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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3. 2018

이사하기 나흘 전에 양수가 터졌다

2017년 7월 13일

딱 4년 전에 이 집에 이사 들어왔다. 이사하기 나흘 전인가 양수가 터졌다. 그때는 아직 34주 차여서 의사는 항생제를 먹으며 최대한 버티라고 했다. 요즘에는 20주 안 된 임산부가 양수막이 터져도 그렇게 임신 지속을 한다고 했다. 난 절대 안정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집 이사 가는 마당에 가만히 있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있던 집에서는 나가서 새집으로 가야 했으니까.      


양수가 이미 터졌지만 새로 만들어진 양수가 계속 새어 나오기 때문에 초대형 패드를 한 80킬로 임산부 (=>나)는 매트리스에 볼링공마냥 누워 있고, 가구가 아무것도 없어 이케아 가구 몇 점을 남편과 친구가 겨우 사 온 것이 오후 네 시인가 그랬다. 그런데 배가 조금 아팠다. 물론 첫째를 낳아봤으니 이게 진통인지 아닌지는 알만한데(...아 내가 기억력 나쁘다고 했잖아 ㅠ.ㅠ) 이른 진통이 어땠는지 기억도 잘 안...; 어쨌든. 소화 불량인 거 같기도 하고, 이사한 직후라 정신 없기도 하지만, 양수도 계속 새고 있겠다 혹시 모르니까 병원 우선 가보자 해서 갔다.      

도착한 게 오후 다섯 시 반. 의사가 1분 진료하더니 “역아고요, 다리 두 개 벌써 보여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열 몇 명이 우르르 나와 날 실어갔다. 그리고 약 30분 후에 둘째가 응급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양수 없고, 역아에, 미숙아. 2.45 킬로그램으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딱 하루 있었다. 토실토실했던 큰애와는 다르게 얼마나 약해 보이던지.      

물론 유전자 어디 안 가고, 한 달 지나니까 얼굴이 내 얼굴보다 더 동그란 달덩이가 되었지만 어쨌든 태어났을 땐 가냘프고 그랬다 ㅡ.ㅡ      

그리고 머리는 빨간색을 띤 금발. 눈은 큰애가 그랬듯이 파랬다. 요즘에도 둘째를 데리고 나가면 나랑 애를 번갈아 보는 사람들 많다. 큰 애는 돌 때 전후해서 눈 색이 갈색으로 변했는데 둘째는 아직 파랗다.      


큰애도 아주 쉬운 애는 아니었지만, 둘째는 참 힘들었다. 까다로운 아이. 잠 안 자는 아이. 예민한 아이. 늦된 아이. 땡깡에 고집이 엄청난 아이. 우리 둘째는 아직도 그렇다. 알레르기도 심하고 말도 늦고 다 늦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큰애 낳았을 때는 사실 엄마가 된다는 거 자체에 대한 이해조차 없어서 멀뚱멀뚱했지만 둘째 태어날 즈음에는 이미 엄마 변환 프로그램 실행 끝난 지도 오래된 후였다. 그래서 태어난 순간부터 이뻤다. 큰애는 늘 조심스러웠고, 둘째는 한없이 예뻤다. 지금도 포실포실 둥글둥글 너무 예쁘다. 매일같이 감탄한다. 어떻게 이렇게 이쁘지. 인간이 이렇게 이쁠 수 있나.      


남의 불행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는 건 참 못난 짓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난 내 그릇이 그만큼밖에 안 되어서 늘 비교하며 감사한다. 둘째, 뭐 좀 늦되긴 하지만, 꺄르르 웃을 줄 아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엄마 찾아주고, 엄마에게 매달리고, 늦은 말이라도 말하는 게 어디냐. 잘 먹고 잘 뛰고, 성질부리더라도 부릴 수 있는 게 어디냐. 안 그런 아이들도 많은데. 잔병치fp 많긴 해도 큰 병 없고, 배고프면 제가 벽장 기어 올라가서 음식 찾아내는 게 신통하고, 뭐 등등.      


13일이 둘째 생일이다. 이제 네 돌. 우리 이쁜 딸래미 사랑한다. My favourite little girl. You make mummy very happy. 오늘 재우면서 Strange little girl 했더니 내 말 따라 하면서 꺄르르 웃는다. 내가 전생에 뭘 잘 해서 이렇게 예쁜 아가 축복받았는지 감사하며 하루 시작. 


(우리 길쭉길쭉 아들내미는 나날이 잘생김 포텐이 터져서 엄마를 녹이고 있으나 아들내미 생일은 30일이라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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