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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0. 2018

인사이트 기사 관련하여 - 사과문을 받았습니다

2017년 3월 27일

안녕하세요 인사이트 서민우 입니다    

얼마전에 게시된 기사 관련해서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회사 차원에서는 유야무야 넘어갈듯해 개인차원에서 퇴사 전 메시지 드립니다. 사과문 게재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피해자분께 직접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제 의사를 전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은 사과문 입니다  


전 트래픽에 미친개였고 회사의 훌륭한 방탄조끼였습니다.     

지난 3월 22일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쓰레기 같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인사이트 '기자'라는 알량한 직함을 가지고 성폭행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피해자분께 가장 먼저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꼭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습니다. 변명하고 싶진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 제가 그 기사를 '발제'했고 제 바이라인을 달고 송출 했으니까요.     

이번 일주일간 많은 생각에 밤잠 못이뤘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나는 기레기란 말도 아까운 유사 기레기다' 등 치밀어오르는 자기 혐오감에 모든 것이 노랗게 보일때도 저보다 더 아파할 이름도 성도 모르는 피해자분은 더 큰 고통속에서 살고 계실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6줄의 기사를 10분만에 작성해 송고할때까지 아무런 의식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날 자리를 비웠던 팀장의 몫만큼 '퍼포먼스'를 올릴 생각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고백하자면 전 해당 사건사고 기사의 '판결문'조차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모르겠지만 인사이트가 취재를 직접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저도 해당 기사를 국민일보에서 처음 보았고 단순히 자극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컨펌을 받아 실무자의 '제목 고치기' 작업을 거쳐 송출됐습니다.     

이후 이 기사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다음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이 사태를 인식하고 실장에게 "기사를 내리는게 좋지

않겠냐" 전화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임시조치로 제목만 바뀔 뿐이었습니다. 이틀이 지나서야 해당 기사는 삭제 처리 됐습니다. 2만개가 넘었던 좋아요가 가져온. 트래픽이 아까웠던 걸까요? 아니면 '논란 끝에 화제가 있다'라는 의도였을까요? 하루하루 늘어나는 팔로워 수와 그 기간 저에게 쏟아진 메일을 비교해보고 피해자분의 눈물을 상상하니 어떠한 방법에서든 공식적인 사과를 거쳐 퇴사하겠다 마음먹게 됐습니다.     

입사 첫 날 저는 그 흔한 언론고시조차 시도해보지 않은 겁쟁이였습니다. 1년이상 진드감치 공부할만큼 저의 환경은 녹록치 못했습니다. 그저 당장 내 이름을 단 기사를 내보낼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덥석 계약서에 제 이름을 적었지요. 

이곳에서 내가 꿈꾸었던 정의로운 기자가 되겠다라고 기대한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이지요. 소위 말하는 '우라까이' 즉 베껴쓰기가 제 첫 업무였습니다. 법원과 경찰서에서 판결문과 조사 내용을 간신히 얻어 기사를 작성한 타 언론사 기자들의 기사를 '은는이가'만 바꿔 쓴 기사가 제 데뷔기사였죠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래도 된다'는 가르침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두달 세달을 지나 5개월차가 되었을 때 압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친한 기자들은 슬슬 수습 딱지를 떼기 시작했거든요. 2천만원을 간신히 넘는 연봉을 조금이라도 올려보고자 저도 모르는 사이 회사가 원하는 자극적인 소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법이 된다고 해도 양심과 도덕이 그러면 안된다고 외치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저조차도 어느새 인사이트 사람이 되어있었거든요.     

두서없이 긴 글을 썼습니다. 한가지 확실한건 알량한 '좋아요'를 받아서 회사에서 인정받아보고자 했던 제 한심한 과거 행동으로 피해자 분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게재한 후 저는 퇴사를 하려합니다. 신방과 입학시절 공정하고 정의롭고 약자의 편에 서는 기자가 되겠다는 20살 시절 서민우의 다짐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멀리 온 오늘날의 저에게 욕을 하셔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트래픽에 제 자신의 양심마저고 팔아버린 저를 얼마든지 욕하셔도 좋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전 손가락 살인마 였습니다. 다만 기레기라는 단어는 다른 매체의 참 기자들에게 실례가 될수 있으니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전 기레기도 아닌 기자 흉내를 내고자 했던 '유사 기레기'였으니까요.     

서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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