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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3. 2018

탁현민과 딜브레이커

2017년 7월 20일

Deal-breaker라는 단어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다...라며 포기하게 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한국에 있는 많은 분에게는 '종북' 혹은 '친일'이 그러한듯 하다. 만약 탁현민이 대학생일 때 김일성 만세를 외친 사진이 떴다면, 아니면 '일본의 점령으로 사실 덕 본 것도 있지 않냐'라는 식의 칼럼이 하나라도 떴더라면 다들 가만있지 않았겠지. 당신에게도 그렇다면 종북과 친일은 당신에게 딜브레이커다.   

  

모든 사람들에게 딜브레이커는 조금씩 다르다. 만약 탁현민이 십 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했다면, 그리고 그 발언이 공개됐다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겐 그게 딜브레이커일 수 있겠다. 탁현민이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내용을 신문에 기고하고 책으로 내고 강의에서도 말했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단순하다. 탁현민을 실드 치는 사람들에게 여성 비하의 발언은 노 전 대통령 모욕의 발언만큼의 딜브레이커는 아닌 거다. 그냥 그게 다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에게 돼지발정제가 딜브레이커가 아니었듯이, 탁 실드러들에겐 그의 발언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닌 거다.     


민중은 개돼지라 발언했다가 공직에서 쫓겨나게 된 나향욱이 좋은 예다. 사석에서 한 말이고, 칼럼이나 책으로 쓴 것도 아니고, 뭐 아주 높은 자리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 말 한마디에 전 국민에게 공격받고 쫓겨났다. 이때에는 '그런 식으로 관둬야 하면 공무원 살아남을 사람 없겠다'란 이는 없었다. '사석에서 술 한잔 하고 그런 말 할 수도 있지'란 이도 없었다. 그냥 그 한 마디가 전 국민의 딜브레이커 스위치를 누른 거다. 그렇지만 탁현민의 그 여러 가지 (적기도 싫어서 안 적는다) 발언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지. 그런 말은 할 수도 있는 거고, 뭐 남자라면 다 한번 해 본 생각이란다.     

물론 내 편이고 내가 아는 사람에게는 잣대가 조금 느슨해진다.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 선이 이상하게 여성 문제에 있어서만 첨예하게 차이가 난다.     


난 문재인 현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그래 뭐 심 후보 다음으로!) 지지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을 해서, 많은 이들이 그냥 립서비스라고 할 때 편들었다. 그래도 그런 말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했던 것, 아실 거다. 박 전 대통령 겪으면서 나도 잣대가 느슨해져서 그랬다. 난 홍준표 후보가 백배로 더 나쁘다고 했고, 문 후보가 '동성애 반대' 발언 했어도, 그래도 실드 쳤다. 그래서 욕 많이 먹었다. 돌아보면 그렇다. 내가 성 소수자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 정도 나잇대의 사람이 페미니스트 선언한 것도 대단하다. 동성애 문제까지 요구하기엔 그래 뭐 좀 그럴 수도 있지'란 식이 된 거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 걸 슬퍼할 정도의 딜브레이커 정도는 아니었단 거지(난 내가 그 정도 사람밖에 안 된다는 데에, 나 자신에 실망했다. 그래도 그 일로 그 사람 대신 다른 이가 당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실드를 쳤다.).     


탁 씨가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언사를 했다고 가정할 때, 그래서 그를 반대한다면 왜인가? 문 대통령이 표방하는 바에 정면 반대되어서가 아닌가? 여러 사람들이 바로 그 이유로 탁 씨의 여성 문제 관련 발언을 문제 삼는 거다. 난 아직도 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발언은 진실이었다고 믿고, 젠더 의식은 좀 구시대적일지 몰라도 의도는 선하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탁 씨의 발언과 저서와 칼럼과 뭐 등등을 다 보고 듣고도 포용하겠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지지한다는 이유로 느슨하게 봐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탁은 딜브레이커다. 그를 여전히 측근으로 두는 청와대는, 문 대통령은, 최소한 내 입장에서는 그의 페미니스트 선언이 진심이었나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선 동안 홍준표나 더 욕하라고 문 후보 실드 쳤던 내 손가락이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탁 씨의 저서가, 칼럼이, 발언이, 행동이 뭐 그냥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 정도의 사람이다. 청와대 내에서, 문 대통령의 측근으로 문 대통령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이 한국 인구 반을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별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당신이다. 난 최소한 문 대통령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기를 바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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