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5일
세계 생산성의 블랙홀이라는 레딧에서 그런 토픽이 있었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남초 환경에서 살고 아주 일찍 결혼해서 남자들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글 보면 확실히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게 많겠다 싶다. 한국에는 해당 안 되는 부분도 많겠지만, 내가 생각 못 했던 부분 몇 개만.
어디에서 아프리카는 노인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서구인들은 어린아이의 슬픔을 슬퍼한다는 말이 있었다. 아프리카는 죽음과 사라지는 노인의 기억과 지혜를 안타까워하지만 서구인들은 어린아이의 가능성을 슬퍼한다고. 아프리카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건 좀 개소리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으나 (...) 아프리카는 넓고 희한한 부족은 많으니까 뭐 그렇다 치자. 하지만 약자와 아이들을 더 보호하려 한다는 건 사실이다. 타이타닉이 가라앉을 때 여자와 아이들부터 먼저 구했다. 그리고 그 전통은 그 한참 전부터 있었고, 요즘에도 계속된다. 사실 약자든 아니든 인간 목숨은 똑같이 귀하다고 할 때, 그리고 딱히 남자가 완력으로 좀 더 오래 살아남아 있을 수 있고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구해주고 난 다음에 자신도 살 수 있다 이런 거 아닌 이상, 남자들이 먼저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어렴풋이 느꼈는데 확실히 남자들은 자기 본인 이야기니 좀 더 가깝게 느꼈겠지. 왜 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여자들과 아이를 위해 먼저 희생되어야 하는가 그런. 한국의 군대 문제도 이런 정서가 얽혀있다.
이와 조금 연관 있는 내용이 남자는 직위나 능력이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말이었다.
이건 남성적인 세계관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예전에 잠깐 얘기하고 넘어갔지만) 여성적인 서사와 남성적인 서사는 구도가 다르다(내가 붙인 이름 아니니까 일반화라 욕하지 말고 넘어갑시다). 남성적인 스토리는 거의가 주인공이 여러 가지 역경과 도전을 겪으면서 좀 더 강해지고 어떤 식으로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면서 원하는 여자를 차지할 자격도 갖게 된다는 스타일이 많다. 그러므로 그런 남성식 서사를 보면 주인공은 결국 무언가를 해내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된다. 그러기 전에는 하등 취급을 받는다. 여성적 서사는 다르다. 여자는 자기 자신 그대로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난다. 로맨스 드라마를 보자. 잘나가는 남주는 별 볼 일 없는 여주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여주가 잘 나가게 돼야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다(화장이나 머리 스타일, 옷 스타일 바꾸는 정도는 있어도 '성형 후에 이뻐지고 나서, 돈 상속하고 나서야 좋아하는' 남주는 별로 없음을 상기). 그러니까 그 수많은 스토리라인에서 여자는 그냥 그대로만으로도 사랑받지만, 남자는 무언가 이루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혹은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사랑받을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게 없는, 별 볼 일 없는 보통 남자는? 주로 총 맞아 죽는 엑스트라로 나온다. 폭탄 터져 죽는 사람, 주먹다짐에서 피떡되는 사람, 그 외 하찮은 존재로 목숨을 잃는 수많은 엑스트라 중에 성별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보자. 물론 이건 여자들이 남자를 미워해서 나온 스토리 라인은 아니다. 영화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남성이 지배하는 곳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리 대단하지 않은 보통 남성이 볼 때는 아, 난 대단해지지 않는 이상 저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는구나 할 수 있겠다.
그다음 좀 짠했던 몇 개. "외롭다". "말할 사람이 없다." 이건 한국에 좀 해당이 되지 않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또 모르지. 남자들끼리 술 마시고 어울리는 일이 없진 않으나, 원래 남자들끼리 속 터놓고 서로 위로하고 그런 일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나마 그것도 대학교 시절 지나면 더 확 줄어든다. 여자들은 서로를 보고 대화하지만 남자들은 나란히 서서 다른 것을 같이 본다던데, 내 경험에도 남자들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친한 사람들과 만나서 뭔가 다른 것을 같이 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 여자들은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네트워크가 평균적으로 남자들보다 훨씬 넓다. 물론 여자라고 공짜로 그런 친구들이 생기는 건 아니다. 여자간의 관계는 상당히 미묘할 수도 있고, 친구 사귀기 절대로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만들어 놓은 정서 지원 네트워크는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신/육체 건강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다음은 "여자 주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이것 때문에라도 성추행하는 개새들을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에게 치근덕거리고 스토킹하고 폭언하고 성추행하는 남자는 소수겠지만, 이들은 아주 열일 하는 인간들이라, 엄청나게 많은 여자들이 그런 남자들을 겪는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남자들도 덩달아 피해를 입는다.
영어권에서 남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단어는 'creep'. 좋아하는 여자에게 가서 쭈뼛거리며 말을 걸었는데 'creepy' 하다며 피한다면, 개인적인 창피함은 둘째 치고, 이 여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creep이라 말할까 노이로제 걸려서 아예 여자에게 접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남자 입장에서는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정말 여자는 알 수가 없다. 왜냐면 여자들이 열광하는 로맨스의 남주들은 집착 심한 스토커, 분노 조절 장애의 성추행범이 많기 때문이다. 싫다는데 계속 들이대고, 손목 잡아끌고 가고, 강제 키스하고, 집 앞으로 불쑥 찾아간다 (한국 드라마만 그런 거 아니다. 스타워즈의 한 솔로도 봅시다). 하지만 그걸 자신이 하면 철컹철컹이다. 그래서 자조적으로 말한다. 못생기면 성추행이고 잘생기면 카리스마라고. (이에 대해서도 여자 입장에서 할 말 많은데 이번 테마에 안 맞으니까 다음 기회에). 요즘에는 직장에서의 성추행 문제도 엄청 많이 불거지다 보니까 오히려 남자들이 몸을 훨씬 더 사리기도 한다. 결국 몇 퍼센트의 남자들 때문에 나머지 남자들이 엄청나게 피해를 보는 셈이다.
세계 경제가 참 안 좋긴 안 좋구나, 혹은 남자들도 요즘에는 감수성이 많이 다르구나 느꼈던 부분은 -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을 원했으면 좋겠다라는 말. 예전에는 남자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므로 좀 약한 척 멍청한 척 해라는 조언이 버젓이 돌아다니곤 했다. 이것은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본능,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는 사냥꾼의 본능이 있다는 이론에 기반을 둔 것인데, '능력 있는 내가 이렇게 벌어와서 너를 먹여 살리고 너는 감동하고' 식의 시나리오가 힘들어져서이기도 하다. 뭐 대단한 거 보여주고 싶지만 그게 쉽진 않고, 자기가 멋있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요즘엔 그리 많지 않으니, 여자가 꼭 필요로 하는 남자가 됐으면 좋겠지만, 그게 힘든 요즘 세상에 그냥 나 자신 그대로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말. 여자들은 평균 외모라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남자들이 뭐든 해주려고 하는데 (물론 순수한 의도는 아니지만 ㅡㅡ), 남자는 뭐든지 자기가 혼자 해야 한다. 명함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직업을 가져야 하고, 여자에게 어필해야 하고, 리드해야 하고, 감동시켜야 하고, 먹여 살려야 한다고 느낀다더라. (여기 역시 여자로서 할 말 많지만 다음 글에).
마지막으로 두 개. 이것도 상당히 짠했는데 - '누가 나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이상하게 여자 후려치기 하려는 한국 남자들 빼고 -_-)여자들은 칭찬에 익숙하다. 어찌 해보려는 남자들도, 그냥 직장 동료들도, 친구들끼리도 칭찬을 많이 하는데, 보통 외모의 남자로서는 지나가는 여자에게 덕담 들을 일 없다. 이것 역시 소수의 남자들에게 질린 여자들이 자기 방어로 틈을 주지 않고 철벽을 쳐서이기도 한데, 어쨌든 그렇다. 그리고 보통 외모의 남자는 자기가 나서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 이상, 투명인간이다. 아무도 관심 안 보여준다. 그냥 지나가는 행인 153이다. 그에 비해 여자들은 - 평범한 남자가 잘 알고 있듯이 - 평범한 여자는 남자에게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그 남자는 최소한 성관계를 할 의향은 있을 것이고, (여자는 그런 관심 싫어한다는 건 차치하고) 그 여자에게 술이라도 한잔 살 것이고, 어찌 잘 해보려고 입에 발린 칭찬이라도 할 것이다. 평범한 남자에게 멀쩡한 여자가 그럴 일은 없다.
뭐 이건 내가 간단히 정리한 거고, 원 링크는 아래에.
그리고 여기는 페미니즘 관련 페이지니까 ㅡvㅡ 동네 사람들, 저 위의 저 수많은 폐해들이 페미니즘으로 극복이 됩니다. 남자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남자가 먹여 살려야 한다, 능력 없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다, 남자가 먼저 작업 걸고 리드해야 한다, 남자가 더 좋아해야 한다, 여자가 밝히면 안 된다, 여자는 쉽게 보이면 안 되니까 남자한테 너무 잘 하면 안 된다, 이런 거 다 페미니즘으로 극복 가능해요. 얼마나 좋습니까. 기승전 페미니즘.
https://www.reddit.com/r/AskReddit/comments/52vlai/serious_men_whats_something_that_would_surpr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