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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재미있는 도깨비를 보면서 불편한 이유

2016년 12월 14일

* 페이스북에서는 여성 독자분으로 제한했던 포스팅입니다.      


이거 나만 불편해 (TM)?     

  

재미있는 도깨비를 보면서 불편한 이유 - explicitly materialistic.      


도깨비 재밌다. 그렇지만 불편하다. 사실 한국 드라마 보면서 이런 불편함에는 좀 익숙해졌다 싶은데 그래도 또 새삼스럽게 불편하다.      

16세의 남학생이 학교 남자 선생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자. 이 남자아이는 그때의 충격 때문에 성인이 되서도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하다. 이때 이 남학생보고 "끼 있는 애가 선생님을 유혹했겠지", "옷 입고 다니는 게 날라리 양아치같이 좀 당할 거 같더라", "요즘 애들 무서워서 돈 밝히면서 먼저 덤빈다"라고 할 미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16세의 여고생이 학교 남자 선생님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우는 가해자도 여자가 먼저 작업을 걸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원래 좀 헤픈 여자였다는 주위의 증언도 쉽게 들린다. 왜냐.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로맨스는 아주 자주 보이기 때문이고, 여자가 돈이나 관심을 위해 남자를 유혹한다는 식의 설정은 (여성이 쓴, 여성을 위한 로맨스에서도) 계속 재생산된다.      


설정이야 어쨌든, 30대 중반의 공유는 고등학생인 여자 주인공에게 이끌린다. 여자 주인공은 대놓고 남주의 재력을 논하며 "아저씨가 이렇게 부자면 나 아저씨랑 결혼할게요"라고 덤빈다. 그렇게 여고생은 30대 남자라도 돈이 있으면 유혹할 수 있는 상대가 된다. 여자가 싫다면 이건 그저 남자가 여고생이 원하는 만큼 돈이 많지 않아서이다. 사실 이걸 이 드라마에서만 욕하기엔 좀 그런 것이, 한국의 드라마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내놓고 속물적'이다. Explicitly materialistic. 그리고 아주 내놓고 돈을 밝히는 태도를 '솔직함'으로 포장한다. "하기 싫어요" "삼십만 원..." "저 시간 많아요" 이런 식의 대화로 곧잘 표현되는데, 이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게 진짜 한국에서 자연스러운지 아닌지는 난 안 살아봐서 모르겠다만, 그게 일상적이라면 최소한 나에게는 아주 이상하게 느껴진다. "너 요즘에 바쁜가 봐? 연락이 별로 없네?" "전화 한 번에 천 원씩 줘." "응 만 원 입금할게 내일부터 전화 하루에 한 번씩 해줘" "알았어 친구야." 이런 대화를 진정으로 주고받는 친구 사이의 대화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 해야 하나.      


재벌가의 대화가 특히 그런데, 내가 이 정도 부자이므로 너와 어울릴 급이 아니란 말이 아주아주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거 아주 정말 심각하게 이상하다. 이게 사실이라 해도 내놓고 말할 사람 정말 별로 없다. 다들 매일 화장실에서 대소변 해결하겠지만 그걸 시도 때도 없이 자세히 중계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물론 돈 많은 사람이 없는 사람과 매일 룰루랄라 어울리진 않겠지만, 그걸 그런 식으로 경박하게 표현하는 걸 나는 그냥 드라마 속에서 하는 극적인 과장이라 생각했다가 정유라 이야기를 듣고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돈도 실력이라니.      


남자들에게 대상화하지 말라고, 여혐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이 여성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 때 사회에서 어떻게 소비되는가에도 신경을 써야 하나 싶다. 도깨비 재밌다. 공유 잘 생겼다. 키 크고 멋있고 좋다. 그렇지만 그런 그를 꼭 고등학생에게 돈으로 어필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가. 김고은이 연기하는 지은탁은, 꼭 돈에 비굴해야 하고 30대 남자를 아저씨라고 부르면서도 이런 집을 가진 사람이면 나 애 낳고 여기서 살겠다는 말을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해야 하나. 이런 세팅에서 김고은이 공유에게 매달린다면, 남자들이 이걸 보고 "아 내가 돈도 있고 잘생겼으면 여고생도 꼬실 수 있겠구나" 한다면 과연 변태라고 욕할 수 있을까. 물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넉넉한 사람 만나서 도움받는 것이야 흔한 로망이지만, 왜 드라마에서 도움 받는 이는 여자고, 도움 주는 사람은 돈 많은 남자인가. 한국 사회가 너무 빡세고 여자로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보니까 여자 힘으로 성공한다는 아무래도 공감을 얻기가 힘들어서 그럴까?      




라고 하면 도깨비를 비난하며 쯧쯧 할 거 같지만 실제 저는 무척 너무나도 베리마치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냥 즐겁기만 하면 좋겠지만 찜찜한 구석이 많은데도 속없이 좋다고 보고 (...솔직히는 몇 번이나 돌려도 보고;; 쿨럭;;) 그러는 제가 싫습니다 ㅠ.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여주, 잘나가는 남주가 늘 구하러 와주고 그런 세팅이 머리로는 싫은데 가슴은 공유야 사랑해 이러고 있으니.      


여성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너무 예민하게 보고 있나요 (TM)?     

 

(....밀린 글 많다고 했잖아요 ;ㅁ; 그런데 이런 글은 남자분들에게도 오픈해놓으면 '역시 한국 여자들 어쩌고 드라마 어쩌고' 할 것 같아서 제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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