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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2. 2018

사치하던 전업주부에 대한 복수 글, 그리고 그 섬뜩함

2017년 5월 30일

    

어떤 이혼 변호사가 글을 썼다. 남편 돈으로 편하게 놀고먹던 전업 주부가 이혼을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남편이 얼마나 그 '맘충 김치녀'에게 엿을 먹였는가에 대한 얘기다.

     

뭐 사실만 썼다고 치자. 그녀는 실제로 정말 사치했으며, 남편 돈으로 호의호식했으며, 그리고 이혼하자고 하면 남편이 혼비백산할 것 같아 깽판 부렸다가 아주 된통 혼이 나고 오갈 데 없어졌다고 하자. 뭐 나름 사이다 스토리라고도 하자.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를 남편의 소득에 의존하던 전업주부가 이혼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로 보고 읽어보면 사이다에서 납량특집으로 바뀐다. 전업주부의 인성이야 천차만별일 것이고, 그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이혼할 때의 이유는 수없이 많다. 시댁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어쩌면 친정이 진상일 수 있다. 여자가 바람을 폈을 수도 있고 남자가 술을 많이 마실 수도 있다. 여자가 살림을 아예 포기해서 무척 더러울 수도 있고 남편이 비싼 취미에 돈을 흥청망청 쓸 수도 있다. 여자가 도박해서 집안 살림 말아먹었을 수도 있겠고 남편이 성매매해서 성병을 옮아왔을 수도 있겠지. 

이혼 사유야 어쨌든, 이 케이스에서 중요한 것은 남편이 외벌이었고 부인은 전업주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변호사의 조언으로 부인은 '돈줄이 끊겼다'. 그리고 가사와 육아는 도우미로 다 때우고 (본문에서는 슬쩍 넘어가지만) 남자의 어머니나 형제의 대체인력, 그러니까 _다른 여자를_ 갈아 넣어서 땜빵을 한다고 나와 있다. 그 사치하던 전업주부는 앗 뜨거라 해서 비굴 자세로 돌입해야 했다는 식으로 사이다 스토리를 만드는데.  

   

그 전업주부가 어떤 사람이었던 간에 이 스토리는 동일하다. 시댁에 충성하고 남편 뒷바라지 한 여자나, 정말 남편 돈 빼돌려서 사치하고 산 여자나, 이혼 법정에 서면 '돈줄 끊겨서 반항 끝'이라는 것이다. 남편에게 전적으로 금전적으로 의존해왔다면 그렇다. 현찰을 끊어버리면 변호사 비용도 댈 수 없어서 여자는 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아주 신나게 한다. 그 여자가 폭력에 시달리다가 도망갔다 해도, 남편이 금전적인 압박을 가하면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쉽게 이혼장 내밀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온라인 커뮤에서야 아주 쉽게 이혼해 이혼해 하지만, 다들 알듯이 이혼은 애들 장난이 아니다(보통은 여성에게 더 큰 금전적인 영향이 간다.). 부인에게 이혼당해서 개털 됐다는 도시전설 많고 많은데, 실제로 그런 일은 소수다. 남자도 이득만 보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타격은 여성에게 더 크다. 이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게, 결혼 몇 년 후 이혼한 경력 단절 중년 여성에게, 친정이 아주 잘 살지 않는 이상은 돈 벌 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도 돈 벌기 힘들다 어쩌고 헛소리하지 말자. 그거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당장 가정을 부양할 만큼 벌고 있는 사람과, 마지막으로 일한에게 십 년 전인 여성과, 이혼 후 6개월 누가 더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나.     


저 글이 섬뜩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그녀에게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아주 즐겁게 고소하다고 비웃고 있다. 이 여자가 정말 그렇게 사치했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비꼼과 욕 얻어먹어도 싸다고도 하자. 그러나 그렇지 않은 여자들에게도 사정은 똑같다. 바람피운 남편도, 시댁 어른 간병으로 몇십 년을 보내게 한 남편도, 가정 폭력을 휘두른 남편도 돈줄 끊고 '그래서 니가 어쩔 건데' 무대뽀로 나가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고소하다며 웃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전업주부들이 다 천사고 찬사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사이다'식의 복수 스토리는 죄 있고 없고 상관없이, 이혼하고자 하는 모든 전업주부에게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 호러스토리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놓지 않는 여자는 독한여자, 아이 건사 못하는 여자라고 욕먹는 건 덤. 직장에서도 민폐라고 욕먹고, 초등학교 들어가면 아이 학원 돌려가면서 어케어케 버티려고 하다가 결국 포기하면, 사정이야 어쨌든, 이전까지 얼마나 독하게 싸웠든, 전업주부 대열에 포함.     


(클릭 수 늘여주기 싫어서 링크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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