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2일
과학의 도덕성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친구가 있었다. 아 정말 과학에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은데 하필이면 고루한 도덕성이냐 생각했던 게 십 년 전인데, 지금 와서 나도 비슷한 고민 하고 있다.
기계학습은 옳은가? 아니, 거기까지 가기 전에 정보 공개부터 얘기해보자.
자, 생각해보자. 매달 의료보험으로 20만 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받고 그 내용을 제출하면, 불리한 내용이 있더라도 반값으로 깎아준다고 하면?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없을 것 같…지만.
유전자 테스트가 널리 퍼지기 시작하고 “결과 첨부하면 디스카운트” 시작하면 그때부터 끝의 시작이다. “암 유전자 없는 사람들을 위한 초저가 보험” 상품이 나올 수 있고, 저위험군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려간다면 암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의 보험료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건 어떤가? 몸에 나노 로봇을 심어서, 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로봇이 자동으로 업로드하게 하면 건강보험료 90% 할인. 특히 영국같이 국가가 의료 시스템을 통째로 관리하는 곳에서는 군침 흘릴 만하다. 리얼 생활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오면 위험 관리도 훨씬 쉽고, 문제가 되기 전에 대책 세우기도 쉽기 때문이다(“오늘 술 좀 많이 드셨네요!? 운동은 덜 하시고 몸무게는 늘었으니, 다음 주 의사를 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등등).
그 정도까지는 안 가더라도, 슈퍼마켓이나 신용 카드 사용 내역을 오픈하는 대가로 보험료를 할인받고 포인트를 받거나 이자율 혜택 보는 건? 건강음식 많이 사면 더 할인. 정크 푸드 외식하면 할인 취소. 안전하다는 곳에 살고 위험한 곳에 잘 안 가면 차 보험비 할인. 주행 기록도 오픈하면 중고차 한때 훨씬 이득.
광고 쪽으로 보면 - 소비 데이터가 있으면 술 잘 마시는 사람은 술 관련 쿠폰이나 스페셜이 타깃 마케팅으로 들어오고, 아이 있는 사람은 아이 관련 마케팅을 받게 되겠다. 광고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꿈이다. 쓸데없는 사람들에게 돈 낭비 안 하고, 실제 소비자한테 곧바로 타깃 마케팅 들어갈 수 있잖소.
이런 식으로 정보를 다 공개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금전적인 이득을 주면 오픈하지 않는 사람이 손해 볼 수밖에 없다.
다음은 기계학습.
당신의 페이스북 정보와 그 외 SNS 정보를 통해서 광고주들은 1초 이내에 당신의 성향, 재정상태, 친구들 그룹 등등을 쭉 뽑을 수 있다(실제로 구글이나 빙에서는 다른 아무런 개인 정보 없이 검색 단어만으로도 성별, 위치, 정치 성향 정도 뭐 등등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아니면 안면 인식을 보자. 지나가는 여자들의 얼굴을 분석해서 나이와 노화도를 측정해서 “강남 연세 성형외과! 믿고 하는 실 리프팅 할인 행사 진행중입니다! (네 구좌 보니 한 백만 원 정도는 쓸 수 있겠으니) 3백만 원 코스를 백만 원에 해드립니다!” 이런 건?
사람의 판단력이나 노하우보다 몇 백배, 몇 천배로 정확한 기계학습의 예측이 나의 모든 약점을 공략하여 최대한 돈을 뽑아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당신의 이득으로 포장시킬 수 있다면? ‘(네 돈 쓰는 스타일과 친구 수준 확인하면 재정상태 예측 가능하니) 구좌 사용 내역 오픈하시고 친구 리스트 주시면 이자율 조절해 드립니다!’, ‘페북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오픈하시면 저희 매장에서 50% 깎아드립니다!’, ‘다른 곳에서라도 장을 보신 데이터 오픈하시면 이마트에서 10%, 홈플에서 12% 깎아드립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내놓고 데이터 달라고 안 한다. ‘페북으로 로긴하시면 12% 깎아드릴 수 있는데 하실래요?’ ‘지금 쓰신 카드로 연계하시면 50% DC 해드려요’ 뭐 이 정도로 말 할 거고, 약관 읽기 귀찮아진 사람들은 아 알았어요 깎아줘요 하겠지.
어릴 때, 하나님은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을 다 보고 계셔라는 설교 자주 들었는데, 요즘이 딱 그런 세상으로 가고 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측량되고, 전 세계 사람들의 데이터베이스에 비교되어 예측될 수 있다.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몰랐을지라도 기계학습은 찾아다 준다. 어느 정도의 정보 개방이 이루어지면 그때부터는 개방 안 하는 이들도 너무 손해를 봐서 안 할 수가 없다. 재정 오픈하면 상환 이자율 3% 올려준다는데, 거절할 건가? 페북 피드만 한 번 훑게 해주면 20% 평생 깎아준다는데, 안 할 건가?
뭐 그러다 보면 게임 오버. 보험이란 게 원래 단체적으로 위험을 관리하자는 게 포인트인데 위험 요소 높은 사람을 콱 찍을 수 있다면 부담이 훨씬 높아진다. 잘 나갈 사람은 알아서 판단해서 온갖 혜택 주고 보험은 깎아주고, 아플 것 같거나 별로 돈 안 될 거 같은 사람한테는 보험 페널티 와방 먹이고 그 외 혜택도 확 줄임으로써 빈익빈 부익부는 훨씬 심해질 거라는 게 내 예상…. 이 아니라 이거 바탕으로 공상과학 스토리 쓰다가 포기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