 투게더 아이스크림, 안주용 치즈, 타르트, 초콜릿 등등을 열두 시간 동안 수다 떨면서 먹고, 아침에 두 시간 정도 자고, 컵라면, 컵라면 그리고 라미띠에 프렌치. <- 여기 대박.     


나 사실 비싼 식당 잘 안 다닌다. 공대녀 감성으로는 가격이 두 배 비싸면 두 배로 맛있어야 한다는 신념에다가 식당의 있어 보이는 분위기에는 지갑이 유혹받지 않다 보니까 저렴하면서 그럭저럭 맛있는 곳을 자주 간다. 하지만 런던 살면서 좋다는 레스토랑 너무 안 가는 것도 좀 그렇고, 무엇보다 런던에 그리 많은 미슐랭 레스토랑들이 점심 메뉴는 그럭저럭 저렴하다는 팁을 얻어서 여기저기 좀 다녔다. 아, 그리고 직장에서나 출장 다닐 때 내 돈으로는 안 갈만한 곳 좀 다녔구나. 하여튼. 그리 고급 입맛은 아니지만 안 다녀 본 건 아닌데.     

라미띠에 진짜 맛있더라. 최근에 간 미슐랭 스타 두 갠가 세 개, 런던 알랭 뒤카스보다 맛있더라. 이런 거 보면 어렸을 때 입맛이 결정되는 게 맞나보다. 내가 한국 입맛이라 그런가, 진짜 딱 맞았다. 알랭 뒤카스나 그 외 런던에서 먹은 프렌치는 간이 좀 셀 때가 많았거든. 미친 듯이 맛있었다. 버터랑 빵부터 시작해서 코스 하나하나 다(꼭 흠을 잡자면 그 중 한두 개는 맛있긴 하지만 '흔하게 접한 맛'이라고 생각되는 거 있긴 했다). 그리고 내 입맛에는 케이크나 디저트도 한국이 더 맛있다.     


물론 이거는 한국 편의점에만 들어가면 핥핥거리면서 삼각 김밥, 컵라면, 도시락, 다 폭풍흡입하는 입맛의 인간 리뷰니 신빙성이 안 간다고 해도 이해한다.     

어머. 새벽 다섯 시 이십 분이구려. 이 새벽에 컵라면 하나 더 먹어볼까. 아니면 불닭 엄마 김밥 뜯어볼까. 어제 저녁 라미띠에 코스 요리 다 처먹어놓고도 좀 걸었다고 또 김치 도시락 비비고 만두 처먹은 인간이 말한다. 하하...하....하...     


한국 잔류 시간이 이제 열여덟 시간 남았다. 얼마나 더 냠냠 먹을 수 있는지 역사를 쓰고야 말겠다. 아직 파리 바게뜨도 못 갔고 떡볶이도 못 먹었고 냉면, 비냉, 우동 뭐 이런 면 종류도 못 먹었고 백화점 식품관도 못가 봤고 사실 치킨도 한 번 더 먹고 싶고 돈까스도...     

열여덟 시간 아껴서 촘촘히 빠짐없이 먹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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