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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0. 2018

예비맘충

2017년 3월 17일

두 주 있으면 나도 한국에 애들 데리고 간다. 낮에 애들 둘하고 밖에 나간다고 하자. 애들은 한국말을 못 알아듣고, 한국에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가 "얘 좀 비켜" 했는데 못 알아듣고 그냥 줄을 막고 서 있을 수 있다. 이때 나는 집에서 놀다가 낮 시간에 기어 나와 애 통제도 못하는 맘충 소리 듣기 딱이다. 커피 마시면서 오프라도 하고 있었다면 "글쎄요... 여자들 살기 힘들다는데 저렇게 쇼핑하고 커피 마시는 여자들 보면 참 괴리감 느끼죠..." 지랄 헛소리 들을 수 있겠다. 팔자 좋게 낮에 커피나 하고 있는 여자 어쩌고 저쩌고.     

둘째는 고집이 세다. 얘 역시 한국말 전혀 못 알아듣고, 한국 전철은 처음 타볼 터이니 신기해서 마구 돌아다닐 수도 있다. 이걸 본 사람들에게 또 맘충 소리 들을 수 있겠다. 이것저것 쇼핑하면서 돌아다니면 남편 등골 빼먹으면서 사는 팔자 좋은 여자가 되겠지. 애는 혼혈이니까 양공주(사실은 더 험한 소리) 어쩌고 하는 소리는 덤.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물론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거리에 있는 엄마들의 사정 그 어느 하나도 알지 못하고 맘충 어쩌고 쉽게 말한다. 양파 니는 흔하지 않은 케이스고 니 얘기하는 거 아니지만 진짜 진상인 엄마들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나는, '그런 진상 엄마 때문에 나도 욕먹네요!!' 하면서 그 알지 못하는 여자를 욕해야 하는가? 그 사람에 대해서 나 역시 하나도 모르면서? 나를 보고 맘충 어쩌고 욕한 사람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사정을 모르고,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겠으나, 나중에 지 친구들에게 욕할 때는 "혼혈 애들 끌고 다니는 양공주 맘충"으로 돌변해있을 것이다. 피해의식이라고? 이보세요 내가 인터넷 하루 이틀 하나. 온갖 소리 다 들어본 지 십 년 넘었다. 남자는 여친, 부인을 죽여도 '정신질환이 있겠지', '술이 웬수', '여자가 좀 화를 돋궜나 보지', '집에서 엄마가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등의 변명을 다들 알아서 잘 갖다 붙여주는데 '맘충'에게는 무자비하다.     


극성 엄마도 아니고 그냥 '맘'충이다. 엄마라면 무조건 자기 행동 검열해야 한다. 모든 엄마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언어폭력이다. 대신 아빠들은? 애들 패는 아빠는? 남자에 대한 욕이라 봐야 한남충, 변태 정도. 그나마 변태는 여자에게도 쓸 수 있다. 돈 못 벌어오는 남자에 대한 욕이, 맘충만큼 넓게 쓰이는 욕이 있는가? 학대하는 아빠는? 성추행하는 남자는? 한남충은 그렇게 기분 나쁘다고 부들부들하면서, 어떻게 맘충 김치녀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지? 애들 데리고 나와서 민폐 끼치는 것은 전국적으로 조리돌림할 정도로 나쁘고, 스토킹하는 구남친이나 같이 자 달라고 앵기는 남자 비하 단어는 없지?     


뭐 어쨌든. 거리에 그 많다던 쇼핑하는 여자는 보이지만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며 감정 노동하는 여자들은 보이지 않고, 팔자 편한 여자들은 보이지만 육아에 시달리다 잠시 나와서 눈치 보는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맘충소리 할 사람들과 부딪칠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덧: 무슨 사건 있을 때마다 그 여자 옷차림이 뫄뫄, 부인이 뫄뫄' '엄마가 교육 잘못 뫄뫄 어쩌고 하는 만큼, 돈 밝히는 김치녀라고 누가 욕할 때마다 남자 좀 욕해주죠? "얼마나 아빠가 돈을 못 벌었으면 저렇게 돈독이 들었을까" "얼마나 전 남친이 그지같았으면 저럴까" 정도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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