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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0. 2018

호구와 진상, 페미니즘, 낙성대 폭행  사건

2017년 4월 12일

 한국인에게서 유독 보이는 정서라면 '진상'으로 찍혀서 사회적 비난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호구'로 보여서 무시당할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한국에서는 누군가를 '진상'으로 설정하면 전 국민의 조리돌림이 가능하다. 그래서 김치녀와 된장녀, 맘충이 진상으로 설정되었고 그 낙인이 통했다. 반대로 자신이 호구로 보였다 느끼는 한국인은 분노하고, 자기와 비슷하게 호구로 당한 듯한 이들에게 과하게 감정이입한다. 워낙 진상과 호구 프레임에 익숙해져 있어서 모든 상황에서 진상과 호구를 찾는다. 

이번 낙성대 폭행 사건에서도 남자들은 진상인 젊은 여자를 찾았다. 피해자가 할머니로 처음부터 나왔다면 진상 프레임에 맞지 않으니 욕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김치녀처럼!!) 자격 없이 이것저것을 요구하는 뻔뻔한 인간이 진상이고, 그 때문에 피해당하는 사람이 호구다. 낙성대 사건에서 가해자는 진상/호구 프레임에 안 맞으니까 그냥 넘어간다.     


여혐러들의 분노도 이 '호구'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군대도 가고 데이트와 결혼에 돈도 더 내는데, '진상' 김치녀 이것들이 우리를 호구로 보네 뭐 그런. 그리고 너는 그럴 자격이 없다 한다. 혹은 원래는 예쁘지 않은 이들이 성형 등으로 예뻐져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진상이 되었다고 비난한다. 이들에 의하면 페미니즘 역시 '이미 받을 거 다 받고 하는 건 없는 진상들'이 더 진상짓 하는 거고, 남자들은 불쌍하게 호구처럼 당하고 있다. 여성들이 당하는 폭행이나 성범죄는 진상/호구 프레임에 안 맞으니까 무시한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군대/더치 문제를 끌고 들어온다. 이건 실제로 당하는 피해보다는 진상/호구 프레임에 맞는 세팅이라서 그렇다. 여성들의 말을 듣는 대신에 '아냐 닥쳐 넌 진상이고 전국적으로 조리돌림 당해야 해. 나는 호구처럼 당하기만 했으니까 내가 불쌍해' 스토리로 이미 머릿속에서는 세팅 끝났다.     


아이러니하게 페미니즘 운동이 효율적으로 먹힌 것은 여자들도 똑같이 깨닫게 되면서다. 아, 난 '진상'인 김치녀가 되지 않고 '개념녀'가 되고 싶었는데, '개념녀'는 그냥 호구였구나? 시키는 거 다 하고, 사근사근 조곤조곤 예쁘게 대답하고 투덜거리지 않고 성희롱해도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고, 콘돔 끼기 싫어요 하면 아 네 오빠 그러세요 하면서 임신 위험도 안고 가고, 결혼해서는 시댁 뒤치다꺼리 독박육아 경력단절 다 안고 가야했던 내가 호구였구나. 이것들이 날 호구로 봤구나. 이때 메갈이나 꼴펨이다 라벨 붙여봐야 늦었다. 진상으로 욕먹는 것이 호구로 잡혀 손해 보는 것보다 낫겠다 계산 끝난 여자들이 많고, 늘어가기만 할 테니까. 실제로 손해 보지 않는 성평등이 오기 전까지는 쭈욱 계속될 듯.     


다음에 비슷한 뉴스가 나온다 해도 똑같을 것이다. 젊은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진상임을 증명하려는 프레임이 풀가동 될 거다. 남자는 당하는 호구이고, 한국 여자들은 다 그렇게 진상이다. 이들은 자신을 그런 진상 여자들이 뜯어먹는 호구로 세팅해서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 외에, 여성들의 이야기엔 관심 없다. 이들이 하고 싶은 말은 그저 1. 아됫고 너 진상. 내가 훨 불쌍함 2. 그런데 외않만나조. 역시 너 김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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