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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30. 2018

남자가 해주는 아침밥에 목숨 거는 이유

2017년 8월 20일

(**몇몇** <- 중요)남자가 아침에 목숨 거는 이유. 월급 격차에 별 신경 안 쓰는 이유. 돈 못 번다고 해도 가사를 돕지 않는 이유. 남자들이 억울하다고 하는 이유. (엄청 긴 글 주의)     


가부장제도에 눌리는 남자들 얘기 나온 김에 쭉 가봅시다.     

가부장제도에서 남자는 수입으로 가치가 매겨진다. 그리고 그 급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여자의 폭이 정해진다고 교육받는다. 게다가 한국처럼 서열세우기 좋아하는 나라에서는 그저 가장이라는 컨셉 정도가 아니라 그 급수에 따른 대접과 차별도 천차만별이고, 서로서로 비교하느라 바쁘다.

     

당신은 연대 캠퍼스 출신이라고 하자. 어느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캠퍼스 출신이라는 것을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되고 나서 며칠 후, 당신은 의자가 바뀐 것을 눈치 챈다. 훨씬 싸구려에 팔걸이가 없는 의자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의자가 불편하다거나 팔걸이가 없어 죽겠다거나 그런 건 사실 아니다. 그 의자는 당신의 학벌에 대한 대접을 나타내는 상징일 뿐이다.     


예전에 집 마련에 보태라고 했을 때 발칵 하는 여자에 대해서 썼었다. 여자는 예쁘면 대접받는다고 교육받았고, 자신의 미모를 소중히 여겨 결혼하자는 남자를 만났다고 하자. 자신의 미모의 급이 높기 때문에 집도 해오고 공주처럼 대접해준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자가 갑자기 집 마련에 돈 보태라고 하면 


1) 남자가 사실 능력이 없었다는 것은 곧 내 시장 가치가 사실은 훨씬 낮았다는 의미 

2) 그게 아니라면 이 남자는 내가 그 정도 가치를 기불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가 되므로 때문에 화를 낸다고 했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돈을 벌고 성공하면 대접받는다고 교육받았다고 하자. 엄청 많이는 아니라도 그래도 잘 버는 남자는 자부심도 있고, 이 정도 버니까 이 정도 대접과 인정은 받아야 한다는 부심도 있다. 그런데 여자가 아침을 해주지 않는다던가, 가사를 시킨다던가 하면 "이 여자는 나를 가장 대접을 해줄 필요가 없다 느끼는가" 의심이 들 수가 있겠다. 아침이 문제가 아니다. 위에서 말한 의자와 마찬가지로, 나의 시장 가치를 상대방이 무시했다는 데에서 오는 분노다.     

그깟 의자,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불편한 의자 쓰고 있으면 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가장은 돈 벌어오니까 대접받아야 한다는 의식 없었다면 아침 안 차려준다고 분노 폭발하지도 않을 것이다. 커피 한 잔 먹고 때우면서도 한 개도 안 서러웠을 거다. 여자 역시 자신의 가치가 그녀를 선택한 남자의 부와 지위로 결정이 된다는 기준이 없었더라면 그냥 잘 맞는 두 사람 살림 합쳐서 하는 게 훨씬 간단했을 것이다.     


다음은 남자들이 억울해하는 이유.     

한국의 남녀 연봉 격차가 30~40%라는 통계가 있다. 그렇다 해도 남자에게 그리 유리하진 않다(저 페미 맞아요;;). 가부장제도에서 남자는 여자를 먹여 살리거나, 최소한 여자보다는 경제 상황이 월등히 나아야 한다. 그런데 남녀 아이큐 평균은 거의 차이 없고, 신체적인 조건을 제외하면 사실 남자가 압도적으로 엄청나게 뛰어난 분야는 없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더 벌어야 하고, 훨씬 더 잘나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은 예전과 그대로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완전히 막혔던 예전에야 남자가 조금이라도 버는 것이 여자가 아무것도 못 버는 상황에 비하면 훨씬 나으니까 큰소리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월급 격차가 40% '밖에' 되지 않는다. 머리와 능력은 비슷하다. 사회적으로 남자 뽐뿌를 넣어줘도 3~40% 만 더 버는 상황이다. 게다가 군대 갔다 오고 하면 더 느려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자보다 압도적으로 더 버는 것은, 보통 남자에게 엄청나게 힘들다. 그리고 자신보다 훨씬 더 잘 버는 여자들도 많다. 전체적으로 보면 여성들이 훨씬 더 불공평한 처우를 받고 있지만, 개인적인 레벨로 보면 여성에게 훌륭한 가장으로 선택받기는 아주 매우 베리마치 어려워진 셈이다. 

여자들 입장에서는 '너 미쳤냐 지금 여자들이 너무 대접받는다는 거냐!' 할 만한데, 사회적 기대는 남자들이 정식 직장에서 가정의 주수입을 올릴 때 생겼고, 그 기대는 "남자가 여자보다 40% 만 더 벌어도 돼"로 낮춰지진 않았다. 하지만 여성들이 기대를 낮추기도 불가능하다. 어쨌든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짤리기 쉽고 극소수의 여성들만 커리어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구조다 보니까 결혼 후에는 남자인 가장에게 경제적으로 기대게 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라서.     


게다가 남자들의 심리적인 보상 기제도 예전에서 바뀌지 않았다. 내 가족을 책임지고 먹여 살리는 대신 가장이라는 권위를 누린다는 개념은 아직 박혀있는 상태에서 대접을 덜 받으면 (-> 가사 도와라 육아 참여해라 구박하면) 이건 무시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못 번다고 이 여자가 무시하나. 내가 엄청 잘 벌었다면 가사 안 한다고 바가지 긁진 않겠지. 딴 집 남편들은 얼마나 벌어오니까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겠지.     

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명품에 목숨 걸지 않는다. 땡기면 사고 아님 말고. 확실하게 잘 버는 남자들 역시 남들이 자기 무시하는가 아닌가에는 신경을 덜 곤두세운다. 그러나 어중간한 우리들은 훨씬 더 주위를 살피며 신경을 쓴다. 평균 남자들보다 20% 더 버는 남자는 그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여성이 자신을 거절하면 무시당했다고 분노한다. 여성 역시, 남성의 관심이 식었다 느끼면 내가 살이 쪄서 그런가 자책할 수 있겠다. 외모와 수입으로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니까.     


나이든 여성이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회였다면 결혼에 그렇게 목숨 걸 필요가 없고, 선택해주는 남자의 재력으로 여성의 가치를 가늠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자로서 일하는 데 부담이 없다면) 당연히 남자를 선택할 때 부를 덜 보게 된다. 이건 아주 쉽게 증명할 수 있는데, 나를 부양할 필요 없는 남자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여자들이 어떤 남자를 선호하는가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연예인. 만약 정말 돈에만 끌렸다면 이재용이 웬만한 남자 연예인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아야 하는데 안 그렇다. 외모 중시한다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자 역시 외모든 뭐든 매력 있는 이성을 좋아한다. 일생을 거는 선택이 아니라면, 내 평생 기대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자들도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가 보기에 매력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 안 그랬으면 무명 연예인들, 돈 못 버는 연예인들은 평생 못 뜨고 재벌집 아들들만 인기 있게.     


두 상대가 대치하고 있을 때 먼저 무기를 내려놓는 편이 진다. 최상의 결과는 두 쪽 다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지만, 그러기에는 불신이 너무 크고 위험부담이 크면 그게 힘들다. 가부장제도 내에서 여자는 최대한 재력이 있는 남자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 여자들이 단체로 그것을 포기하고 남자 역시 돈을 벌어 여성을 선택/구매한다는 사상을 한꺼번에 포기하면 그냥 맘에 드는 사람들끼리 손잡고 잘 살면 되겠지만, 먼저 내려놓는 사람이 진다. 여성을 여전히 차별하는 사회에서 남자의 재력을 안 본 여자들은 크게 고생한다. 남자의 능력을 보는 사회에서 난 돈은 없지만 너를 사랑해줄게라며 구애하는 남자는 신뢰를 받지 못하고 여자들에게 외면당한다.     


그래서 서로를 마주보면서 먼저 포기하라고 외친다. 남자는 여자에게 남자 돈만 보는 김치녀들이라 욕하면서 그냥 나를 선택해라 하고, 여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게 짜르지나 말든가, 나를 돈으로 구매한 물건으로 취급 좀 하지 말고 얘기하지? 라 외친다. 그리고 둘 다 계속 손해 보는 중이다.     


글 길어져서 포기하고 그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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