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하는 여자의 경제
2017년 4월 20일
한국에서 한 달 있는 동안 돈을 엄청 썼다. 우선 가족 모두의 비행기 표가 520만 원, 그리고 숙박료가 400만 원. 숙박료가 비싸긴 한데 성인 여섯에 애 둘 편하게 있을 만한 방 세 개 아파트 형식 레지던스였으니 그럭저럭 괜찮게 있었던 편이라 치자. 제대로 된 부엌이 딸린 유닛이라 어머니가 요리를 하실 수 있었고, 엄청난 내공의 주부력을 지니신 어머니는 곧바로 양문 냉장고를 꽉꽉 채우시며 음식을 하셨다. 그러면 호텔에서 있는 것보다 식비가 훨씬 싸게 먹힌다. 마트에서 물과 음료수, 컵라면 (내 최애 아이템!), 과일, 식빵, 계란, 쌀, 김, 밑반찬 정도 사 두면 집에서 간단하게 아침과 오후 간식, 저녁 야식 정도는 때울 수 있다. 매끼 매식해야 하는 호텔보다 백배 편하다.
영국 연봉 레벨이 한국 두 배 정도라고 하니까 뭐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한국 물가도 반이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리 싸지는 않다. 음식이 나에겐 상당히 싸게 느껴지지만 영국의 반은 아니다. 숙소에서 대강 아침 때우고 나와도 점심은 나와서 먹게 되는데, 간단 점심과 차 한 잔 정도만 해도 2~3만 원은 들더라. 한국 택시는 영국에 비해 정말 미친 듯이 싸서 어딜 가나 택시! 부르는 호기를 부렸는데 그러니 거기에다 1~2만 원 더하고, 남편이 쓰는 돈까지 더하니 하루에 최소 5만 원 깨진다. 저녁도 나가서 먹으면 십만 원. 난 입맛이 저렴해서 딱히 비싼데 가서 먹지 않았어도 그렇다.
숙소에 있으니 관리비 전기세 물세 인터넷 비용 뭐 이런 거 안 내도되고 여섯 가족이 있었으니 우리 가족만 있으면 좀 저렴한 게 가능했다 치고 하루 숙박비용 10만 원 정도로 잡자. 좀 더 집에서 더 해 먹고 매식 줄이고 택시비 줄이고 해서 하루 5만원으로 식비 교통비 다 해결했다고 하면 15만 원. 그럼 한국 체류 비용은 한 달 450만 원. 이걸 확 줄이려면 거주 비용을 줄여야 한다. 집을 사면 식비 교통비 150만 원 + 관리비 등등으로 줄어들겠지. 그러려면 한국에 그 많은 아파트 중 하나를 사야 하는데, 최소한 몇억. 식비를 줄이려면 요리를 훨씬 더 많이 해야 한다. 누가 해도 해야 할 거고, 아이 육아 비용 교육비용은 넣지도 않았다. 보험과 공과금 역시.
집이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200만 원으로 아이 있는 가족이 생활 가능할지 모르겠다. 월세를 내고 산다면 우리 네 가족은 최소한 한 달 300은 있어야 빠듯하게 먹고 살 듯하다. 그리고 누군가가 계속 장을 보고 요리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빨래도 해야 할 거고. 그러므로 한 명의 노동력이 생활비 줄이는 데에 갈아 넣어져야 한다.
요즘 여자들 눈이 높아서 남자 연봉 5천이 어쩌고 한다는데, 사실 그래도 세후 매월 400만 원 좀 안 된다. 집이 없다면, 애 있는 가정에서서 그거 가지고 사치가 가능하기나 한가 싶다. 그래 봐야 하루에 점심 한 끼 혹은 택시 마음대로 타는 정도일 거 같은데 말이지. 한 달 백만 원가지고 왜 생활 못하냐는 인간들 - 너 살림 안 해봤지? 장 안 보지? 관리비 전기세 그 외 공과금 안 내지??
잠깐 있으려면 비싸다. 집이 없으면 비싸다. 집에서 장보기 요리 노동해 줄 사람이 없으면 비싸다. 직장에서 멀리 살면 출퇴근 시간 투자가 비싸다. 비용을 줄이고 편하게 살려면 목돈과 여유 노동력이 있어야 한다. 이거야 뭐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서울은 연봉 레벨에 비해서 비싸게 느껴졌다. 그 많은 가게들이 '돈 가지고 오시면 이렇게 잘 해드려요!'를 외치고 매 끼 배고픔을 채워주겠다는 식당들이 넘쳐나는데 지갑이 엄청 빨리 비더라.
결론1.
한국 비쌈. 런던도 빡세지만 서울도 만만찮은 듯.
결론2.
한국에서 사치하고 살려면 집 하나 장만하고 얘기해야 할 듯. 아니면 그냥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게 개이득. 여자보고 김치녀 어쩌고 하지 말죠?
결론3.
다음에는 역시 나 혼자 살짝 갔다 와야지 -_- 6월 중국 출장 끼워서 며칠 잠깐?
혹시나 해서 덧:
남자가 돈 더 벌어와야 된다, 연봉 5천도 부족하다!! 이건 당연히 아니고. 여자도 계속 일 할 수 있으면 훨씬 쉽고, 이건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주거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아이 낳고 살기는 정말 힘들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