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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2. 2018

김치녀의 계산

2017년 5월 29일

    

얼마 전에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스틸컷으로 보이는 포스팅을 봤다. 결혼할 여자에게 들어가 살 집을 보여주면서 '그런데 좀 비싸서 말인데... 반반하면 안 될까?' 라고 물어보고 반응을 보는 거였던 걸로 기억한다.     

여자 김치녀 죽일 년 만들기 하루 이틀 하는 거 아니지만 참 버라이어티하게 악랄하다. 면접 통과한 사람에게 고용계약서 보여주면서 '그런데 우리가 좀 힘들어서 그런데... 첫 세 달은 무급으로 하면 안 될까?' 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자, 여기에서 '아니 매매춘도 아니고 결혼을 직장에 비교하면 안 돼죳!' 이란 지적 나올 거라 생각하는데, 그게 딱 포인트다. 가부장제도의 사회에서 여자는 미모에 따라서 급이 매겨지고, 다른 뭘 잘하는지 똑똑한지 뭐 그런 건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여자가 돈 많이 벌고 뭐 그럴 거란 기대는 없거든. 남자 능력 안에서 최고 깔쌈한 물건(여자)를 사올 수 있었다는 게 이 시스템인데, 능력이 곧 부인 미모를 결정한다는 공식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러니까 '치트키'가 바로 '사랑'이다. 이쁜 여자가 날 사랑하면 가난해도 오는 거고, 잘난 남자가 날 사랑하면 그 남자는 훨씬 더 이쁜 여자를 가질 수 있는데도 나를 선택하는 거고 뭐 등등. 말할 필요 없이 전자는 남자의 로망이고 후자는 여자의 로망이다.     

예쁘고 잘 꾸미지만 커리어에는 별 관심 없는 여자가 있다고 하자. 이 여자는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너는 예쁘니까 시집 잘 가겠다. 너는 남자가 줄줄 따르겠구나. 공부 못 해도 괜찮아. 너는 남자들이 아주 뭐 사주고 싶어서 난리지? 남친이 뭐 사주디? 남친 돈 잘 벌겠다 등등. 미모가 있으니 당연히 능력 있는 남자를 구할 것이고, 그것이 네 인생을 결정할 것이고, 너는 걱정 없이 잘 살 것이다라는 패러다임에 푸우우우욱 쩔어있다. 그리고 실제로 주위에서 남자들이 밥 사준다, 술 사준다, 뭐 사준다 난리다. 이 여자는 그러므로 나는 이 정도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기준이 장착되어 있다. 비교하자면, 명문대 가면 너는 인생 걱정 안 하고 살아도 된다는 소리를 지겹게 들은 명문대생이 학생증 들여다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할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자부심이 있고, 어딜 가도 무시 안 당할 자신이 있고, 뭐 등등.     

그렇게 고르고 고른 남자. 역시 능력이 있어서 또다시 내 미모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남자를 만났다. 이 여자의 일생은 평생 그 결혼식의 한순간을 위해 달려온 일정이었다. 잘난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다들 부러워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살 집을 고르면서 남자가 "비싸서 그런데... 반반하면 안 될까?"     

여기서 이 여자 인생의 모든 전제가 무너진다. 이 남자는 그녀가 생각한 능력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잘난 남자를 맞아 마땅하다 생각했던 자신의 외모가 사실은 별로였거나, 아니면 지금 엄청난 사기를 당하는 중인 셈이다. 능력 있는 남자와의 결혼식까지 달려가는 인생에 가장 큰 걸림돌이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갑자기 '사랑'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서 '아니 괜찮아 난 자기 사랑하잖아'로 가라고 한다면, '너 어차피 이런 거 좋아하니까 열정페이로 해줘. 너 돈 밝히고 그런 사람 아니잖아?' 와 본질적으로 같아진다. 이건 사랑을 하느냐 아니냐 문제가 아니고, 여자의 돈이 있냐 없냐 문제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공고히 다져온 가치관에 의한 나의 가치가 순식간에 후려치기를 당한 순간이다. 여자 친정에 돈이 있냐 없냐는 여기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부모님 좋은 직장 다니신다고 연봉 깎아들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 여자에게 남자의 능력 == 자신의 가치이다.     


간단 결론: 

김치녀 욕하게 전에, 여자는 무조건 외모로 판단하며 예쁜 여자 숭배하는 가치관부터 고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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