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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9. 2018

남자에 대한, 개발자에 대한 편견, 그리고 남성성이란?

2017년 3월 10일

난 남자에 대해 편견이 엄청나게 많다. 맨날 접하는 사람의 95% 이상이 남자다 보니 그렇기도 한데, 내가 부딪히는 남자들이 좀 공통점이 많아서도 그렇다. 이게 사실은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이공계 개발 남자들이라 그렇지만, 그래도 편견은 점점 더 공고해진다.     


예를 들어 - 난 남자가 글을 잘 쓰고 철자 안 틀리면 좀 놀란다. 헉? 여성적인 면이 있네?? 그리고 동시에 기술력은 좀 떨어질 거라 넘겨짚는다. 남자가 옷 잘 입어도 개발자보다는 매니저일 거라 생각한다. 머리 단정하고, 면도 매일 하고, 다린 셔츠 입고, 신발도 반짝이는 구두라면 난 이 사람 컴사나 수학 전공은 아니려니(...) 한다. 남자가 인문학이나 정치·경제에 관심이 있어도 놀란다(여성스러운데??). 대신에 남자인데 배터리 신기술에 관심이 없다거나, Cat-5 케이블을 못 만든다거나, 정규식이 뭔지 모른다거나 하면 뭔가 좀 남성성이 반감된 느낌이다. 하지만 스포츠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내 주위 남자들 중에 스포츠 즐기는 사람이 대다수가 아니라서, 이건 그냥 개인 취향으로 본다.     


<곁다리> 개발자들도 언어에 따라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펄 프로그래머라 하면 40대에 곱슬머리 지저분하게 기르고 수염도 좀 길고 배 나오고 도수 높은 안경 끼고 와인보다는 맥주 마시는 남자, 좀 괴팍한 사람 떠오른다. 내 남편이 펄 프로그래머 출신이고 이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데도 그렇다. 자바스크립트 프로그래머는 SNS를 좀 더 열심히 할 거 같고 잡다하게 개발 관련 글 공유도 많이 할 거 같다. 파이선 프로그래머는 개발자 모임에 자주 나가고 고집 세고 유도리 없고 잔소리가 많을 거 같다 (코드 리뷰에서 시비 엄청 걸 거 같다. 참고로 난 파이선이고 전혀 이렇지 않고 어수선하다). 역시나 SNS를 좀 더 할 거 같다. 펄 프로그래머는 트위터 페북 이런 거 안 할 거 같음. 자바 프로그래머가 그래도 제일 일반인에 가깝게 느껴지고, 큰 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 느낌이다. C++는 까칠하고 자기주장 세지만 말수 적고 독불장군 스타일 느낌. 해스켈은 젊은 대학원생,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막 설치고 신나하며 토론에 열 올릴 거 같음. </곁다리>     


내가 비개발자 남자들에 대해 이론적으로, 사회적으로 배운 남성성은 또 한국의 남성성과 많이 다르다. '남자는 좀 더 공격적이고, 다른 이들과 잘 못 어울리고, 자뻑이 심하며, 시키는 대로 뭘 하질 못한다.'란 편견을 자주 보는데, 그에 비해 내가 겪은 남자들은 그리 공격적이지 않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 맞고, 자뻑은 심한 사람은 심하지만 조심스러운 사람도 아주 많으며, 시키는 대로 잘 안 하는 건... 음. 이건 맞는 거 같다. 그래도 여친이 시키는 건 다 곧잘 하던데. 어쨌든. 그런데 한국에서는 남자가 까라면 까니까 선호한다고, 사회생활 더 잘한다고 해서 놀랐다. 아냐아냐 그건 여성성이라고! 뭐라 시키면 대들지 않고 수긍하고, 주위 사람들 기분 늘 맞추고, 싫은 소리 안 하고 그런 걸 여성성으로 본다고!!


남아공에서 고기 바베큐를 브라이라고 한다 (braai). 이건 완벽한 남성성의 상징으로, 성인 남성이 있는데 여자가 브라이 고기를 굽는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남자들끼리 바베큐 그릴 주위에 모여서 고기 구우며 맥주 마시는 것이 거의 남성들 모임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리고 아주 남성적이라 하면, 최소한 나는 승모근이 발달하고 턱근육이 세서 얼굴이 네모고 카키 반바지에 샌들 신고 허름한 티셔츠를 대강 걸쳐 입은 남자를 떠올린다. 잘 맞는 옷, 슈트 빼입은 남자 등은 그 그룹에 안 낀다. 그들은 좀 '영국인', '유럽인'스러운, 그러니까 속과 겉이 달라서 믿음 안 가는 사람 느낌이다. 이건 내가 아프리칸스 사람들이 대부분인 곳에서 자라서 생긴 편견이다 (...) 남아공에서 남자가 운전을 못 한다는 것은 (사실 여자도) 상상하기가 힘든데, 런던에 오니까 운전은 남성성과 전혀 연관을 짓지 않더라. 대중교통이 발달해서 자기 차 몰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그렇다.  

   

런던에 처음 왔을 때 우리 부부는 다림질도 할 줄 몰라서 유튜브 보고 배웠는데 그때 알았다. 세상에는 다림질을 엄청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들이 많구나. 어떻게 남자의 자존심인 셔츠를 그 중차대함을 이해 못 하는 부인에게 맡기냐는 남자도 있었다. 이번에 읽는 책에서도 (Gentleman's Bedside Book), 남자의 자존심, 남자가 알아야 할 것, 남자가 하면 멋있는 것 등은 내가 겪은 다른 사회에서와 많이 다르다. 남자라면 제대로 된 면도를 할 줄 알아야 하고 (wet shave with a proper razor!), 런던 시티 내에서는 갈색 신발을 신으면 안 되고, 하얀 양말 따위 신으면 너님 아웃. 하지만 남아공에서 그리 중요한 '고기 굽기'는 여기에 없다. 배터리 종류나 드릴 고르는 법도 지금 반 넘게 읽었는데 아직 안 나왔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돈 관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보지만 남아공에서는 '여자는 수학이나 돈 이런 거 잘 모르기 때문에 돈을 아껴 쓰지 않는다.'라는 여혐 편견이 있었다. 돈을 아껴 쓰는 사람은 늘 남자로 비춰졌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아줌마들이 늘 깎아 달라 하고 남편보고 돈 가지고 잔소리하는 이미지가 흔하다.     


만국 공통인 부분도 분명히 꽤 있지만, 자잘한 남성성, 여성성 디테일을 보면 대략 결론은 - 그런 거 없어! 이다. 한 문화 내에서도 우왕좌왕한다. 여자는 시키는 거 잘 하고 꼼꼼하니까 회계사, 변호사 이런 거 잘한다 했다가, 여자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거 잘 하니까 마케팅, 디자인에 어울린다 하고, 사람들 관리 잘 하니까 인사과에 적합하다 했다. 일 확실하게 하는 건 남자가 잘 하고 큰 아이디어 내는 거, 사람들 관리 잘 하니까 리더에 맞다 어쩐다 한다. 여자는 보살핌 받아야 하는 존재라 했다가, 남자만 걸린다는 특수 감기 manflu는 부인이 딱 옆에 붙어 보살펴줘야 하고 (같은 감기라도 남자가 걸리면 manflu!! 훨씬 더 자상한 보살핌이 필요함!!), 애 엄마들은 보살핌 없어도 강철 체력이라고도 한다. 대략 거는 대로 코걸이 귀걸이.     


결론. 

정해진 여성성 남성성 그런 거 거의 없음. 문화마다 엄청나게 다름.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배운 편견은 쉽게 없어지지 않음. 나부터가 남자라고 다 코딩 안 하는 건 정말 잘 아는데, 그리고 IDE랑 성격이랑 별 상관없는 거 아는데, 난 그래도 프로필만 보고 데이트 나간다면 수입에 상관없이 다른 직종보다는 개발자 남. 자바 개발자보다는 Erlang같은 함수형 언어, C 커널 개발자 고르겠음 (색달라! 있어 보여! 똑똑할 거 같아!). 나도 파이선 하지만 파이선 개발자보다는 C++ (까칠하면서 카리스마 있을 거 같아!!), 이맥스 쓰는 사람보다는 Vi 쓰는 사람 만나겠음. 물리학이나 수학 전공한 사람이라면 가산점+++. 개인 취향이 참 그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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