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8일
~이래야 한다 - should be this way
현실은 이렇다 - it is this way
줄여서, 슈드비 족, 그리고 이티즈 족이라고 하자 (영국식 발음임!!)
슈드비: 강간하는 남자가 잘못이지 여자가 옷을 어떻게 입든,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그게 왜 문제냐.
이티즈: 물론 강간범이 나쁜 놈이지만!! 늦게까지 술 마시고 혼자 돌아다닌다던가, 위험한데 혼자 안 다니고, 문 꼭 닫고 다니고 등등 조심하면서 강간당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슈드비와 이티즈가 토론하면 답이 안 난다. 슈드비 입장에서 이티즈는 강간범을 잡을 생각은 안 하고 당한 사람한테만 왜 조심 안 했냐고 따져드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개념상실 또라이다. 이티즈 입장에서 슈드비는 현실 감각 없이 뜬소리만 하고, 실제 위험에 당한 이들에게는 아무런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이들이다. 며칠 만에 온 세상 강간범이 없어질 거 아닌 이상, 혹은 우범지대가 다 사라지지 않는 이상,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노후보장에서도 두 팀이 갈린다. 슈드비 입장에서는, 젊었을 때 노후대비 안 했다고 비참하게 죽도록 내버려 두는 정부가 죽일 놈인데, 이티즈 입장에선 언제 정부 정책이 바뀔지 모르니까 최대한 내가 준비할 수 있을 만큼 하자고 한다. 정부 정책 데모하는 것보다는 입사 공부하는 게 훨 효과적이지 않은가?
다른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에 마소 인턴 남자애와 얘기할 일이 있었다. 구글 인턴 지원했다가 떨어졌는데, 자기보다 학점이 좀 낮은 여자애가 붙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었다. 여자기 때문에 더 혜택을 준다 이거지. 그래서 걔한테 그런 말을 했다.
물론, 개인 입장에서는 공평한 시스템을 원할 수 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본다면, 사실 학점 몇 점 차이 별거 아니고, 학점이랑 일 실력이 비례하는 거 아닌 데다가 여자들의 이공계 진출을 더 장려하는 분위기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마찬가지로 남아공에서는 백인보다 흑인들을 고용하는 것을 장려하고,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affirmative action이 있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불공평하지. 그러나 사회 공평성을 고려하면 - there should be more social equality. 지금 당장은 남자들이 더 이공계에 많고 실력 좋은 애들이 많을지 몰라도, 그대로만 둔다면 더욱 더 '컴퓨터는 남자들만 한다'는 선입견이 굳어질 수 있다. 이 선입견을 바꾸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개인이 손해 봐야 하는가? 이건 지금까지 계속되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논란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사회적인 공평성을 위해서는 개인의 불공평함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거의 대부분 나라들의 입장이다. 똑같은 이유로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세금을 더 낸다. 능력 있어서 돈 더 버는데 왜 돈 더 뺏어가냐 하겠지만 말이지.
이 케이스는 '슈드비'에 기반으로 한 정책 때문에 '이티즈'가 바뀌었다. 여성 진출을 장려하자는 것이 '슈드비'이고, 그로 인해 실제 실생활에 변화가 왔다. 백인으로서, 남자로서, 혹은 돈 많이 버는 사람으로서 손해를 본다. 내 개인적 '슈드비'는 '만인이 평등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이지만, 사회적인 '슈드비'는 여자, 혹은 저소득층을 더 봐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슈드비'를 기본으로 해서 '이티즈'를 바꾸어가는 것인데, 개인 레벨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본다. 내 개인의 이익만을 보면 '이티즈'족이 유리하다. 하지만 이티즈 족으로만 드글드글한 동네는 빈익빈 부익부, 약육강식,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진다. 사실 한국의 젊은 세대도 자기계발을 기본으로 한 이티즈 족의 강세라고 본다. 사회 실태야 어쨌든 하여튼 나부터 잘 살고 보자는 것. 어쨌든 내 새끼가 공부 잘해서 설대 가고 좋은데 취업하면 장땡. 그러나 점점 사회 시스템이 고착되고 더 이상 개룡녀/개룡남 시나리오가 힘들어지면서 이기적인 이티즈 족들도 점점 슈드비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무리 혼자만 잘 먹고 잘살려고 해도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위에서 든 강간 예를 들면, 아무리 조심해도 강간은 엄청나게 일어나고, 그런 강간범이 검거되지 않고 피해자의 인권보호가 안 되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어느 임계점을 넘는 순간 여자에게 몸조심해라 잔소리하기보다 대대적인 운동이 일어난다(최근의 인도가 좋은 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슈드비' 경향이 약해진다. 아무리 사회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외쳐봤자, 실제 변화는 느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렇다. 그렇지만 내 등이 따시면 따실수록, 내 배가 부르면 부를수록,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며 '슈드비'를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