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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9. 2018

인스턴트 인생

2017년 1월 23일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시대다. 몇백 년간 진화해온 인간의 내부 시스템을 분석하여서, 우리가 원하는 어떤 욕구도 인스턴트로 충족이 가능하다.

     

먹는 것? 당분, 지방, 단백질을 어떻게 섞으면 맛있게 느끼는지 식제품 제조사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우리는 섬유질 없이 과일 주스를 마시고 노동 없이 고칼로리 음식을 쉽게 섭취한다.     


성욕? 수천, 수만 명의 다른 이성의 나체와 성관계를 볼 수 있는 포르노가 있다. 현실이야 어쨌든 스크린 상에서의 아름다운 이들은 당신을 원한다고 말한다. 사랑 이야기를 원한다면 드라마, 영화, 소설의 로맨스가 있다. 취향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판타지를 찾을 수 있다.     


성취감? 어떻게 성취감을 느끼는지, 어떻게 더 투자하여 더 노력해야 하는지, 게임 회사들은 당신을 빠삭하게 알고 있다. 실생활에서는 절대로 느끼지 못할 성취감을 게임에서는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인간 내부 시스템 분석에 따른 인스턴트는 우리가 진화해온 환경의 몇백 배로 강력하다. 극소수의 부자들만 맛볼 수 있었던 종류의 음식을 우린 아주 쉽게 매일매일 먹을 수 있다. 실생활에서 연애하려면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시간의 흐름을 기다리는 것도 지겹다. 포르노는 쉽고 간단하다. 드라마로 훨씬 더 짜릿한 자극을 얻을 수 있다. 성취감은 그야말로 게임과 게임이 안 된다. 몇 년을 투자해서 노력해봐야 될 지 안 될지도 확실하지 않은 인생에 비해 게임은 몇 시간, 며칠, 몇 달간의 노력으로 엄청난 발전과 성과를 누릴 수 있다.     


자연적이나 비효율적이었던 과거로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가끔 우리는 뇌에 꽂힌 전극에 자극을 받아 부르르 떨면서 행복해하는 연구실 쥐가 되어 가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 몇 년 전에 썼던 글인데 최근에 더한 생각. 젊었을 때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만 그게 녹록지 않음을 깨달으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함을 알게 된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나 자신을 바꿀 필요 없이, 나에게 최적화된 세상으로 간단하게 로긴 할 수 있다면? 매트릭스는 우리를 지배하고 싶어 하는 기계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쉽게 바꿀 수 있는 가상 세계를 꿈꾸는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들어가 만든 집단 호텔이라면? 기본 소득이 보장되어 작은 캡슐에 24/7 생명 연장되는 장치 월세 낼 수 있고, 그걸로 가상세계에서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정말 저 위에서처럼, 뇌에 전극을 꽂고 내 마음대로 세상 살 수 있다면, 우린 과연 무엇을 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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