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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한국의 줄세우기 법칙 분석

2016년 11월 18일

참고로, 아래는 3년 전 부산 방문했을 때 한국의 줄 세우기 법칙을 처음으로 분석해보다 나름 신선하게 느끼고 쓴 글이다. 이땐 좋은 쪽으로 보려다 보니 뭐 어쨌든 공평하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했는데, 이번 방문으로 완전 생각 바뀜.     




난 한국에서 쇼핑 다니면 많이 무시당한다. 살 것 같지 않으니까 뭐라 물어봐도 귀찮아하고, 싼 것만 보여준다든지 한다. 하지만 전혀 분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 편의에 지장이 가서 짜증 났을 뿐. 한국의 시스템 자체에는 별 반감이 없다. 사실 이렇게 좀 더 획일적인 사회일수록 프로파일링 시스템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런던에서는, 한 문화 계열마다 '있어 보이는 방법'이 두세 가지라고 할 때, 워낙 출신 국가가 많고 문화가 많으니까 내 문화 속 사람 아니면 이게 있는 척하는 건지 그냥 개성인지 알 수가 없다. 인도 쪽은 금 장신구를 많이 하는 게 있어 보이는 거고, 또 어떤 나라는 실크 제품, 어떤 나라는 무조건 xx 선글라스 등등. 그래서 좀 더 개인 개성이 강해 보이고, 내 나라에서 통하던 시스템이 좀 웃겨 보일 수 있다. 물론 내 나라 시스템이 웃긴 것이 아니라, 내 나라에서는 진실로 통하던 것이 아니게 되면서, 내가 쌓아온 '있어 보이기 노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서 그렇다. 내 나라는 속물 같으나 이 나라는 아닌 것 같다. 정답은 '내가 익숙한 기준이 통하지 않고, 현지의 기준은 내가 몰라서 알아보질 못했다'이다.     


좀 삼천포이긴 하지만 연관된 얘기니까 해 보자면, 큰아들한테 영국에서 아무리 한국말 가르쳐봐야 별 소용없다. 한국에 온 첫날에 감사합니다를 가르쳐 줬는데 들은 척 만척 하더니, 버스를 타서 자리에 앉으니까 그 뒤로 타는 사람들이 교통카드를 찍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감사합니다' 따라 하더라.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다 '안녕하세요'를 하니까 그것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까 정말 peer pressure,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정상기준'의 힘은 절대적이다.     

특히나 한국처럼 다문화가 아닌 곳에서, 대접받는 방법이 부티 나는 거라면, 최대한 부티 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석이다. 비도덕적이냐 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어느 사회든 있는 건데 뭘.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기준을 따른다 할 때, 그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는 것도 당연하고 말 되는, 좋은 방법이다. (rational choice of heuristics, 이거 한국말 뭐야 ㅡㅡ)     


그러므로 내가 허접해 보이고, 돈을 안 쓸 것 같은데도 잘 해주는 사람의 태도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1) 사회에서 사람들을 판단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2) 판단은 가능하지만 장사가 잘 안되기 때문에 낮은 가능성에도 희망을 건다 

3) 외양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여 도덕적으로 친절하게 대한다 

4) 어차피 팔든 안 팔든 내 소득에는 상관없고, 혹시라도 불친절하면 클레임 걸릴 수 있어서 친절하게 한다/ 혹은 그냥 월급 받는 매장 직원이라 기본적으로 친절하게 대한다.     


여기에서 오너와 고용인이 또 갈린다. 고용인은 웬만하면 그냥 친절하게 해주면 된다. 특히 세일즈에 따른 커미션이 없으면 더하다. 사실 돈은 안 쓰더라도 시간 많이 잡아먹는 손님과 수다 나누며 놀아도 월급은 같다면, 이 고용인은 자신에게 제일 이익이 되는 옵션 (잘 맞는 손님과 노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만약 세일즈에 따라 커미션이 갈라지고, 본봉은 아주 적다면 그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을 쓰지 않는 손님은 내 시간 낭비다. 매장에 손님이 별로 없다면 상관없지만, 시간 많이 잡아먹고 돈은 안 쓰는 손님을 상대하다가 돈 되는 손님을 놓칠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시스템을 꼭 도입해야 고용인이 열심히 할 거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이런 방식을 쓰면 고용인은 돈 안 되는 손님에게 아주 기본적인 친절만 하고, 빨리 보내려고 한다.     

오너 입장은 커미션 받는 고용인과 비슷하긴 하나, 매장이나 브랜드의 인상도 고려한다는 데에서 좀 다르겠다. 하지만 위의 옵션을 보자. 만약 돈 안 되는 손님에게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는 오너라면, 프로파일링을 잘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다면 머리가 별로 안 좋을 수가 있다 (...) 아님 눈치가 아주 없던가. 평생 살아온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상당히 획일적으로 사람 구분이 쉬운 동네에서 사업하고 살면서 누가 돈 쓸지 안 쓸지도 모른다면, 사업 수완은 있을까? 돈 관리는 잘 할까? 그리고 기본 프로파일링을 잘못해서 시간 낭비를 많이 한다면 수입도 비례해서 작을 것이고, 그렇다면 장비도 안 좋을 가능성 있고, 시술 경험도 적을 수 있다(꼭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프로파일링 안하고 무조건 친절하게 시간 들여 설명한다고 해서 그게 다 좋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소비자 입장에서야 내 가 거지꼴을 했더라도 잘 해주면 좋겠지만, 시장논리로 보면, 시간 분배 잘 못하고 타깃 마케팅 못하는 곳은 성공적인 사업체가 확실히 아니다. 

    

나의 경우는 외국에서 오래 있다가 온 것도 있고, 사실 런던에서도 많이 추레하게 다니는 편이라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보기 힘들다. 그러므로 나를 상대할 때, 내 외양을 보고 세일즈 정성을 들이지 않는 것은 정확한 프로파일링이다. 이때 내가 상대방에서 좀 더 시간의 투자를 원한다면, '나는 당신의 프로파일링 스케일에 해당되지 않고, 돈 쓸 의향이 있소' 라고 분명히 밝히고 상대를 납득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니넨 속물 어쩌고 하면서 분해하는 건 억지일 수 있다. 런던의 음식점에 가서 매운맛을 주문할 때, '영국 수준으로 매운 거 말고 인도 수준으로 매운 거 주세요' 부탁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95%의 손님이 생각하는 '매운맛'을 보편적인 수준으로 잡고 있으니까, '나는 소수의 매운맛 수준을 원한다'라고 말해야 하잖소(사실 이렇게 말해도 아주 맵게 안 나올 경우가 있다. 진짜 인도 사람이 아니면, '맵게 하라고 했다고 이렇게 입도 못 대게 맵게 하냐!!' 욕먹을 수가 있기 때문).     



 

이 글은 한국처럼 완전 표시 나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대접을 달리하는 문화를 접하면서, 그 사회내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썼다. 난 보통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라서, 뭐 한국 사람들도 뭔가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하겠지 했다.

     

이번에 갔다 오고 나서의 결론은 아랫 글에 썼듯이 다르다. 한국의 방식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공평한데, 룰은 확실히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서 모든 이들이 평가와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무시를 당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이 되고, 그 무시와 불이익이 정당화된다는 말도 된다.     


물건을 팔 때에는 정확한 프로파일링으로 돈 쓸 만한 사람에게 잘 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일지 모르지만, 약간의 비효율성 - 사회 복지, 세금, 재정상태나 외모에 눈감아 주기 - 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된다.     

지금 한국의 방식으로는 없는 사람도 불행하지만 있는 사람도 행복하진 않다. 어쨌든 최고는 너무나 되고 힘들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인 곳에서 도토리 키재기로 서로 기 싸움 하고 무시하고 남의 호의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호구로 보일까 가시 세우는 건 상당히 에너지 낭비스러울 뿐만이 아니라 승자는 없는, 다 같이 불행해지는 시스템이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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