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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9. 2018

시스템 세팅으로 생활 습관에  차이를 줄 수 있다

2017년 1월 31일

지난 일주일 동안 양파는 상당히 모범적인 생활 리듬을 따랐다. 점심은 샐러드. 오후 간식도 샐러드. 집에서 해 먹는 요리도 야채 중심으로. 하루에 운동 한 시간 정도 하고 출퇴근 시간에 틈틈이 독서해서 책 한 권 다 읽기. 직장에서는 허리 곧게 펴고 일해서 요통도 훨씬 덜해졌다.     

얘가 어디 한 대 맞았나, 왜 안 하던 짓 하냐 싶은데 이건 뭐 갑자기 하늘의 계시를 받고 깨달음이 있었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사무실을 옮겼을 뿐이다. 홀본에서 4년 있다가 2주 전에 패딩턴으로 옮겼다. 새로운 사무실에는 오픈한지 얼마 안 되어서 의욕이 넘치는 구내식당이 있다. 샐러드를 잔뜩 담아도 2파운드 75. 나가서 사먹는 것보다 훨씬 싸고,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점심시간에 한 번 사면 오후에 출출할 때까지 계속 먹을 수 있다. 점심을 안 싸도 되고 조금씩 다른 음식을 매일 먹게 되니 아침과 저녁에 시간이 조금 더 남는다. 그래서 요리할 시간도 더 났다.     


새 사무실에서는 건물 바로 옆에 피트니스 센터가 있다. 회사 d/c 받아서 아주 저렴하게 등록했다. 타월이 있어서 타월 안 챙겨가도 된다. 옷 챙겨가고 그러는 게 귀찮아서도 잘 안 갔는데, 옮기면서 서랍은 없어졌지만 개인 로커가 생겼다. 그래서 옷 1주일 치 갖다놓고 샴푸와 로션도 갖다 놨다. 이젠 그 가방만 들고 내려가면 된다. 아침에 이것저것 안 챙겨도 된다. 훨씬 가기가 쉬워졌다.     


출퇴근은 걷는 시간은 좀 줄었지만 한자리에 앉아서 한 35분 쭉 가게 되고, 우리 역에서는 거의 매일 자리가 나서 편하고, 센트럴 라인과 달리 쥬빌리는 덜 흔들려서 책 읽어도 안 어지럽다. 기차 타고 출퇴근할 때는 남편과 같이 가니까 각잡고 앉아서 책 읽고 그러진 않았는데 이젠 혼자 가니까 심심해서라도 책 본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읽으니까 일주일이면 한 권 다 읽게 되더라.     


새 사무실 책상은 Standing desk다. 버튼 하나 눌러서 높이 조절이 가능하니 서서 일하는 게 아주 쉽다. 앉을 때도 좀 높게 해서 허리를 꼿꼿이 펴도록 조절했다. 요통이 훨 덜해졌다.     


물론 얼마 갈지는 모르겠다. 새 사무실에 옮기면서 뭔가 이직한 분위기도 나고 해서 반짝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쨌든 작은 변화로 - 출퇴근할 때 30분 넘게 앉을 수 있고 책 읽을 수 있음, 로커가 있고 gym이 바로 옆이라 정말 가기 쉬움, 구내식당에서 먹을 만한 샐러드를 저렴하게 제공함 - 생활 변화가 훨씬 쉬워졌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고, 인지적인 행복을 위해서 다른 이보다 내가 얼마나 나은가를 아주 쉽게 평가해서 자기 만족한다. 2주 전의 나와 저번 주의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저번 주의 양파 B는 양파 A를 쉽게 비난할 수 있다. 매일 조금씩 운동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야채 더 먹는 게 그렇게 힘들어? 시간 좀 쪼개서 책 읽으면 될 텐데. 난 그렇게 하는데!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작은 이유로 생활 습관을 바꾼다.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사람은 점심시간에 산책을 덜 나갈 수 있겠다. 괜찮은 구내식당이 없는 사람은 점심을 사먹거나,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온다. 별 건 아닌데, 자유 시간을 좀 더 잡아먹고, 의지력을 좀 더 좀먹는다. 

지금은 마침 내 자리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이 사내 물리치료 센터다. 허리 아프면 정말 쉽게 상담 받을 수 있다. 난 지난 1년 동안 계속 허리 아팠지만 귀찮아서 버티다가 엄청 심해져서야 GP 찾아갔었다. 작년 내내 역 바로 앞에 비싼 gym에 등록했지만 옷 챙겨 다녀야 하고 출근 전에만 갈 수 있을게 귀찮아서 안 갔다. 지금은 직장 바로 옆이고 옷 매일 안 챙겨도 되니까 그냥 간다.     


노오력이 부족한 사람들 욕하는 건 쉽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내가 얼마나 이 여유를 누릴 가치 있는 사람인가 자뻑하는 건 기분이 좋다. 다른 이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왜냐면 이건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니까. 다른 사람의 고생은 자업자득이니까. 하지만 근시안적이다. 이런 태도로 해를 입는 건 내 주위 사람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해당돼서다.     


내가 잘났고 도덕적으로 우월해서, 의지력이 다른 이들에 비해 뛰어나서가 아니라, 작은 변화와 시스템 세팅의 차이로 중요한 생활 습관에 큰 차이를 줄 수 있음을 받아들이면 나의 실패 역시 내 인성의 모자람, 의지력의 실패보다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로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로 볼 수 있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끈기와 인내 있는 훌륭한 아이들이어서만이 아니라, 면학 분위기와 집안의 지원, 친구 그룹의 영향, 학교 시스템의 영향도 크다는 쪽으로 가면 성적이 낮은 아이들의 인성부족으로 몰기보다 좀 더 효과적인 해결책을 내는 게 가능하다. 개개인의 근성으로만 보면 인성이 훌륭한 애들, 아니면 의지력 없는 루저들로만 나눠진다. 그리고 우리 중 그 누구도 인생 살면서 백퍼센트 의지력 맥시멈으로 불타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이건 내가 맨날 난 의지력 없고 노오오력 부족하고 끈기가 없어서 망했다고 자학하는 인간이라 셀프 설득을 위해 쓴 글이다. 쓰고 나서도 노오오력 좀 더 하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아쉬움은 변함이 없다만.     


* 좋게만 쓴 것 같아서 노파심에 덧. 

이전 사무실은 출퇴근길 30분 걷기가 참 좋았는데 그게 없어졌다. 

센트럴 라인만큼은 아니어도 전철은 기차보다 훨 덜 쾌적하다. 

점심 옵션이 이전 사무실이 훨씬 좋았다. 근처에 가게도 많았고 공짜 음식도 많았음. 여기는 샐러드만. 

출퇴근시간이 길어졌다. 

책상이 좀 더 작고 서랍이 없어서 잡다한 사무용품 많은 난 좀 곤란. 

예전의 신이 내린 명당자리에서 완전 후진 자리로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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