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31일
The Power of Habit에 나오는 글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땅에 쓰러져 있는 동안 "흑인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라"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시작한 게 아닙니다. 이 운동의 촉발제로 잘 알려져 있는 로사 팍스 여사도 그 날 "내가 아주 각오하고 개겨서 이 사회를 뒤집어보리라"하고 다짐해서 싸움을 붙은 게 아니었습니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처벌을 받은 흑인이 로사 팍스가 처음이 아니었고 그 해만도 몇 명 있었습니다. 흑인 자리 백인 자리 나눠져 있고, 그 자리 양보해야 하는 거, 치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목숨 걸고 싸울 거리도 아니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광장에 나가서 "이딴 악습 폐지합시다!!" 백날 외쳐봐야 별 소용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전에 체포된 사람들은 시작하지 못한 사회 운동이 로사 팍스로 인해 시작됐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여성혐오를 밀어낼 수 있을까요.
The Power of Habit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사 팍스가 그 전에 체포당했던 이들과 달랐던 점은 weak ties라고 합니다. 지역 사회에서 아주 활발했던 그녀라서 지인의 지인 등으로 이어진 사람이 많았던 거죠. 권력 있는 절친들이 아주 많아서 영향력이 있었다가 아닙니다. 사람은 어느 사회에든 속해있기 마련이고, 그 사회의 눈치를 봅니다. 친한 친구의 잔소리, 가족의 충고를 들을 수 있겠으나 제일 강력한 힘은 '주변의 압력'입니다. 이 압력은 그리 세지 않아도 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자선 활동에 참가율을 높이는 것은 친한 친구가 가는 것보다는 지인의 지인 정도, 약한 관계가 있는 집단의 분위기 조성이 제일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여러 명이 자선 활동 참가에 대해서 웅성웅성 말을 나누다가 "아 너 그 때 관심 있었다고 했지? 우리 담주 수요일에 출발한다. 일곱 시까지 나와 있어"라고 말 하는데 거절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로사 팍스는 교회에서 아주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체포되자 그녀의 어머니는 놀라서 여기저기 도움의 전화를 돌렸고, 그 중 한 명은 몽고메리 미국 흑인 지위 향상 협회 (NAACP)의 전 협회장 E.D. Nixon의 부인이었습니다. 부인에게서 이 소식을 들은 전 협회장은 곧바로 도와주기로 하고 Clifford Durr라는 백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로사 팍스와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나 드레스 수선을 곧잘 하던 로사 팍스가 그의 딸 세 명의 드레스를 수선을 했었습니다. 마침 차별 정책 철폐를 위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던 Nixon과 Durr는 로사 팍스에게 자신들이 팍스를 법정에서 대표해도 되는지는 물었습니다. 로사 팍스의 남편은 일이 커질까 무서워 이를 반대했으나 로사 팍스는 건너건너라도 아는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아서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날 밤, 로사 팍스와 여러 단체에 같이 속해 있으며 영향력 있는 학교 교사 모임의 수장이었던 Jo Ann Robinson도 이 소식을 듣고 모든 멤버들에게 로사 팍스의 체포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 교사들의 학생들도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날 자정, 로빈슨은 임시 미팅을 열어 팍스의 법정 출두일 월요일까지 버스 보이콧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전단지를 제작했습니다. 24시간 이내에 이 전단지는 몽고메리 곳곳에 뿌려졌습니다.
로사 팍스가 보석으로 풀려난 날, 닉슨은 덱스터 애비뉴의 침례교회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킹 목사의 지지와 보이콧 미팅에 쓸 장소로 그의 교회를 원한다는 부탁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있었던 킹 목사는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닉슨은 킹 목사의 절친인 Abernathy에게 킹 목사를 설득시켜 달라 부탁했습니다. 생각해 보겠다던 킹 목사는 절친의 부탁을 듣고 수락을 했습니다. 닉슨은 "다행이다 벌써 스무 명 거기로 가라고 했거든"이라 했답니다.
이 모임 역시 화르륵 했다 꺼지는 수많은 사회운동 중 하나가 될 수 있었겠지만, 이것을 살린 것은 그 약한 커넥션들로 인하여 생겨난 잔잔한 압력이었습니다. 불편하지만 다른 출퇴근 방법을 모색하다가 흑인 택시 기사들이 출퇴근을 도와주기로 결정되고, 매주 모이고, 농성하고, 킹 목사가 테러를 당하고, 그래도 평화적으로 싸우자 다짐하고, 힘들어지면 지지해주고, 그러면서 참여가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로사 팍스가 독해서 된 일이 아닙니다. 킹 목사의 카리스마 하나로는 불가능했습니다. 아주 작게라도 연결된 여러 명이 조금씩 참가하고, 그러면서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의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다들 참가할 수밖에 없게 되어서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약하게라도 한 마디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그 말은 여혐인 것 같은데요 라고 한마디 했을 때, 그 말을 듣는 다른 여성들, 비슷한 말을 하고 싶었던 다른 여성들과 약하게나마 네트워크가 생성됩니다. 페이스북에서 글 하나 공유하면서 당신의 동창들 내에, 동료들 네트워크 내에 아주 작은 반 여혐정서의 씨줄이 하나 생깁니다.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이 한마디를 더 하면서 날줄이 생깁니다. 그리고 다음에 여혐이슈가 뜨면 당신과 당신 네트워크는 조금이라도 연결되어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게 아니다 싶은 사람들은 당신에게 쉽게 응원을 보낼 수 있고, 여혐 발언을 막 하던 이는 주변의 압력을 미미하게라도 느끼며 자신을 한 번 더 검열하게 됩니다.
당신이 여혐으로 지적한 상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상대 말고 다른 이들도 당신의 이의제기를 들었고 봤습니다. 그 한 마디로 당신은 수십 개의 네트워크 베이스를 깔았습니다. 공유 한 번으로 분위기를 조금 더 바꿨습니다. 지금은 연약한 거미줄처럼 그냥 홱 쳐내면 없어질 것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당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같이 실을 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극악 여혐러도 의외로 (남자들만 아니라) 여자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여자들이 어떤 글을 공유하는지, 어떤 말에 화를 내는지, 당신 앞에서는 꼴펨들이 어쩌고 큰소리칠지도 몰라도 자기가 관심 있는 여자 앞, 여자 선배, 상사 앞에서는 한 마디라도 더 조심할 겁니다.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1년이 넘게 승차 거부를 하면서 흑인 승객이 70%를 차지했던 버스 회사들에게 엄청난 금전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1956년 12월 연방 대법원이 몽고메리시 정부에 버스 인종 차별 대우를 철폐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판결의 연쇄 작용으로 미국 전역에서 여러 가지 인종 차별 제도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964년, 미국 의회는 인종과 종교 차별 금지를 골자로 하는 민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바꿀 수 있습니다. (저 포함해서) 조금만 더 용기를 내고 갑시다. 확 열 오르게 하는 댓글, 쓸데없어 보이는 키배, 내가 왜 싸워야 하나 생각 들 때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 망댓글 쓴 사람을 설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내 댓글을 보는 내 친구와 그들의 지인을 위해서이고, 싸우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우리 멘탈을 위해서입니다. 부딪히고 싸우는 거 싫으시죠. 저도 싫어요. 그렇지만 우리 내일부터 더욱 힘내서 홧팅.
이상 양파의 2017 신년사였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