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8일
큰 외삼촌네 셋째 아들이 나보다 생일이 6일 느리다.
나는 첫 딸이었고 그 집에는 셋째 아들이니 바꾸는 건 어떻겠냐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딸이니까 좀 실망일 테니 아들이 더 낫지 않을까, 마침 삼촌네는 아들이 이미 둘 있으니 셋째는 딸도 괜찮겠다 해서 한 말씀이란다. 어쨌든 무척 다행히 난 바꿔지지 않았다 (...)
난 여동생이 있다. 남자인 줄 알고 남자 이름까지 다 지어놨는데 여자애가 나와서 다들 당황했다고. 갓 태어났을 때 무척이나 아빠를 닮았는데 고추만 안 닮았다며 할머니는 통곡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애는 둘이면 됐다고 그만 낳는다고 하니 친할머니가 무척 섭섭해 하시며 또 우셨다고 한다. 하나만 더 낳아보자고, 둘째딸은 애 없는 형제 집에 주고 또 낳아보라고 하셨다고 (...)
뭐 그냥 그렇게 두 자매로만 컸는데 아들 없어서 어떡하냐, 늦둥이라도 도전해보라는 말 24664356635789번 들으셨다. 아들이 있어야 듬직하다는 말, 딸만 있어서 노후는 어쩌냐는 말, 뭐 많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엄마도 그러더라. 사실 양파 너도 오빠가 있었다면 널 좀 다르게 키우지 않았을까.
아빠는 7남매의 여섯째셨다. 하지만 장남의 장손이었다면, 큰딸을 외가에 보내진 않더라도(살림 밑천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나 같은 딸이 나와서 좀 망했다) 둘째는 정말 아이 없는 형제에게 주던가, 아님 또 아들 낳으려 노력하셨겠지. 선별 낙태가 가능했다면 딸아이를 지우고 아들을 기다리셨을 수도 있다.
주위에서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수없이 듣는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집은 여아를 낙태했고, 실제로 많은 집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노력했다. 아들을 낳은 집은 든든해 했고 딸을 낳은 집은 든든한 아들이 없으니 어쩌냐는 걱정을 들었다. 딸보다 든든한 아들을 더 편애한 집, 든든한 아들에게 좀 더 지원을 쏟은 집이 절대적으로 다수였고, 딸은 시집만 잘 가면 되지만 아들은 집안의 기둥이라는 핑계로 아빠 다음으로 권위를 휘두른 집도 많았다.
나의 이야기 하나는 그냥 작은 에피소드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 있던 사상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그런 모자이크 조각들이 수천만 개가 있다. 낙태될 가능성이 높았고, 태어났지만 그리 환영받지는 못했고, 남자 형제와 아버지의 밥을 더 챙겼고, 친척에게 성추행/강간을 당해도 한마디 말 못했고, 집안의 기둥인 아들보다 지원 덜 받고, 그렇지만 간병이나 감정노동은 더 강요당하며 살아온 수많은 여자들. 그런데 그렇게 성별 하나로 생사가 갈리는 게 흔하던 나라에서 같이 자랐으면서 우리나라에 남녀차별이 어딨어요 하는 눈먼 이들. 여자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여자라는 이유로 꼬꼬마 시절부터 식구들 밥 챙기고 병간호하는 게 무지 당연했던 나라에서 퍽이나 여자라고 대접해줬겠다. 진짜 정말 남녀 차별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쯤이면 호러영화.
여자들이 받는 대접의 좋은 예로 최근의 행자부가 있다. "근데 여자들 니네 왜 애 많이 안 낳아?? 1인당 출산율 오르긴 올랐는데 왜 총 출생수가 모자라지? 아 맞다 우리 그때 여아 대대적으로 낙태하고 머릿수가 확 줄었구나. 출생율 높이려면 니네 좀 더 노력해야겠다?"
아, 로타의 사진도 있군. 성인이 됐냐? 안타깝지만 괜찮아. 내가 십 대 초중반 애기로 만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으로 늘어지고, 시키면 다 할 순하고 맹한 표정으로 섹시한 사진 찍어줄게. 섹시한 게 권력이야. 사람들이 다 너보고 예쁘다고 할 걸. 예쁜 미성년자 너를 어찌 해보는 상상을 할 걸. 이런 게 예술이야.
대접? 퍽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