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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0. 2018

오그라든 손발, 분리된 영혼

2017년 4월 9일

나흘 연속 강연이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저한테 한국말 잘 한다고 뻥친 사람 다 나와 나랑 싸우자...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 첫 이틀이었고, 어제랑 오늘은 그나마 긴장 좀 풀리고 나아졌어요. 하지만 첫날 카카오의 150명 제가 기필코 출국 전에 다 찾아내어 제거하고 말겠... 아 이런 건 미리 광고하고 하면 안 되지.     


제가 사실은 한국에 입국할 때 48킬로였거든요. 진짜에요. 입국 신고서에 보세요. 입국 심사할 때 몸무게 재잖아요. 그때 분명히 48킬로였는데 한국 도착 일주일 만에 16킬로가 쪘습니다. 한국 편의점과 빵집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고로께로만 한 5킬로 찐 것 같아요. 그 외에는 사이좋게 라면과 컵라면과 비빔면과 짜파게티겠네요.     

일행이 저희 가족 동생 부부 부모님 이렇게 좀 많아서 방 세 개짜리 아파트 형식 레지던스를 구했는데 여기엔 냉장고가 두 개 있습니다. 그걸 저희 어머님이 이틀 만에 다 꽉꽉 채우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육개장에 어묵 볶음에 김치 세 가지가 나옵니다. 저희 어머니가 이렇게 위대하십니다. 안 먹는다 싸워도 소용없습니다. 이 싸움은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남아공 남자 두 명도 매일매일 김치찌개, 된장찌개, 부추김치, 더덕 무침을 다 먹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매일매일 나가서 장을 보십니다. 고기를 몇 킬로씩 재십니다. 반경 1킬로 미터 내에 3보 1편의점이어도 그렇습니다. 절대로 굶어 죽을 위험은 없고 식당이 이 빌딩 안에만도 몇 개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어제는 '이기는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으로 토크쇼 비슷한 걸 했는데요, 광고만 봐도 닭살 만빵이었는데 그걸 직접 초대형 플래카드 형식으로 보았으니 제 손발이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또 양파님 팬이에요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저는 정신이 혼미해지며 깨끗한 위메프 건물 안이라도 필시 있을 만한 쥐구멍을 찾고 싶었으나 48킬로 시절 같지 않게 16킬로가 더 찌고 나니 그것도 좀 힘들더라고요. 세 시간이 지난 후 저는 오그라든 손발에서 그나마 영혼까지 분리되어 후루룩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저는 또 다시 강남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전날은 삼성역 7번 출구. 오늘은 4번 출구. 구글 캠퍼스에서 데이터 과학자 되기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어야 하는데 앞의 두 분 하는 거 보니 너무 제 허접한 PPT가 비교가 되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작은 종이에다가 괴발개발 몇 개 적어서 어찌어찌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오늘 드라이를 하고 오신 것을 센스 있게 알아채신 분들이 사진 찍자고 하셔서 머리 값은 본전 뽑았습니다. 의외로 반가워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되게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womentechmakerskorea. 그런데 사진 찍은 거 저한테도 좀 보내주시죠 흑흑 제가 사진을 하나도 안 찍었어요 ㅠㅠ     


자자자. 드디어 내일이 북콘서트입니다. 부모님이 오시기 때문에 부모님 욕은 못하고 (...) 뭐 그래도 처음으로 남편 포함 아이들도 참석합니다. 자야 하는데 잠 안 오네요. 무엇보다도 입을 옷이 없네요. 그저께 입었던 원피스를 다시 입느냐 그끄저게와 오늘 입었던 청바지를 입느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만. 그리고 이쁘게 보이려고 콘택트렌즈도 가져왔는데 한 번도 못 써먹었어요. 한 번 끼고 나왔더니 엄마가 '그냥 안경 끼지?' 하셔서 포기. 어머니 음식만 먹이지 마시고 사랑도 먹여주세요.     

흠.     

내일... 이 아니라 벌써 오늘이구나. 조금 있다가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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