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로서 사회생활 할 때 안 맞는 스타일 사전 1

2016년 6월 7일

by yangpa

개발자 중에 아주 흔한 타입을 쪽파...라고 하고, 그들과 잘 부딪히기 쉬운 타입 중 하나를 감자...라고 하자.

쪽파 타입은 이성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객관적이며, 감정적이지 않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 보여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줄 수가 있다. 그러므로 감자는 쪽파를 보고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가볍게 관계를 시작하다가는 진짜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는 것이 이 두 타입이다.


우선 감자 타입을 분석해보자.

감자에게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신뢰'이다. 어느 사람을 알게 되고 친해지면서 감자는 신뢰를 쌓아간다.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증거 역시 신뢰이다. 이 신뢰는 하루 저녁에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감자에게 크나큰 충격이다. 신뢰를 거둔다는 것 역시 감자가 다른 이에게 할 수 있는 최대 징벌이기도 하다.

감자 타입은 소심 타입과 정의의 십자군 타입으로 나뉜다.

소심타입은 신뢰하고 신뢰를 받는 것으로 만족하며, 소리 없이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도 만족하지만, 정의의 십자군 타입은 자신이 신뢰하는 이를 위하여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사실 즐기기까지 한다. 자신이 얼마나 상대를 신뢰하는가를 증명하는 방법에는, 그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을 대항해 싸우는 것만큼 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감자 타입은 은근히 '이유 없이 무조건 감싸고 들기'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신뢰하는 사람을 믿고 감싸는 것은 중요하지만 눈먼 지지는 나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긴 하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믿는 사람을 의심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므로 그것을 쉽게 하는 쪽파 타입을 보면 '소신이 있다'라고 느낄 수 있다.

이들에게, '증거가 없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신뢰하고 있으니 끝까지 믿어주겠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이다. 그리고 상대방도 자신에게 그렇게 해 줄 경우에 감동한다.


쪽파 타입을 보자.

쪽파 타입의 키워드는 '납득'이다. 이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근거 없는 믿음'인데, 그런 면에서 감자 타입은 쪽파 타입에게 생각이 없는 이들로 비추기 쉽다. 친해진다는 것과 신뢰는 쪽파 타입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쪽파 친구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다면, 쪽파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쉽게 의심하고, 곧바로 물어본다. 그 친구를 잘 알고 있으므로 거짓말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의심이 간다면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감자보다 몇 배로 쉽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 역시 내가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시켜 주기를 원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내 말을 믿어주기를 원한다면 쪽파는 그 사람을 '납득'시키려 한다. 나를 믿어달라던지, 날 그렇게 모르느냐는 호소는 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방을 못 믿는 만큼 상대방도 날 못 믿을 거라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난다고 하자. 감자는 이성적으로 보이는 쪽파에게 끌리고, 호감을 느끼면 최대한 좋게 봐주려는 감자를 쪽파도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약간 틀어질 일이 생기면 쪽파는 감자를 '신뢰'하고 '믿어주는' 대신에 '질문'하고 (심문?) '의심'한다. 감자는 쪽파가 자신에 대해 신뢰가 그렇게도 없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쪽파는 감자가 충격을 받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상처받은 감자가 '네가 어떻게 그런 의심/말을 할 수가 있어'라고 말하면 근거를 들어 납득시키는 대신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느낀다. 반대의 상황이라고 해도 그리 좋지는 않다. 감자는 웬만큼 의심하고 질문할 일이 생겨도 쪽파에게 다그치지 않음으로 '신뢰'함을 증명한다. 그러나 쪽파에게 그런 신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감자의 배려는 헛수고가 된다. 정의의 사도 감자는 쪽파를 감싸며 싸워주기를 원하는데 쪽파는 편들어 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옳으면 옳은 거고 그르면 그른 거다. 내가 옳다면 당연히 내 편이 되어야 하는 건데 뭘 감동하고 그러냐.


이 둘의 최악 궁합은 감자 상사, 쪽파 부하이다. 감자 상사는 '내 아랫사람을 감싸는 대신에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조직의 특수성에 꽤나 잘 들어맞는 감자에 비해 쪽파는 체질적으로 위아래 개념이 약한 편이다. 윗사람이고 뭐고 간에 맞는 건 맞는 거고 틀린 건 틀린 거다. 쪽파가 윗사람을 '믿고' 따르는 경우는, 과거에 상사가 현명한 판단을 한 역사가 있으므로 당장은 좀 의심이 가더라도 참고 기다리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거란 '확률'이 높을 때 얘기다. 그리고 쪽파는 자신이 그렇게 의심하는 것을 상사도 이해하고, 자신을 납득시킬 거라 생각한다. 감자 상사는 자신이 '납득'시켜야 하는 부하에겐 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조금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자신을 무조건 '신뢰'하고 따라줄 사람을 더 원하는 것이다. 감자에게 쪽파 부하는 상황에 따라 제 색깔을 바꾸는 (쪽파 입장에서 보면 각각 사건을 보고 따로 판단하는) 쪽파는 변절자요, 믿지 못할 인간이다.

쪽파 상사, 감자 부하는 아주 조금 낫지만, 감자 부하는 쪽파 상사에게 바치는 충성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다고 느끼며, 자신을 알아주고 신뢰하며 밀어줄 다른 상사를 원한다. 하나하나 자신을 납득시키려는 쪽파 상사보다는, '날 믿고 따르라'고 하는, 나를 신뢰하며 인정해주는 상사가 더 와 닿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감자 타입의 사람과는 웬만해선 친해지지 않는다. 나에게 호의를 보여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도 감자타입을 슬슬 피한다 (다행히 이공계 쪽엔 감자타입은 소수에 속한다). 어쩔 수 없이 친하게 지내야 하는 경우는 최대한 그들의 신뢰 코드에 맞춰주려 노력한다. 그러나 쪽파들에게 근거 없는 믿음이란, 이슬람교도가 코란에 침 뱉는 것을 보는 것처럼 본능적인 거부감이 가서, 감자 코드에 맞출 때마다 쪽파는 아주 큰 희생을 하는 것처럼 느낀다. 왜 그런지 이해는 하더라도, 세상에는 천적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난 감자타입 사람들의 순수한 신뢰를 존중한다. 이런 사람들이 끈기를 가지고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을 이끄는 것도 안다. 리더 타입뿐만이 아니라 소심한 감자들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 한 사람 납득하는 것은 꼭 가능한 것이 아니라서, 이런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아니라면 세상은 참 차가운 곳일 거라 본다. 그들의 글은 보통 따뜻하거나 정의롭고, 확신에 넘친다 (꼭 옳진 않더라도 그렇다). 이런 이를 아군으로 둔 사람은 참 든든할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친해지더라도 나는 그들이 원하는 신뢰를 줄 수 없으며, 그들은 결국 실망해서 적으로 돌아설 것도 안다. 그런 실망이나 멀어짐은 오프라인에서보다 온라인에서 몇 배로 더 쉽다. 그래서 친해지지 않는다.

내가 실망시킬까, 부딪힐까 조심스러워 그렇지 그래도 좋은 사람인거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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