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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4. 2018

돈이 있으면

2017년 9월 2일

돈이 있다하면 뭔가 좀 명품 휘감는 사치를 연상하기도 하는데 사실 -     


돈이 있으면 마음의 평화가 생긴다. 여윳돈이 충분하면 무슨 일이 닥쳐도 '괜찮아. 돈으로 처바르면 돼'로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하다. 몸이 아파도, 여행 갔는데 뭔가 잘못 되어도, 직장에서 상사가 지랄해도, 당장 몇천만 원 정도 융통할 수 있으면 패닉도 덜하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생긴다. 돈이 없으면 모임에 한 번 나가도 회비 빼면 생활비 얼마 남나 걱정해야 하고 너무 늦으면 택시 타야 하니까 그거 계산하며 시계 보는 동안 다른 이들은 맘 편하게 논다. 월세 싼 곳에 살면 교통비도 더 들고 시간도 더 든다. 알바 안 해도 되고 발품 안 팔아도 된다. 뭐가 더 싼가, 예산으로 가능한가 고민하는 스트레스 안 받고 대강 사서 쓴다.     


돈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아니, 자격지심이 덜하다. 내가 선택으로 안 산 거지 못 산 게 아니거든. 부모님의 지원으로 해외 나가고 인턴하고 그런 애들은 별 자격지심이 없다. 그 사이에 낀 가난이는 무엇을 해도 없어 보일까 전전긍긍한다. 있는 집 애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산 옷, 그냥 예약한 여행, 심심해서 예약한 공연 등을 보면서 늘 비교한다.     


돈이 있으면 다들 좀 더 매력적으로 봐주고, 좀 더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고, 좀 잘못해도 넘어가 준다. 별 생각 안 하고 쇼핑한 옷은 좋은 취향과 센스의 증거가 되고, 시키는 대로 해서 간 대학과 사교육으로 처바른 성적은 능력과 지성으로 인정받는다. 돈 많은 사람은 돈 빌리기도 쉬우니 손해를 봐도 회복이 쉽다.     


돈이 있으면 아플 일도 덜하다. 스트레스 덜 받고 몸 아프면 곧바로 치료받고 쉬고, 위험한 일에 노출 안 되니 그렇다. 그러니 일에 지장 갈 일도 적고, 에너지 레벨도 더 높다.     


그런데 이 정도의 '여유'는 돈이 미친 듯이 많아야 가능한 게 아니다. 질 좋은 직장에서 고용안정만 보장되고 집값 및 물가가 안정되어 있다면, 그리고 노후나 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부유함이다. 실제로 세금은 세게 때리더라도 웬만한 국민이 이런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복지 국가에서는 행복도가 높다.     

한국에서는 최상계층의 몇 퍼센트를 빼놓고는, 좋은 직장 다닌다고 해도 존나 스트레스 받고 상사한테 치이고 집 사는 건 힘들고 애들 사교육비로 돈 펑펑 깨지고 부모님 부양비 나가고 애들 아프면 폭망이기 쉽다. 아무리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회사 취업해도, 그러니까 그럭저럭 돈을 벌어도, 위에서 말한 돈의 이점을 즐기기가 힘들다. 부모의 재산이 엄청나게 중요해지는 이유다.     


돈이 있으면 여유가 생기고 행복할 가능성이 높은 건 맞는데, 적당한 중산층의 삶도 한국에서는 여유로움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질은 풍요하더라도 가난의 증상을 다들 겪는다. 마음의 여유 없이 팍팍하고, 다들 자신감은 없으며 남과 비교하느라 바쁘고,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스트레스도 쌓인다. 돈을 더 벌면 나아질까 노력해보지만 그 기준은 계속 높아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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