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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1. 2018

홍준희라는 검사 이야기

2017년 4월 27일

홍준희는 1954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글도 모르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남자새끼를 무슨 학교에 보내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글 모르는 아버지는 보리쌀 두 말을 주고 대구 영남고에 보냈다. 남자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당연한 시대에 말이다. 남자 혼자 부모를 떠나 위험하게 자취해가며, 엄청난 남녀차별에 시달리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했던 홍준희는 1만 4천 원을 쥐고 서울로 상경했다. 

   

위험한 시절이었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거절하자 돼지 흥분제를 먹이고 강간하려는 학우도 있었고, 그 외에도 성추행 성희롱을 무수히 겪었으며, 남자 교수라고는 전무하고 남자 학우 비율도 극소수이던 고려대학에서 정말 힘들게 버텼다. 게다가 경상도 사투리라는 페널티까지 있었다. '헹님 해봐! 아유 귀여워서 하는 말이야. 헹님! 이거 사주이소 해봐!' 라며 끊임없이 놀리는 인간들이 넘쳐났다. 덕분에 사투리를 한 학기 만에 고쳤다.     

그나마 학교 밖으로 나가면 '고대 다니는 고추들 진짜 꼴보기 싫단 말이지!' 란 소리 듣기 마련이었다. 왜냐면 세상은 나대는 남자를 싫어하고 잘 배운 남자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고다이로 1982년 대한민국 최초 남자 검사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대한민국 내에 남자 검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법조계에 드디어 남풍이 분다, 남자들 이젠 잘 나가니 무서워해야겠다는 비아냥이 넘쳤다. 남자 화장실도 설치되었고 남자라고 무조건 무시하고 들어가는 일도 점점 줄어들기는 했지만 최초 남자 검사로 사는 건 쉽지 않았다. 뭘 해도 남자 검사는 그렇냐는 얘기를 듣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지도부에서는 보기 힘든 경상도 출신. 그는 실로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요즘에야 남검사가 500명을 육박하는 시대지만 그때 법조계는 금남 시대였다.     


그 와중에도 결혼해서 아들 둘 낳고 처가 챙기며 독박육아하며 아내 내조하며 국회의원 집권당 원내대표 당대표 경남지사 보수본당 대통령 후보까지 된 대단한 사람이 홍준희다. 이렇게 힘들게 성공한 사람을 왜 젊은이들은 싫어할까? 그야말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 실제로 최초 여성 검사가 1982년에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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