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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8. 2018

제가 참 좋아하는 공대 남자들

2017년 1월 15일

https://www.facebook.com/seattleyangpa/posts/1740015712950575    

좀 가볍고 뜬금없게 연애 얘기로. 제 주위 남자들 얘기입니다. 제가 공대 남자들 참 좋아합니다. 이거슨 본격 연애 장려 글입니다.     


지금이야 거의 다 장가가고 했지만 개발일이 너드들의 천형 취급 받던 십 년 전만 해도 연애 상담 꽤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 소개팅은 공돌공돌한 남자에게 무지막지 불리합니다. 모르는 여자와 1:1로 앉아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울 수 있는데, 그 여자가 무려 예쁜 여자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말 한마디 한마디로 날 판단할 것이 확실한데 그걸 자신이 주도해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엄청난 공포일 수 있어요. 이박삼일로 코딩할래 이쁜 여자한테 작업 걸어볼래 하면 잠자코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을 남자도 많았죠. 그리고 예쁜 여자라고 하면 좀 오해가 생기는데, "예쁜 건지, 그냥 여자라서 예뻐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애들도 많았어요. 성비가 몇십대 일이니까 웬만한 젊은 여자는 다 예뻐 보일 수 있다는. (노파심에 더하지만 공대 남자들이 다 이렇진 않습니다. 이런 특성의 남자들이 이공계에서 자주 보이고, 그러니까 연애상담도 하고 그렇겠죠. 연애 잘하는 애들은 상담 할일 없음).     


개발자 남자들이랑 20년 가까이 지내면서 확실히 각인된 버릇은, 언어 능력으로 사람 판단 안 하는 겁니다. 센스 없는 것은 인성이나 일 능력이랑 큰 상관없더라고요. 글 못쓰고 스펠링 다 틀리지만 고액 연봉 받으면서 일 잘만 하는 사람들 많아요. 물론 관리직 남자들은 언어 능력이 더 나은 경우 많은데, 바로 그러니까 관리직입니다. 아닌 이들은 그냥 기술직으로 해피해피하게 남아요. 

잘 아는 주위 사람들한테도 언어 능력 떨어지고 센스 없을 수 있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 그것도 여자, 그것도 잘 보여야 하는 소개팅이면 아무말 대잔치 하다가 폭망하고 침울해져 혼자 터덜터덜 돌아올 가능성 높았습니다. 여러 가지 타입이 있는데 공대 알파남은 자신감 있어 보이려고 맨스플레인 해대기, 여자가 하는 말을 '아 그거 아닌데 진짜 모르시네!' 하면서 막기, 자기 자랑하기 등등으로 나가다가 유리 멘탈 박살 날 수 있었고, 공대 자학남은 '어차피 나 안 좋아할 건데 노력해도 소용없어'라고 음울한 기운 내뱉으며 별말 안 하고 얼굴만 쳐다보다가 귀가처리. 공대 무눈치남은 긴장한 상태에서 무조건 좋은 말만 하려고 타이밍 안 맞는 찬사와 고개 끄덕이기, 오글거리는 칭찬과 핀트 엇나간 리액션 등으로 염세주의자가 되어 돌아오는 거 봤고요.     


하지만 똑같은 남자들이 좀 더 자연스러운 세팅에서 만나고 같이 지내면 성공 확률이 훨 높아졌습니다(괜찮은 남자들 많아요, 진짜에요 ㅠ.ㅠ).  그래서 저는 (옛날 얘기지만) 1:1 소개팅 셋업하기보다는 '우리 집에서 바베큐!' 라는 식으로 남녀 열 명 남짓 초대하는 방식을 택하곤 했습니다. 아무런 기대도 없고, 너 누구랑 잘 어울리겠다 그런 거 없고, 오는 사람 기본 정보만 대강 흘려주고 조금 관심 있어 보인다 하면 이 사람은 이런 것에 관심 있다 팁 줍니다. 

그렇게 좀 감이 오는 커플이 보이면 2~3주 후에 다른 이벤트를 합니다. 실내 암벽등반, 집에서 영화 상영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화 가능하면서 너무 뻣뻣하지 않은 그런 거요. 좌석이 정해져 있는 식당 이런 건 별로였어요(이건 남아공 시절이라서 그렇습니다. 한국하고 노는 방식도 좀 많이 달랐죠.). 그렇게 두 달 내에 한 세 번 정도 만나게 되면 보통 서로 호감 있는 커플 하나 생기고, 남자도 좀 덜 겁나고, 그때 같이 모였던 그룹 초대하는 척하면서 맘에 드는 아가씨도 초대합니다. 여자에게 단독으로 데이트 신청한 건 아니니까 거절당해도 덜 뻘쭘하고, 여자도 거절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죠. 그날 바빠서 못가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잘 놀아 하면 되니까요. 한때는 뚜쟁이가 장래 희망이었던 양파. 

그렇게 맺어진 커플 몇 있는데 남자는 다 공대남이었고, 아직까지 다 잘 삽니다. 저는 공대남을 좀 편애하지만 안 맞는 분들도 많은 거 알아요. 그러나!! 공대의 이런 스타일 남자 좋아하신다면!! 1:1 소개팅으로 만나고 바로 포기하지 마세요 ㅜㅜ 긴장해서 하는 아무말 헛소리, 나이가 어릴수록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한 걸 수 있거든요 (나이 꽤 들어서도 그렇다면 재고를). 

그리고 데리고 살다 보면 귀여워요. 저는 저에게 카메라 렌즈 종류가 어쩌고 TCP 스택이 어쩌고 저한테 조근조근 설명하는 남편 보면서 응응 고개 끄덕이는 거 잘 합니다. 관심은 1도 없으나 귀엽잖아요. 


아, 그리고 소심한 공대남에게 작업 거는 좋은 방법은 다섯 글자 문자를 보내는 겁니다. '나랑 사귀자'. 좀 더 길게는 '사귀자고 말하면 동의해 줄 테다.' 밀당 잘 못 할 가능성 높거든요.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은 과자 구워 주는 것도 아니고 선물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당신 좋아요" 하시는 겁니다. 여자의 작은 호의에 "나 좋아하나??" 생각했다가 호되게 실망한 남자들 많아서 엔간히 눈치를 줘도 주저할 수 있거든요. 진정 이 스타일이라면 그런 걸로 여자 쉽게 안 봅니다. 감사해 합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확실하게 말해주고 개선방법까지 말해주면 더욱더 좋습니다. 일단 납득하면 그대로 쭉 갑니다.   

  

오랜만에 연애 얘기 쓴 김에 아주 예전 십 년 전 첫 히트글 '공대 애인 관리 매뉴얼' 올립니다. 반복하지만 제 주위 남자들 기반이라 한국에는 안 맞을지도. 


그리고 공대 성향임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 '관리 매뉴얼' 이런 단어 보고도 발칵 안 함;; '뭐? 감히 나를 관리 한다고?? 나를 xx타입으로 분류해??' --> 이런 사람에게는 당연 안 통합니다.


 https://www.facebook.com/seattleyangpa/posts/1740015712950575


https://brunch.co.kr/@yangpayangpa/66

덧: 

제가 아는 공대생들은 거의 다 어렸을 때부터 그쪽 공부하고 싶었던 친구들이고, 10년도 더 전이니까 취업이나 쿨하다는 등의 이유로 온 친구들이 아니라서 훨씬 더 비슷한 성격들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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