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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6. 2018

소송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 욕은 해야겠다

2016년 12월 31일

내가 진짜 나중에 소송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 욕은 해야겠다.    

 

물론 우리 집 둘째 얘기다.     


얘, 지금 40 개월도 넘었는데 아직 기저귀를 못 뗐다. 아니, 안 떼고 있다. 아주 반항하고 있다. 말 역시 안 한다. 못 하는 거 아니다. 글도 읽는다. 지가 급하면. 그런데 안 한다. 그나마 36개월 전까지는 분노 조절을 제대로 못 해서 맨날 사람 패고 다니더니 요즘에는 그나마 조금 개과천선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과 물건 던지기로 대신한다. 자해공갈도 좀 줄었다. 대신 폭력 애교는 늘었다. 지가 아쉬울 때 - 그러니까 배고프거나, 기저귀 갈아야 하거나 등등 -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머리 박치기를 하면서 다리를 끌어안는다. 고양이 마냥 기어 올라와서 노트북 키보드에 엉덩이 대고 문댄다. 그나마 싸대기 날리기는 덜 하고 뭐 하라고 시키면 웅앙웅앙 뿌아뿌아하면서 뭐 집어던지기는 아직 잘 한다.     


이런 성질 드러운 둘째를 이번 휴가 기간 동안 기저귀 훈련은 좀 시키자 싶어서 모든 카펫을 다 들어내고 못 들어내는 곳에는 방수 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변기에 앉혔다. 절대 쉬 안한다. 포기하고 일어서면 곧바로 보라는 듯이 바지에 쉬한다.     


어제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고 저녁 여섯시 반에 변기에 앉혔다. 보통 그 시간이면 응가 한다. 그런데 버티더라. 네 시간을 버텼다. 나와 남편이 교대해가며 대치했다. 독한 애기 같으니라고. 결국 우리가 이기긴 했으나 오늘은 버티면서 여기저기 지 마음대로 쉬하고 바지 다섯 개를 내리 버렸다. 결국 우리가 항복하고 다시 기저귀. 큰애는 삼 일 만에 간단하게 끝난 걸 얘는... 하아.    

 

아까 말했지만 아직 언어 대신 폭력으로 주로 소통하나 가끔가다가 아무도 안 듣는다 싶으면 말할 때 있다. 예를 들어 자라고 눕히고 문 닫으니까 들리는 표효 "HOW DARE YOU!!! (니가 어찌 감히!!)" 큰애는 겁이 많아서인지 눈치가 빨라서인지 욕 한 번 안하고 컸는데, 어제 네 시간 대치 이후로 겨우 응가하고 풀려난 둘째. 기차 트랙 만든 거 때려 부수면서 "F*CK!! F*CK!!". 제일 웃긴 건, 걔가 뭐 잘못할 때마다 나랑 남편이 "Say sorry" 시키는데 못 알아듣는 척 귀 후비대다가, 나중에 혼자 구석에서 인형 둘 세워놓고 곰돌이 인형한테 "Say sorry!! Say sorry!!" 이러고 있다. 아직 나랑 남편 앞에서는 한 번도 그 말 안 했다.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네 돌에도 바다에 못 들어가고 하얗게 질려서 '물이 너무 많으니 엄마 아빠 들어가지 마!!' 하던 큰애. 어린이 침대 난간을 절대로 못 넘어갔던 큰애. 하지 말라고 하면 곧바로 찔끔하고, 애교 많고, 소심하고, 부모 관심 원하고, 매운 거 못 먹고, 딴 애 절대 때릴 일 없는 얌전하고 착하고 책 잘 읽고 축구 싫어하고 핑크색 좋아하고 얼음공주 엘사 좋아하는 큰애.     


돌 때부터 이미 지 침대를 공수부대원처럼 탈출하고, 뭐든지 기어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너 죽고 나 죽고의 폭력성 끝내주고, 혼자서 무척이나 잘 놀고, 부모를 집사 취급하고, 뭐라 하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틈새라면 좋아하고, 기차를 좋아하고, 딴 애들이랑 늘 싸움 나(..기보다는 지가 패고 ㅜㅜ), 안 착하고, 안 얌전하고, 뒤끝 쩔고, 윽박지르기 용 외에는 인형놀이 안 좋아하는 둘째.   

  

물론 큰애는 아들이고 둘째는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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