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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그들이 사는 모습 - 아프리카 흑인 여성들에 대하여

2016년 12월 14일

제가 남아공 얘기할 때, 좀 왜곡된 면이 있습니다. 남아공 인종차별로 유명한 거 아시죠. 인종을 갈라서 철저히 갈라놓은 시스템이 아파르트헤이트인데요, 여기 관련해서 정말 황당하고도 재밌고도 비극적인 스토리가 많은데 그중 몇 개라면.     


거주 지역 교육 결혼 모두가 인종에 엮여 있다 보니까 어떤 인종으로 구분되는가가 엄청나게 중요했습니다. 그냥 딱 봐서 흑인, 백인, 이런 케이스 말고 17세기 네덜란드 이주민과 현지 흑인 여성 간에 생겨난 후로 그들만의 부족을 이룬 칼라드들이 특히 그랬어요. 흑인 대신 칼라드로 분류되면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피부가 밝아서 칼라드 대신 백인으로 구분돼도 그랬고요. 그래서 나온 게 "연필 테스트"입니다. 머리카락에 연필을 넣고 폴짝폴짝 뛰어서 안 떨어지면 흑인. 떨어지면 칼라드/백인.     


이런 곳에 살려니까 저 같은 어중간한 케이스가 문제가 됩니다. 공기관 서류에는 보통 인종 표시하는 부분이 있는데 - 백인, 칼라드, 흑인, 인도인이 보통이었어요. 나는 뭔가요 ;ㅁ;     


19세기 말에 금광 다이아몬드 광산이 엄청 유명세를 타면서 광부들을 세계 여러 군데에서 수입했는데요, 그때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 꽤 많이 이주해왔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칼라드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인가 일본과 통상 조약을 맺으려니 '너네는 우리보다 못한 인종'...은 좀 아닌 거 같아서 'honorary white'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명예 백인"입니다. 네, 진짜 이 단어를 썼습니다 냐하하. 대만 사람들도 어설프게 백인 취급 받았다고 해요.     

그런데 저는 한국 사람인데 저는 뭔가요. 중국 사람은 칼라드. 일본은 명예 백인. 되게 어정쩡하죠? 그런데 사실 아시아계가 진짜 별로 없어서 저는 좀 아웃오브안중 취급받았습니다만, 그래도 흑인들 그룹에 끼진 않았습니다.     


남아공의 비극은 빈부차였습니다. 백인 지역은 캐나다 느낌 났다고 하네요. 가치관도 대강 영어권 가치관과 비슷했어요. (그래서 미국/호주/캐나다/영국의 문화차이를 잘 못 느꼈고, 이민도 아주 쉬웠습니다). 동성애도 뭐 대강 미국처럼 진보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종교적 보수는 부정하고, 여권 이야기도 대강 영국/미국/호주 등과 비슷했어요.     


그렇다면 흑인 여성은?     

(눈물 좀 닦고)     

특히 남아공의 흑인 여성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파르트헤이트를 떼고 말하기가 힘듭니다만, 우선 그 전으로 돌아가 보죠. 케냐/탄자니아 쪽의 부족들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오고, 지금의 짐바브웨를 지나 남아공까지 내려왔습니다(그래서 반투족의 부족어가 스와힐리와 비슷하다고 하네요). 전쟁이 잦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남아공의 흑인 문화에서 남자는 용감하고 힘이 드는 일, 그러니까 사자 때려잡고 전쟁 나가서 싸우는 일을 하고... 여자는 다른 일을 다 합니다. 소 키우고, 밭 갈고, 애 보고, 밥해 먹이고, 뭐 그 외 하여튼 싹 다 합니다. 안 그래도 그런 문화에서 아파르트헤이트로 거주 지역을 확 갈라놓으니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요 - 광산 쪽에 흑인 남자 노동력이 집약되었고, 이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서 남자들만 모인 기숙사에서 아주 낮은 월급으로 일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기 힘들겠죠? 여기에 살 수 있는 여자도 별로 없다 보니까 극소수의 성노동자가 흑인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그래서 성병이 창궐했습니다. 이 남자들은 일 년에 몇 번씩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부인에게 성병을 옮겼습니다 (...). 혹은, 백인 지역에서 메이드로 일하면 저녁에는 백인 지역에서 흑인으로 혼자 다닐 수가 없어서, 웬만한 집에는 흑인 메이드가 살 수 있는 숙소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족과 같이 살 그런 분위기는 아니죠. 그러므로 상당히 흔한 셋업이, 아빠는 광산에 가서 일하고, 엄마는 백인 지역에서 메이드로 일하고, 아이들은 할머니가 봐주고, 엄마 아빠가 (주로 엄마가 -_-) 조금씩 보내는 돈으로 온 가족이 먹고살았습니다.     


이러면 여자들이 정말 불쌍한 것 같습니다만, 이런 환경일수록 여성의 재산 취급, 여혐은 낭낭합니다. 여성 인구 자체 내에서도 그렇습니다. 영국에 오기 전에 보고 참 인상 남았던 KFC 광고가 이렇습니다. 중년의 여인이 화려한 집에 친구 몇 명과 쑥덕거리며 들어섭니다. "와 아들 돈 잘 버네?" "며느리가 우리 아들 엄청 고생시켜! 돈은 지가 다 쓴다고!" 그런데 며느리가 환한 웃음으로 이들을 맞으며 KFC 치킨을 내옵니다. 그러니까 이제 시어머니 그룹에서 칭찬이 넘쳐납니다. "아유 며느리 참하네!" "돈 아낄 줄 알아!" ;;;; 어디서 많이 본 관경이죠? 이걸 보고 알았습니다. 여성의 착취가 있는 곳은 인종 언어문화를 초월하고 여자끼리의 여혐도 비슷하구나.   


또 비슷한 부분은 lobola 입니다. 예전에 로볼라는 딸을 이렇게 예쁘게 키워주셨으니 감사한다는 의미로 소를 한 마리 장인에게 사드린다 뭐 그런 컨셉이었다고 합니다만, 나중에는 '여자를 살 수 있는 대가'로도 받아들여지죠. 이러면 여자들이 발끈할 만도 한데, 여혐에 쩔은 사회에서는 오히려 이게 자존심 싸움이 됩니다. 내 남친은 소 두 마리를 샀다! 없는 살림이지만 날 너무 사랑해서. 오 그래? 난 소 다섯 마리. 누구네는 소 열 마리 받았대. 누구네는 그냥 콩 몇 자루로 퉁치려고 했대. 걔가 워낙 안 이쁘잖아. 야 누구는 뭐 안 줘도 되니까 제발 데려가만 달라더라. 노처녀잖아!! -->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죠. 여자가 재산 취급 당하는 곳이 다 비슷합니다.     


학부 때인가 UNDP의 농업 지원 사업 실패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공기처럼 산재한 여혐을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농부들을 지원하려고 돈과 자원을 들여 투자했는데 이들은 '아프리카의 흑인 남성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혹은 돈을 벌려고 농업에 종사한다'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이들의 타깃 마켓은 사실 여성이었습니다.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에서 여성이 70%의 농산물을 생산한다고 하네요. 보통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한 농업이고 상업적으로 팔려는 농장은 아닙니다만, 남자들을 불러서 교육시키고 도울 게 아니라, 시골 지역에서 자기 가족 먹여 살리느라 농사짓는 여자들을 타깃으로 했어야 됐습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여권이 한국보다 낫다'라고 하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남아공의 흑인 빈곤층 여성들 여권은 ... 이건 뭐 그냥 뭐라 말할 수가 없고요, 남아공의 보통 화이트칼라 노동환경이라 하면 영어권의 평균에 비교할 만합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듯하여 더했습니다.     


(근데 와 이건 밀린 글도 아닌데 또 올렸어요 저 미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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